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었음에도,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 몇 권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대체로 뇌리에 깊게 박힌 이유엔 동화책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삽화 덕이 크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이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앤서니 브라운전: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이라는 전시로 찾아왔다.
이번 전시에는 특유의 개성 넘치는 그림체로 오랜 시간 동화 작가로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킨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작을 비롯하여 80세가 넘은 나이까지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자신만의 무한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그의 최신작 25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의 입구에는 그의 아이덴티티로 볼 수 있는 커다란 고릴라가 그의 세계로 들어가는 초입을 반겨주며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여행이 시작된다.
다양한 챕터로 구성된 전시에서는 앤서니 브라운이 자신만의 동화책을 만들어 나간 철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작품들의 비하인드를 알 수 있다. 동화 작가로서 그가 겪었던 고민들과 그가 전달하고 싶었던 가치 등도 엿볼 수 있다.
많은 유명작품을 탄생시켰기에, 작품의 제작 비하인드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지만,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앤서니 브라운이 얼마나 ‘관찰’과 ‘상상’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그가 세상을 보는 방법을 작품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돼지책>, <우리 할아버지>, <우리 친구하자>, <미술관에 간 윌리> 등 대체로 그의 작품 배경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런 익숙한 공간과 일상들을 세심하게 관찰한 후 어느 지점에서 그의 상상력을 결합해 버린다.
이것이 바로 앤서니 브라운의 세계의 특징이다. 전혀 동떨어진 것만 같은 요소들이 합쳐져 재탄생한 익숙한 듯 흥미로운 세계. 전시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그가 그림과 창의력으로 의미를 더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에서는 끊임없이, 글보다는 ‘그림’으로 작품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를 요한다.
아무래도 글이 설명하지 않는 부분을 그림으로 풀어내어 독자들이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풀거나 더해나가도록 하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 전시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더욱 더 작품 하나하나도 자세하게 보게 된다.
주전자가 고양이로 변해있고, 공원의 나무는 나뭇가지인 척 하는 고양이, 새 등이 숨어있으며, 엄마가 없는 집은 정말 돼지우리가 되어버렸고,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 속 사자가 그림 밖으로 튀어나오는 등 작품마다 비교,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요구한다. 그런 작품들이 모이니 그저 보여주는 전시를 넘어 ‘참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전시가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앤서니 브라운이 일상 속에서 그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킨 방법이 아닌가?
결국 전시는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작품의 주인이 작품을 만들어냈던 방법을 작품을 통해 전달해주고 있다.
그 밖에도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으로 재해석한 동화들부터 영화 ‘킹콩’을 기반으로 재탄생한 동화책 ‘킹콩’이라는 작품까지 정말 다양한 작품이 휘몰아쳐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앤서니 브라운의 세계를 만끽해 볼 수 있다.
특히 동화뿐 아니라 미디어아트 및 다양한 사물을 통해 재창조해 낸 ‘킹콩’ 시네마까지 우리가 평범하게 느꼈던 일상이 얼마나 무궁무진하며,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관찰’과 ‘상상’이라는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지 일깨워주는 전시임이 틀림없다.
우리가 놓쳐왔던 세상을 되찾기 위해, 그의 동화세계로 동화(同化)되어 보는 것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