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20250511200010_leiqbowv.jpg

 

 

 

침묵은 가장 큰 이야기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기묘한 정적이 나를 덮쳤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음악도 없었다. 그런데 그 정적이 ‘비어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꽉 차 있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느낌. 누군가 말을 걸기 직전의 긴장감이 들었다. 그림들이 침묵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도 그림을 바라보았다. 누구의 입에서 먼저 말이 새어 나올지 모를 고요한 대치 상태였다.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 처음 보면 단순한 동화 같다. 귀여운 침팬지, 편안한 색감, 일상적인 풍경. 그런데 오래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인물의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배경의 퍼스펙티브는 왜곡돼 있고, 반복되는 오브제들은 불안을 유발한다. 그림 속 인물은 웃고 있지만, 눈빛은 웃고 있지 않다. 이 미세한 어긋남이 뇌를 자극한다. 도대체 이건 무슨 이야기지?


인간의 뇌는 '패턴'을 좋아한다. 그런데 앤서니 브라운은 그 패턴을 살짝 비틀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 앞에서 멈춘다.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은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저 인물은 어떤 감정을 숨기고 있는 걸까? 보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탐정이 된다. 질문하는 존재가 된다. 이게 바로 그의 그림이 가진 힘이다. 시각 예술이 던지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 "넌 지금 무엇을 보고 있니?"


당신이 만약 그림 앞에 10초 이상 멈춰본 적이 있다면, 이미 그의 함정에 빠진 거다. 처음엔 단순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서면서도 잊히지 않는다. 자꾸만 생각난다. ‘왜 그랬지?’, ‘그 표정은 뭘 의미했을까?’, ‘그 배경은 왜 저렇게 그려졌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 순간 당신은 수동적 감상자가 아니라, 능동적 해석자가 된다. 그림은 이제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 된다.

 


KakaoTalk_20250511_225645206.jpg

 

 

 

보지 못하는 사람은 해석하지 못한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을 보며 든 가장 강력한 통찰은 이것이었다. 보는 능력이란 곧 해석의 능력이라는 것. 이건 단지 예술 감상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인간관계, 연애, 직장생활, 심지어 자기 자신을 대할 때조차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은 해석을 못한다. 해석을 못하면 이해도 못한다. 이해를 못하면, 모든 일이 어긋난다.


그의 대표작 「고릴라」를 예로 들어보자. 표면적으로 보면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소녀가 고릴라와 함께 꿈 속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고릴라의 얼굴에는 종종 아버지의 실루엣이 겹쳐진다. 명백히 ‘결핍’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아이들의 상상력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제대로 보는 사람은 안다. 그건 ‘상처받은 아이’의 외침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품고 있는, 어린 시절의 공허함이다.

 


KakaoTalk_20250511_225611075.jpg

 

 

그림 한 장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면, 현실은 오죽할까. 실제 인간관계에서는 말조차 생략된다. 많은 감정은 비언어적 신호로 드러난다. 누군가의 표정, 말투, 타이밍, 거리감, 침묵, 눈빛. 이 모든 것이 ‘숨은 이야기’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보려 하지 않는다’. 표면만 읽고, 말만 듣고, 그 이면을 상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해하고, 상처받고, 어긋난다.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보는 훈련이다. 해석의 훈련. 감정의 맥락을 읽는 훈련이다. 그리고 그건 곧 사회적 지능과 연결된다. 사회적 지능이 높은 사람은 사람을 ‘행동’이 아니라 ‘맥락’으로 본다. 단순한 발언 뒤에 있는 감정의 뉘앙스를 읽고, 한 번의 침묵에 담긴 긴장을 느낀다. 이건 타고나는 게 아니다. 훈련된다. 그림을 제대로 본다는 건, 결국 사람을 제대로 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보는 태도가 바뀌면, 인생이 다르게 보인다


 

전시장을 나설 때쯤,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거리의 풍경이 더 이상 그냥 ‘배경’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은 행동, 사소한 디테일, 뭔가 이상한 균열들이 이전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이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시각의 재훈련이다. 보는 태도 자체가 바뀐 것이다.


이게 앤서니 브라운이 우리에게 남긴 진짜 메시지다. 이야기는 언제나 눈앞에 있다. 다만 그것을 ‘볼 준비가 된 사람’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세상은 해석 가능한 텍스트이고, 당신이 그걸 읽을 줄 아는가가 문제다. 당신이 만약 지금 인생이 지루하고 무의미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의 삶에 사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신의 해석 능력이 마비돼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신호를 준다. 표정, 움직임, 관계, 공간, 풍경.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이야기다. 당신은 그걸 그냥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는 그걸 되묻게 만든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저 표정 뒤에 어떤 감정이 숨어 있는가?”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진짜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건 철학이 아니다. 생존 기술이다. 보는 눈이 있는 사람만이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고, 사랑을 오래 유지하고, 비즈니스에서도 속지 않는다. 보는 능력이 곧 삶의 질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훈련된다. 나는 그 훈련의 첫 걸음을, 앤서니 브라운과 함께 했다.

 

 

KakaoTalk_20250511_225719104.jpg

 

 

 

태그 - 작가.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