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에게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다. 순수하면서도 교훈을 주는 스토리, 둥글면서도 특유의 미감이 드러나는 그림체,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까지. 그중에서도 제일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지브리의 매력을 꼽는다면 바로 음악이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완성시키는 완벽한 조미료이자 조력자. 언뜻 보면 또 다른 주인공 같기도 하다.
이런 지브리의 음악은 애니메이션계에서 일종의 클래식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식적인 첫 번째 작품으로 인정받는 ‘천공의 성 라퓨타’는 무려 1986년에 발표되었고, 그 이전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의 손에서 만들어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또한 1984년에 개봉되었다. 비교를 위해 1984년 한국의 대표적인 히트곡을 뽑아본다면 이선희의 ‘J에게’, 나미의 ‘빙글빙글’이 있다. 그러나 지브리의 작품은 ‘복고’로 표현되기보다는 ‘클래식’에 가까운 평가를 받는다.
‘클래식’과 ‘복고’의 차이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시간이 흘러도 그 내용물들이 유행이었냐, 아니냐로 판가름할 수 있다. 3개월, 1년, 혹은 한 세대. 유행은 돌고 돌기 마련이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꿋꿋이 서 있는 것들이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이 바로 그런 존재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와 멜로디, 그것들이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지브리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은 그 이름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우리가 클래식 음악이라고 부르는 부류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클래식 음악은 스튜디오 지브리가 가져온 시간보다 그 세월이 한참은 길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그 이전의 그레고리오 성가부터 이어져 온 서양 음악의 줄기는 몇백 년 동안 그 사랑과 가치를 먹고 자랐다. 그러니 ‘클래식’이라는 이름 안에서 그들은 단순히 고전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일류, 명작이라는 타이틀 또한 거머쥐게 된다.
그렇다면 음악계에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둘이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드뷔시가 토토로의 음악을 작곡했다면, 쇼팽이 마녀 배달부 키키의 음악을 만들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또 다른 감상과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그 감동을 실제로 4월 13일, 롯데 콘서트홀에서 느끼고 왔다.
아르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이번 ‘더벨과 함께하는 지브리 페스티벌’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스튜디오 지브리 음악의 감동을 선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1부가 바로 다양한 클래식 작곡가의 스타일로 새롭게 탄생시킨 지브리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2부는 지브리의 완연한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오리지널 OST 트랙으로 짜였다. 지휘는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국립 음악원 오페라에서 한국 국적 최초로 오케스트라 지휘과 학·석사 졸업을 거친 안두현 지휘자가 맡았고, 1부의 피아노이자 해설은 현재 다양한 문화재단과 콘서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송영민 피아니스트가 맡았다.
이 묘한 콜라보레이션의 시작을 알리는 곡은 <이웃집 토토로>의 OST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었다. 여기에 드뷔시의 ‘꿈’이 더해지자, 몽환적이면서도 웅장한 느낌이 강화되어 전해졌다. 그 뒤로는 리스트와 비발디, 쇼팽, 라벨이 차례대로 지브리의 음악과 만나 친근하면서도 색다른 멜로디를 선사했다.
특히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 3악장’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OST ‘언제나 몇 번이라도’가 교차되어 들려온 순간에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기분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언제나 몇 번이라도’가 아련하고 감성적인 느낌이었다면, 비발디의 ‘가을 3악장’이 더해진 버전에서는 동화적이고 밝은 느낌이 훨씬 강조되었다. 마치 먼 미래에 센과 치히로가 다시 만나 산들거리는 바람 아래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런 1부의 크로스 오버가 인상적인 이유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지브리의 음악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 또한 색다르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가 ‘클래식’을 접한다고 할 때 제일 먼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지 잘 생각해 보면,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오랫동안 인정받고 있는 명작이라는 점에서는 존경스럽지만, 먼저 다가가거나 알아보기에는 지루하거나 지나치게 고급스럽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런 클래식과 지브리의 만남은 서로에게 상부상조를 불러올 수 있는 일종의 기회다. 클래식의 허들이 지브리로 인해 확연히 낮아지는 순간 관객들은 거부감 없이 이 양대 산맥의 조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몇몇은 중간중간마다 느껴지는 새로운 멜로디에 눈을 뜨고 비발디를 플레이리스트에 넣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송영민 해설자가 친절하게 이 악곡에 사용된 클래식의 멜로디를 들려줄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내 앞에 앉아 있는 아이의 뒤통수에 눈길이 갔다. 어두운 와중에도 이 공연에 확실히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여실히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왜 그렇게도 나에게 안심을 심어주었을까.
잠깐의 인터미션 후 이어진 2부에서는 지브리의 오리지널 OST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시간동안 나는 평소에도 Youtube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지브리의 음악이었지만, 역시 현장과는 비교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현장감을 제일 크게 살려주는 건 타악기의 거대한 울림이었다. 팀파니와 마림바, 탐탐이 내는 울림은 거대한 홀을 가득 가로질러 나의 피부에 직접 와 닿았다. 특히 곡이 절정으로 향할 때 그들의 진가는 발휘된다. 콘서트의 마지막 곡이었던 <천공의성 라퓨타> OST ‘너를 태우고’는 느린 템포 안에서 비장함과 감동을 가득 실은 노래다. 그래서 더욱 타악기와 관현악의 울림이 중요하다. 잔잔한 도입을 지나 휘몰아치는 하이라이트로 향할 때, 홀 안은 같은 감정과 울림을 하나같이 느끼며 동화된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피날레를 향해 달려갈수록 연주자의 얼굴과 손짓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악기에서 손이 떨어지고 난 뒤에 남은 건 완벽한 희열과 만족감이었다.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같은 시간이었다. 장장 두 시간 동안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두 장르는 많은 점들이 다르지만, 긴 세월을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세세한 이유는 각기 다를지라도, 오래도록 사랑받는 것들에게는 확실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본래 가진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수십 년, 수백 년 전의 이 보석들을 꺼내고, 어루만지고, 들어본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해가는 이 세상 속에서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존재들. 그래서 이 둘의 만남은 수없이 빠른 속도를 감당해야 할 현대인들에게 몇 없는 감동으로 남았을 터였다. 어렵고 지루한 게 아니라 또 다른 삶의 템포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시간을 통해 음악이 주는 힘을 확실하게 느꼈다. 우리의 삶을 한껏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 마음에 와닿는 멜로디 하나는 일상의 무드를 순식간에 바꿔버린다. 우리는 그렇게 많고 지루한 나날들을 바꿔가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클래식과 지브리의 음악은 그 자리에 서서, 쉬이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서 수많은 힘과 위로를 건넬 것이다. 그럼 우리는 그 힘을 받아 다시 미래로 나아가면 된다. 과거의 향수와 감동을 느껴가며, 미래에 만들어 나갈 또 다른 클래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