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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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저는 그 애를 만지지 않았어요. 칼을 들고 있던 나를 보고 그 애가 겁먹었을 때, 다른 애들이라면 그 애를 만졌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고요.”


어린 목소리로 내뱉는 말이 우리 사회를 관통한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던 심리학자의 숨이 잠시 멈추고, 이내 무너진 얼굴을 한 그녀는 수치와 참담함에 고개를 떨군다. '수치'. 해봐야 학교 안에서 세상을 배웠을 아이의 입에서, 사회의 역겨운 민낯이 여과없이 흘러나올 때 어른은 '수치'를 느낀다. 제이미는 억울하다. 왜냐면 자고로 다른 남자애들이라면 케이티가 겁에 질린 순간을 틈타 추행했을 텐데, 자기는 그 정도로 잔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 억울해 미치겠다는 소년의 목소리가 폐부를 찌른다. 올해 3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은 13살 소년의 목소리로 시대의 폭력성을 논한다. 권력욕과 인정 욕구, 폭력의 학습과 무감각, 뒤틀린 성 관념, 표현의 부재 등의 주제를 다루는 이 시리즈는, 그것들을 드라마로 담아내는 수준을 넘어, 낱낱이 기록하여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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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소년의 시간>이 고수한 원테이크

 

모든 회차를 원테이크로 촬영했다. <추적 60분>과도 같은 생생함이 특징이다. 인물이 동작하는 대로 따라가는 패닝 쇼트(panning shot: 카메라가 고정된 위치에서 수평으로 회전하면서 촬영하는 기법) 기법은 페이크 다큐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첫 번째 회차에서 경찰이 제이미의 집에 들이닥쳐 온 집안을 누빌 때 카메라는 마치 경찰의 몸에 달린 보디캠처럼 흔들리며 혼란함을 극대화한다. 행성 무늬 벽지와 인형으로 꾸며진 방에서 떨고 있는 제이미를 경찰이 체포할 때, 보는 이들에게 말 그대로 ‘침입당하는’ 감각이 전이된다. 폭력적인 진압 과정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소음과 흔들림은 시청자를 순식간에 몰입시킨다. <소년의 시간>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은 상징성을 지니며 시점의 변화를 예고하기도 한다. 특정 인물의 시점에 완전히 전념하여 사건을 바라보다가, 또 다른 인물이 옆을 지나가면 그의 뒤를 밟는다. 이내 보는 이들은 또다른 시점과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작품 속 인물과 사건이 불쾌하리만치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건 이 특수한 촬영 기법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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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은 사회 속 폭력의 전염

 

제이미가 체포되고, 경찰은 제이미가 일상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을 학교로 향한다. 제이미의 흔적을 따라 이곳저곳을 다니는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학생들이 일종의 배경처럼 등장하고 사라짐을 반복한다. 스쳐 지나가는 존재들로부터 교내 권력 체계와 폭력으로 물든 청소년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 뒷배경으로 잔잔히 나타나는 고수위의 폭력 행위와 욕설, 따돌림 문화의 현장을 목격할 때, 교정이 뿌리깊은 폭력과 위계의 현장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제이미와 심리학자 브라이어니 애리스턴이 나누는 대화에서도 ‘부패한’ 청소년 문화가 드러난다. 13살 아이들의 세상에선 같은 반 학우의 신체 부위가 담긴 사진을 유출 및 공유하는 행위나, 누군가를 ‘인셀’로 낙인찍어 평생을 갈 스티그마와 트라우마를 만드는 행위가 놀이로 간주된다. 이 모든 것이 유행을 타고 전염되어 자리잡고, 억눌린 분노가 세상을 놀래킬 폭력으로 표출되는, 억압되고 왜곡된 세상이다. 작품은 애덤을 향한 학교폭력, 이모티콘을 이용한 미묘한 MZ 식 사이버폭력 등, '사춘기 때 별 거 아닌 장난'으로 여겼던 모든 문제를 어른과 아이의 시각을 오가며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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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들은 지배 욕구의 거름을 먹고 자란다

 

제이미는 결과적으로 소년원이 아닌,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처벌보다는 분석이 필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브라이어니 애리스턴과 제이미는 사이에 책상 하나를 두고 방어와 공격을 반복한다. 이때 그들의 관계와 제이미의 감정에 따라 선명한 빛의 변화가 일어난다. 상담 초반, 제법 호의적이었던 제이미의 얼굴을 감싸는 따뜻한 색의 햇빛은 그를 순수한 남자아이로 그려낸다. 그러나, 애리스턴이 날카로운 질문들로 제이미의 약점을 파고들기 시작하자, 급격히 화면이 어두워지며 그의 안광 또한 소멸한다. 검은 눈빛의 제이미는 말한다. 케이티의 사진이 학교에 돌아서, 그녀가 심리적으로 약해졌을 때 데이트를 신청하면 자신을 받아줄 줄 알았다고. 그리고 이것이 영리하다고 생각했다고. 취약한 모습을 담은 사진을 유출한다는 것은 피해자의 힘과 총명함을 전소시킨다는 것을 잘 아는 제이미. 알 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해 케이티를 계략적으로 컨트롤하려 했다는 제이미. 익숙한 내러티브다. 기시감에 소름이 끼쳐 애리스턴과 함께 몸을 떨었다. 지배욕의 거름을 뿌리니, 아이가 보란 듯이 먹고 쑥쑥 자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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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는 무던한 자백으로 애리스턴을 충격에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내려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가시적으로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놀란 애리스턴이 ‘인스타그램’을 ‘페이스북’이라고 잘못 말하자 “괜찮아요? 내가 소리쳤을 때 무서웠어요?”라고 말하거나, “13살한테 겁먹는 거 창피하죠?” “내가 중요한 말이라도 할까 봐 기대하는 꼴 좀 보세요”라고 말하며 강한 통제 욕구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 만남이라고 선을 긋는 애리스턴에게 “그래도 선생님은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하셨죠?”라고 묻는다. 제이미는 관심을 바란다. 자신이 ‘likeable’ 한 존재이기를 바라고, 케이티로 인해 낙인찍혔던 ‘인셀’이 아닌, 강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보여지길 바라는 보편적인 인정욕구를 지닌 인물이다. ‘소외’와 ‘부적응’, 그리고 ‘사회적 인정 욕구’는 성인 범죄자를 설명하는 데에도 자주 쓰이는 표현들이다. <소년의 시간>은 그 모든 감정과 불확신(insecurity)을 13세짜리 마음에 투여해 주제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제이미의 권력과 남성성에 대한 집착이 어디서 기원하는지 알고자 하는 애리스턴은 제이미가 생각하는 남성, 아버지, 그리고 주변 어른들에 관해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제이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화가 날 때면 창고를 부술 때가 있었고, 공 차는 것보다는 그림을 좋아했던 제이미가 경기에서 부진하면 고개를 돌려버리기도 했다. 청소년기의 충동성과 제이미의 싸이코적 기질만이 비극에 작용했다기엔 분명 무리가 있다. 작품 초반, 스쳐지나는 학교 전경에서도 어떠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아이들을 벽에 몰아붙이며 소리를 지르는 선생의 모습, 원할 때 들락날락하는 열의없는 선생의 모습. 화재 경보가 울리면 운동장에서 오와 열을 맞춰 무조건적 순응과 질서를 요구당하는 아이들까지. 철제 펜스 안 아이들은 어른들의 노골적인 실망과 억압, 처벌을 경험하고 체내화한다. 제이미가 애리스턴을 향해 외치는 “당장 내 말 들어!” “이리 와서 앉아.” 따위의 명령적 문장들은 어쩌면 그가 아이로서 경험한 억압의 순간들을 그대로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품은 제이미가 지닌 가학성의 표면부터 뿌리까지 살펴보고 해석의 방향들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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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년의 시간>속 ‘Male gaze’

 

작품은 권력욕과 폭력성을 논하는 과정을 거치며, 남성 권력에 대한 논의에 도달한다. 그 중 '시선의 권력', 즉 '바라보며 대상화할 수 있는 권력'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제이미가 있는 정신병동의  CCTV 관리인은 애리스턴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쳐다보고, 그녀의 의사와 무관하게 사적인 부분에 대해 캐묻는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감시하듯 쳐다보고, 농담하는 투로 그녀의 자격과 능력을 의심한다. 애리스턴이 카메라를 통해 제이미를 분석하는 동안에도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를 앞세워 끝없는 질문으로 그녀의 영역을 침범한다. 건물 내 모든 곳을 볼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애리스턴을 바라볼 수 있는 CCTV 관리인이 가진 시선의 권력은 막강하다. 아이들은 SNS를 통한 현대판 Male gaze(여성을 남성의 시각, 욕망, 판타지를 기준으로 바라보고 재현하는 방식)에 이미 능통하다. 또래 학우의 신체 부위가 담긴 사진을 손에 넣었을 때 13살 남자아이들은 어떤 깨달음에 다다랐을까. 비로소 권력이란 무엇인지, 그로부터 기인하는 가학적 쾌감이란 무엇인지 인식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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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 child accused, everyone left to answer"

 

13살 남자아이가 같은 학교의 또래 여학생을 칼로 살해했다. 제이미가 '살인마의 기질'을 갖고 태어난 탓일까? 제이미를 잘못 키운 부모의 탓일까? 제이미를 '인셀'이라고 부른 케이티의 탓일까? <소년의 시간>은 보다 거시적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살인 사건이 주제로 하지만, 불가피하게 연결점을 지닌 모든 사회적 문제를 세밀히 분석하고 사실적으로 고발한다. 그리고 13살 소년의 시각과 목소리를 통해 사회적으로 당연시 여겨지고 용인되는 권력과 폭력의 재생산을 재탐구한다. 우린 그 모든 것을 내면화한 제이미라는 존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고, 알게 되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도록 작품에서 하나하나 짚어줬다. ‘은연중’에 드러나는 세대의 폭력성과 뒤틀린 관념에 대해, 사회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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