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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미래를 비추는 검은 거울. 넷플릭스의 간판 시리즈 ‘블랙 미러(Black Mirror)’가 지난 4월 2년 만에 새로운 시즌을 공개했다.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 속에 현실 사회에 대한 통찰력 있는 상상을 그려내어 많은 팬들의 애정을 받았던 시리즈이기에, 기대되면서도 긴장되는 마음으로 첫 에피소드를 틀었다.

 

따뜻한 색감의 화면 안에는, 어떤 거리낌도 주지 않는 보통의 부부가 포근한 이불 아래서 발을 부비고 있었다. 아마 초반 러닝타임 중 아무 때나 캡처해서 본다면 블랙 미러의 장면이라 추측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 보고난 뒤엔, 어떤 에피소드보다도 끔찍한 결말을 준비하는 서막이었음을 알게 된다. 블랙 미러라는 거울을 통해 본 현실이 너무나도 비탄하여 그 여운을 여기에 공유함으로써 지금 발 딛고 있는 세상의 아직 남은 온기를 느껴보려 한다.

 

*이 글은 ‘블랙 미러(Black Mirror)’ 시즌 7의 첫 번째 에피소드 ‘보통 사람들(Common People)’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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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고 2세를 기다리던 평범한 부부 마이크와 아만다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뇌종양 진단에 위기를 맞는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웃으며 미래를 그리던 아내가 죽을 처지가 되자, 마이크는 절망에 빠진다. 이때 구원처럼 다가온 ‘리버마인드’라는 신생 회사는 아내의 뇌를 백업하고 수신 장치를 삽입해 생명을 이어갈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은 이용자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라며 ‘무료수술’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대신, 월에 300달러로 기술 이용을 이어가는 구독 서비스를 소개한다. 이외에는 아내를 살릴 방법이 없었던 마이크는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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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 부부의 삶은 가난, 그리고 가난이 빨아들이는 모든 인간성의 함락으로 굴러 들어간다. 구독료를 감당하기 위해 추가 근무에 허덕이던 부부는 1년이 지난 결혼기념일을 맞아 오랜만에 외곽 지역의 산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서비스 지역에서 벗어나 버리면서 아내의 뇌가 순간 정지하고, 급하게 찾아간 회사에서는 ‘리버마인드 플러스’를 내민다. 구독료는 500달러나 더 비싸고, 이제 ‘일반’ 버전이 되어버린 월 300달러 서비스는 이용자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광고 멘트를 말하도록 고객의 뇌를 ‘조작’한다. 교사인 아만다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광고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하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서비스 업그레이드는 이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선택이 된다. 그리고 오른 금액을 감당해야 하는 마이크는 ‘덤 더미스’라는 인터넷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행동을 해주며 돈을 마련하는 길을 택한다. 오줌을 마신다거나, 혀를 쥐덫에 넣는다거나 하는, 저런 짓을 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나 그 자신조차도 혀를 끌끌 찼던 일이었다.

 

결국 리버마인드의 계속되는 상업적 횡포에, 부부는 그동안 박탈당했던 인간성의 자리에 생명을 놓기로 한다. 괴롭게 아내를 안락사시킨 남편은 커터칼을 들고선 방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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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할 것조차 없는


 

자본주의 체제가 태동하던 시기에 칼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자본주의의 맹점은 시대가 변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생산수단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의 괴리이다. 다만 불완전한 정당화가 겹겹이 쌓이면서 이제는 비난할 대상조차 알 수 없는 ‘시스템’이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구독경제'를 그 알 수 없는 악마적 시스템으로 지목했다. 구독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인 ‘넷플릭스’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룬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이기도 하다. 현재 문화예술 플랫폼을 중점으로 크게 활성화되어 있는 구독 경제 시스템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창작자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구독료가 일방적으로 오르고, 광고는 갈수록 많아지고, 구독 해지 전 결정을 되묻는 수많은 메시지에 피로감을 느낀 경험은 다들 이미 한 번쯤 해보았을 터이다.

 

이 구독의 대상이 생명, 즉 첨단 의료기술이 된다면, 기술을 소유하거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된다면, 그 미래는 어떠할까. 의료 상업화는 이미 상당 부분 이루어져 있기에 미래라고 치부할 수만도 없어서 더욱 슬픈 일이다.

 

자유시장경제라는 이름 아래, 모든 개인의 신념과 가치, 생명의 자유까지 박탈할 때 단 하나의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돈’이라는 점은 우리를 참 비참하게 만든다. 선택.돈을 조금 포기해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결혼기념일을 축하할 수 있는 선택지. 생의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거나 자본의 노예가 됨으로써 생을 연장할 수 있는 선택지.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선택지에 나의 자유를 얼마나 행사할 수 있을까. 뿌연 거울 속의 다가올 사회는 돈이 아니라 사랑, 존엄, 자아실현처럼 뜬구름같은 것들에 의해 구분되는 선택지를 줄 수 있을까.

 

우리는 뜬구름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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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손을 잡는


 

행복에서 절망으로 추락하는, 전반적으로 하향하는 플롯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비관적이기만 하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 물론 논리적인 흐름이 이끄는 해석은 아니지만, 되짚어보면 카메라의 시선만큼은 그리 디스토피아적이지 않았다. 기술과 시스템 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내면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내용을 재구성해 보자면, ‘리버마인드’ - ‘리버마인드 플러스’ - ‘리버마인드 럭스(lux)’가 제시되는 때로 나눌 수도 있고, 4번의 결혼기념일이 되돌아오는 날을 기점으로 나눌 수도 있다.

 

전자는 커다란 바위가 단계적으로 쌓여 생을 짓누르는 과정이라면, 후자는 그 바위 아래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자 더 세게 잡는 인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결혼기념일’이란 얼마나 인간적인가. 결혼이라는 의식으로 타인과의 연결을 보증하고, 어찌 보면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을 ‘결혼기념일’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자축하는 일이니 말이다.

 

처음 이 작품을 보는 내내 가장 두려웠던 것이 있다면 ‘사랑 - 생명 연장 – 생명을 위해 필요한 돈 – 돈을 위해 필요한 노동 – 노동에 쓰는 시간과 체력’ : 이 굴레의 시작인 ‘사랑’을 잊고 서로를 증오하게 되는 결말이었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서는 몇 번의 다툼이 있었지만 끝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잃지 않는다. 이는 말하자면 디스토피아 속의 유토피아이다. 우리가 어떤 잔인한 세상에서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껌껌한 거울에 침입하는 한 줄기 섬광이다.

 

현실의 모습이 화면 너머 번번이 투영되어 보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인간으로서 무엇을 걱정하고 또 지킬 수 있을지 사유하게 하는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그 일곱 번째 시즌을 흥미롭게 즐겨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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