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피와 물보다도 진한, 어른들의 죄


 

원죄라는 개념이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것은 오늘날 인간의 원본이 되는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의 당부를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범한 최초의 죄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신을 배반한 죄로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고 그때부터 노동과 고통, 죽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두 죄인 이후의 인간들은 선조의 죄를 물려받아, 탄생과 동시에 하느님의 사랑을 배신하였다는 죄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아담과 이브의 자손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밖의 여러 이유로 일정한 의무를 물려받곤 한다. 연대보증, 연좌제와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누군가의 변제(혹은 속죄) 의무를 대신하여 수행한다는 점에서다. 만약 누군가가 타인의 연대보증인이 되거나, (연좌제가 만연한 시대에서) 죄인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면, 자신에게 대물려진 것이 있음을 알고 그를 갚으려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의무는 대개 주채무자와 연대보증인, 부모와 자식과 같이 개인 간에 전달되는 것이므로, 의무의 수행 주체를 명확히 분별할 수 있고, 수행의 의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죄가 나의 앞 세대, 가까운 누군가도 아닌 거대한 집단의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마치 1, 2차 세계대전에서 참혹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국가의 국민들에게 오늘날 요구되는 죄처럼 말이다. 단순 가족 단위, 마을 단위를 넘어 국가의 죄를 물려받는다면? 심지어는 몇 세대 위에서부터 대물려진 죄라면, 우리는 어떻게 그 죄를 인식할 수 있을까? 나와 핏줄 혹은 인연으로 이어진 사람의 것이 아니더라도, 과연 반기를 들지 않고 잠자코 고개 숙일 수 있을 텐가? 아니면 내 잘못이 아니라 말하고 자리를 뜨겠는가?

 

후대는 물려받은 선조의 죄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KakaoTalk_20250402_224329952.jpg

 

 

 

분명한 태도 하나


 

여기, 한 소녀가 죄를 물려받았다. 노라 크루크, 책 <나는 독일인입니다>의 저자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주어진 죄란? 바로 독일인으로서의 죄다.

 

크루크는 종전으로부터 30년도 훌쩍 지난 1977년에 태어났고, 세대 구분에 의하면 ‘전후戰後 2세대’로 분류된다. 독일의 전후세대로서 물려받은 죄란, 2차 대전이 종식되기 전까지 수많은 독일인들이 직간접적으로 동조하고 나치당이 주도하여 이루어진,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 범죄의 죄다. 수십 년도 전의 일, 세계 대전의 역사에서부터 그녀의 죄가 탄생하였다.

 

그녀가 나치 독일의 후손으로서 자기에게 물려진 죄가 있음을 깨달은 것은 학교에서 받은 ‘과거청산 교육’이 계기였다. 젊은이들을 필두로 일어난 68혁명에서 과거 나치 독일의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라는 요구가 등장함에 따라 마련된 역사 교육 방식이다. 이러한 교육은 나치 독일과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상세히 배우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며, 이에 따라 크루크도 직접 히틀러의 연설문을 분석하고 강제수용소에 방문하여 선조의 범죄를 깨닫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독일의 과거를 교육받은 그녀는, 이내 독일인으로서의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엄숙하게 맹세한다. 독일인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원죄, ‘물려받은 죄’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비밀을 들춘 이유


 

과거 독일이 저지른 표면적인 잘못뿐 아니라, 그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심리까지도 이제는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독일 국민들이 나치당을 지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믿는 종교와 생김새만 조금 다를 뿐, 자신과 닮은 인격체를 그토록 말살시키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에서 촉발되었다.

 

아리아인들의 우월성은 독일인의 우월성을 정당화했고, 그들이 가장 열등하다 여기는 민족의 학살을 부추겼다. 이제는 모두가 이러한 심리의 위험성을 깨달았고 독일인으로서의 우월 심리는 숨기고자 했다. 과거 독일의 영광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는 뒷방으로 치워놓아야 했다. 더 이상 독일인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들은 과거 시대와는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었고, 독일 전통과 방식의 사용을 금지했다. 전후 세대는 자기 고향의 역사를 알 수 없었고 독일의 국가도 부르지 않았으며, 오래된 민요 가사도 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독일인이었으나,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박탈당했던 것이다.

 

크루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기 민족이 무엇을 잘못하였는지는 알고 있었으나, 현재의 자기 민족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기 고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나치 시대 이후 가족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현재 자신의 세대까지 내려오며 어떤 가족사가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나치 역사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독일에 대한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무지에서 기인한 불안이 그녀의 십 대를 에워쌌다. 태어난 고향, 카를스루에의 노래도 역사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는 혼란이 그녀를 키웠다. 그녀는 어린 시절 내내, 현재 자기 정체성의 배경이 되는 Heimat([하이마트], 고향)의 개념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고향에서마저 배제되었다.

 

‘인간에겐 장소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했던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배경인 ‘하이마트’를 잃은 그녀는 결국 자신을 정의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 노라 크루크로서의 정체성을 그녀는 오래도록 얻을 수 없었다.

   

*    *    *

 

노라 크루크는 성인이 되어 뉴욕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독일을 ‘영원한 나치의 나라’라던가, ‘Schadenfreude(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의 발상지’라 부르는 등, 독일에 대한 시선은 곱지 못했다. 독일인으로서의 죄책감과 더불어 이제는 수치심까지 느끼는 그녀는 독일어 억양을 숨기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독일스러운 것을 쫓는 자신을 볼 때마다 ‘내가 독일인임을 절감’하고, 자신의 독일인 정체성을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이에 오래전 미국으로 이주해 온 독일계 미국인들의 후손과도 어울려 보지만, 독일에 대한 그리움과 독일인으로서의 죄책감 사이에서 방황하고 불편함을 겪게 된다.

 

독일과 뉴욕, 그 어느 곳에서도 편안함에 도달하지 못한 그녀는, 결국 정체성과 하이마트에 대한 질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여기서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자기 앞의 역사 즉 가족들이 겪어온 삶의 궤적을 알아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만이 추상적인 수치심과 죄책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분명히 되돌아보는 길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이 자신을 하이마트로, 즉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로, 자기의 집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학교에서 배운 거시사 이면의, 자기 가족들과 관련한 역사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분명하지 못한 태도 하나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의 가족사를 파헤치며 그녀가 가장 주목한 것은 나치 시대를 자기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것이다. 크루크의 어머니와 아버지 세대는 나치당이 활개를 치던 시절에 아직 어린 아기였기 때문에 그 시대를 잘 알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나치 관련 인물과의 연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침묵 되었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두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아빠와 이름이 같은 형, 프란츠-카를 삼촌과 엄마의 아빠, 빌리 할아버지였다.

 

프란츠-카를 삼촌은 가족들의 증언으로 회상하건대 다정하고 행실이 바른, 멋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를 존경하는 착한 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렇게나 멋진 삼촌이 겨우 18살에 히틀러의 군인으로서 전장에 나가 전사했다는 것은 가족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였을 테다. 삼촌은 어린 나이에 히틀러유겐트에 입단하여 활동하였고, 유대인들을 ‘독버섯’처럼 겉으로는 매혹적이나 속은 시커먼 존재라고 비유하기도 하였다. 사랑과 배려가 넘쳤던 삼촌이 유대인을 혐오하고 히틀러의 지시대로 전장에 나가 사람을 죽였다니! 어린 시절의 크루크는 이미 삼촌의 일기에서 이를 짐작한 바 있었으나,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감정을 숨겨야 했다.

 

삼촌을 회상하며 크루크는, 유대인을 독버섯에 비유한 이야기를 썼을 무렵의 삼촌이 겨우 열두 살이었지만 ‘유대인이 독버섯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할 만한 나이’라 분명히 말한다. 삼촌의 사상은 분명히 잘못되었고, 자신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챕터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녀는 꼭 조이고 있던 감정의 주머니를 무심코 열고 만다. 삼촌의 유대인 박해와 나치 추종을 비난하겠지만, 그럼에도 ‘삼촌의 삶이 어땠을지 이해하고 싶었다’고.

 

*    *    *

 

가족의 이야기를 파헤칠수록 고삐를 쥔 손에 힘이 풀린다. 그것이 빌리 할아버지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극에 달한다. ‘할아버지가 나치였는가?’라는 질문을 해소해 줄 정보를 찾으러 크루크는 카를스루에 지역의 기록보관소에 방문한다. 거기서 전쟁 중 나치와 관련한 활동 여부에 대해 묻는 미군 측 질문지에, 전쟁이 끝난 시점의 할아버지가 응답한 기록을 본다.

 

“아래 열거된 조직들에 가입했는지 여부와 가입 당시 맡았던 직책을 표에 기입하시오.”라는 질문. ‘NSDAP(나치당)’ 항목. “Ja(네)”라고 응답한 글자. 할아버지가 ‘Wehrmacht(독일 국방군)’ 제복을 입은 사진을 보았을 때도, 할아버지가 전쟁 포로로 잡혀있었다고 말한 것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을 때도 놓지 않았던 한 줌의 여지마저 사라지고, 크루크는 끝내 무너지고 만다.

 

그렇다. 크루크를 비롯하여 엄마와 이모 모두 몰랐지만, 사실 빌리 할아버지는 1933년 나치당에 가입한 당원이었던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파일을 넘기던 그녀는 전후 이루어진 재판에서 할아버지가 끝내 나치의 ‘부역자’로 지정되었다는 기록을 보자 ‘갑자기 할아버지 편’이 되었다. 해당 페이지에 그려진 할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불이 치솟는다. 그 모습이 어쩐지 손녀와 닮은 것 같다. 그토록 나치 독일의 과거를 비난하고 반성하면서도, 동시에 할아버지가 무고했거나 혹은 나치에 아주 동조하지는 않았다는 기록을 찾기를 바라는, 할아버지를 옹호하는 그녀 크루크와.


 

 

당신의 시간을 기다린다


 

선조에게서 물려진 역사와 그 죗값의 수용 태도에 있어 책의 전반에 걸쳐 크루크는 모호한 입장을 보인다. 가족사를 탐구하기 전의 내용이 담긴, 책의 초반에서는 나치 독일과 거리를 두고 분명히 선을 긋지만, 여정이 계속될수록 나치에 가담한 삼촌과 할아버지를 감정적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태도를 보인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그들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데에서 이 책과 작가를 향한 지적이 제기된다.

 

이 시점에서 글의 초반에서 던진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후대는 물려받은 선조의 죄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가장 모범적인 대답은 독일의 과거청산 교육 방식대로 분명히 직시하고 반성, 사과하는 것일 테다. 이러한 시선에서 보면 노라 크루크의 태도는 위선적이라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혼란스러운 태도를 마냥 지적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이중적 반응은 역사를 회피하고자 하는 위선적인 것이 아니라, 거시사 이면의 미시사까지 받아들이며 두 차원의 역사를 결합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시점의 것이기 때문이다.

 

거시사의 영역은 오히려 거리를 두고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다. 자신과 연관되지 않은 것이기에 잘못의 여부가 분명히 보인다. 그러나 미시사, 특히 가족에 대한 역사를 받아들이는 첫 시점에서는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태도일 수 있다. 마치 가깝지 않은 사람의 슬픔은 큰 고민 없이 위로할 수 있지만, 가까운 이의 슬픔에서 더욱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책 속의 그녀는 가족의 역사를 처음 접한 상태로, 아직 그 감정을 처리하는 단계에 머물러있는 것일지 모른다.

 

책에서는 그녀가 삼촌과 빌리 할아버지의 행위를 두고 분명한 결론을 밝히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이 책 자체가 가족의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에 집중한 책이기 때문이다. 분명 그 여정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감정도 차분히 가라앉은 뒤, 그녀가 내린 결론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치 독일의 거대한 범죄와 자기 가족들의 연관성에 대하여. 그리고 아마 그 결론이 자기 가족의 옹호로 마무리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그러고자 했다면 애초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출판될 일도 없이 영원히 비밀에 부쳐졌을 테니 말이다.

 

선조의 죄에 대해 후대는 분명 직시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어쩌면 개인이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크루크는 가족의 역사를 찾아가는 그 오랜 기간 동안 두 차원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혼란의 시기를 거쳤을 것이다. 그러한 시기가 지나고 가족의 죄라는 불편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마침내 이 책을 출판하여 역사를 직시한 것이 그 방황의 결론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결론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저 먼 땅의 누군가도 방황의 시간을 걷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