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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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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5일,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가 개최하는 제1회 기획전 《틔움》이 열렸다. 전시는 오는 14일까지 성수 맷멀MatMul에서 그 이름처럼 마침내 봄을 틔워낼 예정이다. 《틔움》에서는 회화,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 서적의 다채로운 언어를 통해 사유하는 Mia, 나른, 대성, 유사사, 은유의 작품을 선보인다. 다섯 작가들은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을 ‘반투명의 장막’을 거쳐 고찰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잠시 공유한다.

 

그중에서도 펜화 작가 유사사와 북 아티스트 Mia는 각 재료와의 흥미로운 작업이 담긴 작품을 소개한다. 실험적이고 인내를 동반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내 보이는 그들의 내면은 결코 낯설지만은 않다.

 

꽉 닫힌 것만 같은 봉우리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위해, 두 작가가 결국 틔워낸 새순을 보기 위해, 우리는 먼저 반투명한 장막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한다.


 


무형의 감정을 알게 모르게, 어렴풋하게 - 유사사


 

감정의 섬세함을 담아내는 유사사의 작업에서 펜은 빠질 수 없다. 색보다 선의 세밀함으로 그려내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작가의 초기 작업에서 중요한 ‘우울함’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첫 작업인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 시리즈는 10편의 글과 그림으로 이뤄져 있다. 새까맣게 칠한 검은 바탕에 베인 듯이 그어진 선은 달, 풀, 구름과 같은 자연물을 만들어낸다. 세밀한 펜의 표현과 친근한 형상이 만들어내는 생경한 풍경은 마치 흑백의 꿈속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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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배경이 주를 이뤄 접근하기 어려운 그림에 좀 더 다가가면 <어슴푸레한 눈맞춤> 연작을 만날 수 있다. 언뜻 아르누보의 화려하고 공예적인 장식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형체 없는 감정들을 자연물의 구체적인 ‘형태’로 옮기는 것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내면을 더욱 깊이 마주한다. 그 형태들은 다층의 레이어가 겹쳐진 형상을 만들어내며 마치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몽롱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응망>, <선잠>, <온기>, <적요>, <습기>로 구성된 다섯 개의 연작을 자세히 보면 열쇠 구멍이 있는 걸 알 수 있다. 앞선 시리즈의 어두운 배경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구멍은 결국 우리가 작가의 내면을 완전히 알 수 없을 거란 작은 좌절을 안겨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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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근작인 <하루>와 <수풀>, <하트>에서는 비교적 느슨한 이미지가 주를 이루며, 일상을 담은 사물들과 같이 친근한 존재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 세 작품의 테두리는 전작들과 다르게 반투명한 질감의 종이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내면세계와 현실의 경계가 그처럼 흐릿해진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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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로운 작업 방식은 결국 가장 신작인 <총총>에서 색의 ‘틔움’을 통해 완성된다. 우연한 계기로 사용한 하늘색 종이와 펜화 콜라주는 그의 주요한 감정인 ‘우울’의 재탄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첫 시리즈 중의 <그믐달의 왈츠>에서 힌트를 얻어 보면, 우울은 사실 우리를 춤추게 하고 들뜨게 하는 것일지 모른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은근하고 반투명한 것. 그 장막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우리는 유사사의 세계를 잠시 들여다볼 수 있다.

 

 


손짓과 입김으로 열어보는 시절의 감정 - Mia


 

북 아티스트, Mia는 어릴 적부터 그림과 이야기에 매료되어 자연스럽게 그 작업의 매체로 그림책을 선택했다. 기승전결을 따라 한 방향으로 넘겨보는 일반적인 그림책은 Mia의 탐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그의 작품이 책장을 넘기는 행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관객이 작품에서 필연적 존재임을 뜻한다. 관객이 자신의 속도로 책장을 넘길 때 의미는 실시간으로 생성되며, 작가의 메시지와 함께 움트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투명의 장막은 우리의 ‘손짓’을 통해 걷어진다.

 

첫 작품이자 네 권으로 기획된 첫 번째 단색 시리즈 The blue: bench는 양쪽으로 여닫는 프렌치 도어의 구조로 되어 있다. 동시에 펼치고 원하는 대로 넘겨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인물이나 놓인 사물들을, 그리고 양쪽에 적힌 형용사와 동사를 능동적으로 배치해 보면서 ‘이야기‘는 무한히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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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table에서는 테이블 한 편에 여성 인물이 있고, 반대편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창밖, 테이블 위 물건, 옷 등을 통해 우리는 부재하는 존재에 대해 마음껏 상상해 볼 수 있다.

 

또 이 연작을 비롯한 Mia의 작품은 동판화 혹은 그와 비슷한 질감이 사용되는데, 동판화는 간단히 말해 송진 가루를 분사해 판이 부식되는 원리를 이용하며, 아주 세밀한 명암 표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 그림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덕분인지 페이지를 넘기는 손은 추가 달린 듯이 느려지며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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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반투명은 투명하게 투과되는 이미지에 ‘입김‘을 불면 생기기도 한다. 작가의 입김, 즉 글로 불투명하게 가려진 것은 관객의 손짓과 만나 부분적으로 투명해진다. 마치 버스 창가에 입김을 후 불고 글씨를 적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제 Ça va>가 그러하다.

 

Ça va는 프랑스어로 “잘 지내?”와 “잘 지내”를 의미한다. 책 속의 책 형태로 만들어진 이 작업 가장 안쪽에는 그리운 옛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이 담겨있다. 다섯 가지 색상의 리소 인쇄로 화려한 실내의 그림은 흑백인 바깥 풍경과 대조되며 인물과 이야기에 집중하게 한다. 문득 떠오른 오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는 어쩐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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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복잡한 구조의 책을 제작하는 데에도 어김없이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편지를 전하지 않고, 정성을 들여 책 안에 숨겨둔 이유를 관객은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떤 우정은 사랑보다 진한 여운을 남긴다. 명확한 이별의 신호가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직접 제본을 해가며 만든 부치지 못할 편지 속 애달픔은 모노톤의 풍경을 걷을 때 드러나게 된다. 마치 입김이 서서히 사라지듯, 두꺼운 흰 종이부터 얇고 반투명한 종이까지 차례로 넘기면 그 감정을 함께 틔워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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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틔워낸다’고 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밝고 푸르른, 한없이 힘찬 이미지를 떠올린다. 결코 긍정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두 작가의 감정을 먹고 움튼 작품은 그런 편견을 깨어준다. 피어나지 않고서 해소될 수 없는 마음이 무엇인지, 형태는 없으나 분명하게 존재하는 내면의 그것을 우리는 반투명한 렌즈를 통해 알 수 있다. 꼭 이름 지어주지 않아도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거나, 넘겨보거나, 후- 불어보는 것을 통해 그 존재를 탐지할 수 있다.

 

《틔움》에서 유사사와 Mia를 비롯해 저만의 투명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은유, 나른, 대성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아트인사이트의 제1회 기획전인 《틔움》은 오는 14일까지 성수 맷멀MatMul(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7가길 3 지하 1층)에서 자리한다. 작가들의 다양한 아트상품을 구매할 수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작품 경매도 진행될 예정이다. 새순을 틔워내는 것은 햇빛만이 아니다. 비와 바람도 필요하다. 그렇게 오는 봄을 《틔움》에서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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