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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어떤 영화는 단지 보고만 있어도 위대함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영화가 스크린을 넘어 내 삶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이 내가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 '하나 그리고 둘'을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소회이자, 그의 영화를 사랑하게 된 이유이다.

 

'하나 그리고 둘'과 더불어 에드워드 양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예매해서 보러 갔다. 그리고 나는 2년 전 그 겨울에 느낀 그 감정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잊고 살았던 어떤 감각이 다시금 생동하는 듯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가 처음에 좋았던 큰 이유는 너무도 담담한 오프닝과 엔딩때문이었다. 힘을 준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지만, 이러한 오프닝과 엔딩이 에드워드 양이 만들어낸 이야기와 장면들과 결합될 때, 그 어떤 영화보다도 길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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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야간반으로 반을 옮긴다는 이야기가 영화의 오프닝부터 나오고, 그 뒤 문학과 합격생 이름을 읊는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그 뒤 엔딩에서 여전히 라디오 소리가 들리는데 그 라디오 이름에 '장첸'(극의 주인공 소년)의 이름이 나온다. 근데 이 담담히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가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장첸은 감옥에 있기 때문에 이 합격 소식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결말을 좋아한다. 누군가의 꿈 혹은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지만, 이제는 그걸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관객과 그 영화 속 주변인들이 모두 알고 있을 때 느껴지는 그 참담함. 그 참담함을 더군다나 이토록 담담하게 그려낸다는 것, 그런 엔딩은 영화를 평생토록 잊지 못하게 만드는 듯하다.

 

이는 기생충의 엔딩을 떠올리게 했다. 기우의 편지가 슬프게 느껴지는 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꿈 같은 느낌이 너무도 강렬하게 들기 때문에, 그러나 기우는 진짜로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기에. 그런 비극적인 엔딩은 슬프지만 그만큼 매력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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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 감독은 어떤 음악도 삽입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롱테이크로 어딘가에서 인물들을 바라본다. 그 정적인 연출에 매료되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당시 보았던 '해탄적일천' 속 꽃 사이로 쓰러져있던 여주인공의 모습과 햇살이 자연스레 묻어있는 그 화면에 깊이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느낌은 한국의 이창동 영화와 비슷한 듯하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필름 영화들. 기타노 다케시도 그렇고 에드워드 양도 그렇고 내가 이 두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그 특유의 화면 색감과 롱테이크로 인물을 비출 때 느껴지는 그 아스라한 느낌이다.

 

그런 화면 색감은 그 감독들만의 고유의 것, 결코 다른 영화에선 보지 못했던 것이고, 그들이 포착한 롱테이크를 보고 있노라 하면 출처 모를 아련한 느낌이 담담하게 마음을 옥죄어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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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절정에 달하는 부분, 장첸이 밍을 칼로 찌르는 장면은 상당히 갑작스럽게 나오는데 나는 이렇게 밍을 칼로 찌르고 풀 샷으로 잡는 그 프레임 속 주변인들의 반응과 그 공기가 너무도 태연해서 공포감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공포감 너머의 어떤 이상한 감정.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 그것도 저런 번화가 거리 한복판에서 칼로 찔러 살해하다니.

 

이 사건 이외의 나머지 것들은 어느 정도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진 것이겠지만 뭔가 실제 상황과 주인공의 심리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상당히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정황이지만 되려 그런 상황들이 매우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밍을 사랑한 장첸, 그러나 밍은 여전히 허니에게 마음을 품고 있는 듯하고 그녀는 단지 장첸으로부터 사랑을 주는 대가로 위로를 건네받는 것이 아닌 단지 일방적 사랑을 원한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내 개인적 의견이지만 밍과 장첸의 심리가 영화상에서 장면 혹은 대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 이전의 모든 상황을 보지 않고 장첸이 밍을 죽이는 그 순간의 장면만 보아도, 그 장면 속 밍과 장첸의 대사만 보아도 그들의 심리를 대강은 헤아릴 수 있을 듯하다. 그 장면 하나가 그 둘의 모든 서사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장첸의 살인은 매우 우발적인 것 같으면서도 애초에 칼을 챙겼다는 것부터 어느정도 그녀를 죽이기로 결심한 듯도 하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장첸은 그녀의 화답을 바랐던 게 아닐까. 그의 마지막 믿음이 배반된 결과로 돌아와 그는 결국 그녀를 칼로 찌른 듯하다. 장첸이 밍을 칼로 찔렀을 때 밍이 장첸을 자연스레 끌어안는데 그 장면이 난 참 슬프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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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는 에드워드 양 감독 작품 속 그 햇살을 사랑한다. 그가 어떤 식으로 빛을 활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자연광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 또한 이창동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그 로케이션들도 그렇고 인물들도 무척 매력적이다.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게 느껴지는 인물들이 있다. 에드워드 양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어딘가 그늘져 있다.

 

그 혼란스러운 시대와 상황에서 내내 방황하다 결국은 떠내려가는 이들의 얼굴, 그 씁쓸하고 그늘진 얼굴이 나는 그의 작품을 다시 회상할 때면 이따금 떠오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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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제는 에드워드 양 감독 같은 감독도 그런 작품도 나오지 못할 것 같다. 그건 에드워드 양 감독이었기에, 그 시대였기에, 그런 영화 제작 환경이었기에 가능한 기적 같은 일처럼도 느껴진다. 그의 영화가 이제는 볼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웠던 시대의 산물처럼도 느껴진다.

 

아마 기타노 다케시와 더불어 에드워드 양 감독은 내가 영화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내 인생과 평생 함께하며 종종 꺼내볼 작품들을 내게 선물해 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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