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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최종] 0413 더벨과 함께하는 지브리 페스티벌.jpg

 

 

평소 지인들과 종종 나눴던 질문이 있다. "너는 지브리 파야? 아니면 디즈니 파야?" 실은 둘 다 어마어마한 명성과 작품성을 자랑하는 영화 제작사이기 때문에 한쪽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 지브리와 디즈니 영화 모두 사랑하는 편이지만, 더 마음이 가는 쪽을 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내 선택은 언제나 변함없이 지브리였다. 가장 큰 이유는 "OST가 취향이라서"라고 할 수 있겠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기묘한 여관에 이끌린 '치히로'처럼, 다른 세계로 순식간에 점프한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 단지 듣기만 해도 마음이 요동치는 그 음악을 사랑하는 내게 '지브리 페스티벌'은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 영화관이나 OTT에서 들었을 때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는데, 60인조 오케스트라로 들으면 얼마나 경이롭고 웅장할지 벌써 기대가 앞섰다.

 

'지브리 페스티벌'은 지브리의 대표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에 등장하는 오리지널 OST와 더불어 이러한 음악을 쇼팽, 드뷔시, 리스트 등 클래식 거장들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무대까지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어느샌가 귀에 익은 친숙한 음악들이 서로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선사할 하모니에 하루빨리 롯데콘서트홀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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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주한 '지브리 페스티벌'은 피아니스트 송영민과 지휘자 안두현이 이끄는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진행되었다. 지브리와 클래식이 결합한 1부에서는 피아니스트 송영민의 친절한 해설 덕분에 클래식에 빠삭하지 않은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대중들에게 클래식이 좀 더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만약 '지브리 페스티벌'이 아닌 '클래식 페스티벌'이라면 내가 이 정도로 기대했을지, 또 그만큼 만족했을지 미지수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지브리'를,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클래식 작곡가의 스타일로 해석한 공연을 펼친다니 거부감이 없었다.

 

아예 몰랐던 곡을 새로이 알아가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지만, 원체 알던 곡이 색다르게 변했을 때 그 카타르시스도 만만치 않다. 이번에는 후자를 염두에 두고 관람을 결정했는데, 역시나 좋은 곡과 위대한 작곡가, 거기에 훌륭한 연주자들의 만남은 실패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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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이라 하면 으레 갖는 편견이 있다.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와는 상관없이 지루하고, 어렵고, 딱딱하다는 것. 실제로 '지브리 페스티벌'을 관람하러 갔을 당시에도 좌석에 착석하자마자 옆에서 "공연 보다가 자는 거 아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분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조는 기색은커녕, 퇴장할 때는 생각보다 재밌었다며 웃음을 짓고 나가셨다. 이처럼 '지브리 페스티벌'은 클래식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큰 노력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곡 도입부에 30초 정도 띄우는 영화 클립이었다. 필름콘서트처럼 영화와 음악이 동시에 진행되는 형태는 아니었고, 하이라이트 부분만 상영한 것 같았다. 대형 스크린의 쓰임새가 애니메이션 영화를 짧게 보여주는데 한정된 건 아쉬웠지만, 곡의 분위기를 잡고 그 세계로 몰입하게 이끄는 데는 충분했다. 영화의 테마에 맞춰 전환되는 조명 색도 시선을 사로잡으며 관객들의 집중도를 높였던 듯하다.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서 그런지 열심히 들었던 해설도 금방 휘발되었다. 공연이 끝난 후 엄청난 인파를 헤치고 나오니 기억이 뒤섞여서 무슨 곡을 들었고 어떤 점이 좋았는지 기록할 정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아직 떠오르는 무대는 피아니스트 송영민의 '인생의 회전목마' 피아노 솔로, 드뷔시 스타일로 편곡한 '원령공주', 오리지널 버전의 '바다가 보이는 마을'과 '너를 태우고'가 있다. 특히 '원령공주'는 서양과 동양의 조화로부터 탄생한 이색적이고도 몽환적인 선율이 신선해서 오래도록 뇌리에 머무른 듯하다.

 

*

 

이번 '지브리 페스티벌'을 관람할 때는 클래식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은지라 한정적인 시야에서 음악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다음에는 조금 더 섬세하게 듣고, 깊게 파고들 수 있도록 공부하고 가야겠다는 다짐이다. '지브리 페스티벌'은 매년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하는 공연이기에 지브리를 애호하거나 클래식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관람하길 추천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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