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공연을 좋아하지만 공연장에 찾아갈 때는 묘한 긴장을 하게 된다. 현대 재즈에는 전위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서다. 긴장과 해결, 반복되는 테마 하에서의 변주와 즉흥은 내가 재즈를 사랑하는 요소지만 지나치게 과감한 시도는 자주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내가 재즈 공연에 어느정도 방어적입 입장을 보이는 것은 긴장과 긴장과 긴장 그리고 혼란과 혼란과 혼란이 이어지는 재즈 공연을 몇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독특한 사운드를 실험하는 것이 국내외 연주자들에겐 하나의 트렌트가 된 모양이다.
그렇다고 쉽고 편안한 재즈만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나는 편안한 재즈라기보단 흥미로운 재즈를 듣고싶다. 스케일과 리듬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중간중간 관객들을 긴장하게 하면서 마음을 쥐고 흔드는 음악이 듣고 싶다. 현장감까지 더해지면 더할나위 없겠다.
그런 기대와 불안을 함께 안고 지난 4월 11일 오후 7시 반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성수아트홀을 찾았다. 이날은 재즈브릿지컴퍼니가 주최한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첫 내한공연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 그룹은 피아니스트 ‘마티스 피카드’를 중심으로 베이시스트 ‘파커 맥앨리스터’, 드러머 ‘조에 파스칼’이 한 팀을 이루고 있다. 셋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 영재로 평가받았으며 현재는 프랑스-미국-영국 등 다양한 국가를 넘나들며 연주를 이어오고 있다.
두팔로 만세 포즈를 취하며 유쾌하게 공연장으로 들어온 이들은 경쾌한 첫 곡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마치 공연장에 들어오기 전 가지고 있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듯이 아름답고 흥미로운 선율로 관객들을 맞았다.
이어진 인사와 곡들에서도 유쾌함이 묻어났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음악에 참여시키고 연주자들 스스로 현장감을 즐기며 연주를 이어갔다. 관객들은 리듬을 타며 음악을 함께 따라불렀고, 다양한 리액션으로 연주자들과 호흡했다.
전통적인 구성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실용음악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일렉 베이스를 사용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 둘은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일렉 베이스를 사용하면 좀 더 멜로딕한 연주를 이어갈 수 있고 픽업과 이펙트 페달을 활용해 다양한 사운드를 연출할 수 있어 장점이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베이스 톤이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몽글몽글하면서도 심이 살아있는 사운드는 공간을 빈틈없이 메우면서도 흐리멍텅하게 뭉개지지 않았고 ,필요한 순간마다 존재감이 살아있는 사운드로 그 적재적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주자의 실력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가면 피지컬적으로는 대부분 비슷해지기 때문에 프로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기타의 톤을 어떻게 세팅하는지가 중요한 요소라고 전공자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실제 이날도 중간중간 활용된 이펙트를 통한 사운드 변화가 공연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사실 나는 일종의 베이시스트다. 중학교 때부터 밴드부 생활을 해왔고(보컬이었지만) 지지난해에는 청년 예술 지원 사업에 선정돼 홍대에서 어느 공연장에서 전공자들과 함께 밴드 공연을 올려본 적도 있으니 말이다. (이번엔 베이스였다) 당연히 프로 연주자 만큼의 실력은 안 되지만 그만큼 음악을 사랑하고 즐길 줄은 안다. 일렉기타는 당근에 팔았고 베이스기타는 고장난 수리로 방치중이며 현생이 바빠 음악을 다시 해볼 생각은 못하고 있었지만 이번 공연을 들으며 간만에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베이스를 치며 단순 카피를 하거나 사보를 해본 경험 때문인지 나에게는 음악을 들을 때 베이스를 위주로 듣는 습관이 있다. 보통은 피아노나 일렉기타의 멜로디가 주 선율이고 베이스는 배경이겠지만 나한텐 베이스가 메인이다. 이날 공연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느껴졌다. 간만에 현장에서 만족하고 감탄할만한 베이스 연주를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그렇다고 다른 연주자들에게 모자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피아노와 드럼은 공연 중간중간 나의 귀와 마음을 베이스로부터 쟁취해냈으며 나는 때론 각자가 서로를 주장하고 때론 하나되어 조화롭게 어울리는 음들에 몸을 맡긴 채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이어진 색다른 시도들도 불쾌함이 느껴지지 않는 선에서 이뤄졌으며 공연에 다양성을 더해주는 방식으로 활용됐다.
공연이 당초 오후 9시까지 예정돼 있었으나 흔쾌히 무대 위에 다시 올라와 한참 동안 앵콜 무대를 만들어준 점도 좋았다. 앵콜이 긴 공연이 좋은 공연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진 않지만 이날 연주자들은 관객들의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줬으며 관객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진심으로 음악과 무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장르를 특정하기 어려운 경쾌하고 신나면서도 아름다운 재즈와 함께하는 봄 초입의 성수동 공연장, 즐거운 기억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