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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 첸 감독은 “이 영화는 불안한 청춘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입니다.”라고 말했다. 부디 위로되길 바라며 영화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주요 내용은 줄거리에 쓰여 있는 그대로였다. 가이드 일을 하는 나나가 고립된 여행객 하오펑을 샤오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하면서부터 벌어지는 이야기다. 100분은 빠르게 흘렀다.


나나와 하오펑, 샤오를 통해 청춘들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목표, 인생, 꿈. 한 사람을 이루는 근본적인 것들을 생각한다.


청춘은 대개 ‘꽃답다’, ‘아름답다’, ‘열정적이다’ 등의 수식어로 표현되고는 한다.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뜨겁게 불태울 열정이 있고 꿈이 있는 시기, 누구나 뜨거울 것으로 생각하는 시기. 하지만 모든 청춘이 그럴 수는 없다. 누군가는 꿈을 잃는다. 또 다른 이는 타인에 의해 목표가 설정된다. 꿈과 열정을 갖지 않는 이도 있다. 그 시기의 모두가 꿈을 향해 자유롭고 희망차게 내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청춘은 다소 냉소적인 면이 있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그러한 부분을 짚어준다. 나나와 하오펑, 그리고 샤오를 통해 차갑게 얼어붙은 청춘을 보여주었다.


나나는 꿈을 잃었다. 유망한 피겨 선수였다는 것과 부상으로 피겨를 그만두어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나나의 직접적인 대사는 없으나 관객은 박스를 채운 메달과 그녀가 눈물을 참으며 스케이팅을 상상하는 모습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3년을 여행사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스케이트장이나 피겨 관련 서적에 향하는 눈길, 울컥 치미는 서러움을 숨기지 못한다. 나나의 꿈은 ‘접혔다’. 그녀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차디차게 얼어붙어 간 청춘이다.


하오펑은 열심히 살아내기만 했다. 그는 부모의 성화에 공부하고 진로를 택한 뒤에도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길이 없는 생활을 하는 인물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부유층, 여유로운 삶일지 몰라도 하오펑에게는 그렇지 않다. 심리상담센터를 찾을 정도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자 할 정도로, 신나게 놀다가도 녹아내린 얼음물에 숨어 눈물을 쏟아낼 정도로 그의 마음은 여유롭지 못하다. 가벼운 우울감을 넘어선 그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해야만 하는 것에 사로잡힌 채로 살아온 그는 하고 싶은 것도, 나아갈 길도 없는 듯 보인다. 목표를 이룬 후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은 상황이 버겁다고 느낀다. 그는 지쳤고 이내 차츰 얼어붙은 청춘이다.


샤오는 이모가 식당을 열게 된 후 일을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치열하게 좇고자 하는 바가 없다. 그에게 재밌는 일이란 나나와 함께하는 시간뿐인 듯하다. 조용하고 잠잠한 서점에서 그는 따분해하고, 이에 나나와 하오펑에게 두꺼운 책을 훔치자는 내기를 제안한다. 그것이 샤오가 삶을 대하는 자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듯 느껴졌다. 상해에서 일하고 있다는 하오펑에게 자신은 다른 곳을 많이 가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특별한 목표 없이, 현재에 머무를 뿐이다. 작은 우물 속에 고여버린 물을 데울 온기는 없고 그는 그렇게 식어 간 청춘이다.


이러한 청춘들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서서히 녹아내리고 마침내 꿈과 삶을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샤오가 하오펑에게 건넨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이 많은 걸 내포하고 있다. 가장 자유로운 듯해 보여도 연길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는 어쩌면 자유와는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일 수 있다. 그러한 그가 뱉은 말은 하오펑에게 해주는 조언이면서도 스스로 다짐하는 마음일 수 있다.


단지 하오펑이라는 이방인과 함께 일상에서 벗어나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낸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영향으로 그들은 각자의 얼음을 깨부수었다. 시계를 풀어 내려놓는 하오펑과 누워 있다가 문득 떠날 거라고 말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내달리는 샤오, 스케이트 타는 꿈을 꾼 뒤 박스를 열어 스케이트화를 꺼내 보는 나나. 녹아내리는 얼음물에 기대어 눈물을 쏟는 하오펑처럼 그들은 각자의 얼음을 녹이고 물로 돌아왔다. 관객은 세 사람의 눈물 어린 마음을 엿보았고 이내 그들은 저마다 다시금 삶을 마주한다.


“물은 낮은 온도에서 얼음이 되지만 얼음을 꺼내 수면 위로 올려놓으면 순식간에 녹기 시작해 다시 물로 돌아갑니다.”


안소니 첸 감독의 말처럼 얼어붙은 세 청춘이 만나 다시 물로 돌아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가 바로 <브레이킹 아이스>다. 영화는 감독의 의도, 제목의 의미에 아주 부합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수묵화를 닮은 백두산의 설경이 등장한다. 시릴 듯한 정경에서 어딘지 모를 포근함을 느끼거나 안도하거나 자유로워진다. <브레이킹 아이스>가 담은 정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의 청춘이 부디 시리지 않고 자유롭고 따뜻하길 바라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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