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슈가맨이 있다.
한때 많은 관심 혹은 애정을 쏟았던 뮤지션이 언젠가를 기점으로 더 이상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작업물을 발표하지 않는 것만큼 서글픈 일이 또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괜스레 그들의 마지막 앨범을 반복해 들으며 그리움을 달래는 것뿐이겠지만, 가끔씩은 혹시 그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우리 곁에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공연한 기대에 빠져 보기도 한다.
의미 없는 미련이라고 해도 별수는 없다. 이것은 생각이 아닌 마음에 기인하는 현상이니까.
TBNY
어쩌면 우리는 다이나믹 듀오나 리쌍과 같이 국내 대중음악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매력적인 힙합 듀오를 너무나도 쉽게 떠나보냈는지도 모르겠다.
특유의 개성적인 플로우와 탄탄한 실력을 기반으로 다수의 힙합 팬들을 매료시켰던 TBNY는 소속사와의 상표권 분쟁을 겪으며 차후 활동이 지지부진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
‘왜 서있어’, ‘Hey DJ’와 같은 곡들을 통해 대중적 성공에 대한 가능성 역시 일부 확인했던 그들이기에, 이런 식의 허무한 퇴장은 그들의 행보를 응원하던 이들에게 유독 아쉬운 형태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들은 자신들의 정규 2집을 Side A와 Side B로 나누어 두 차례에 걸쳐 발매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Side A의 발매 이후 팀이 해체됨에 따라 그들의 마지막 앨범은 애석하게도 영원한 미완성 작품으로 남고 말았다.
부디 그들이 언젠가는 TBNY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와 앨범의 나머지 절반을 훌륭히 완성시켜줄 수 있기를.
DEEZ
근래에는 알앤비 뮤지션보다 케이팝 프로듀서로서 보다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는 디즈이지만, 국내에서 흑인음악을 조금이라도 심도 있게 탐닉해 본 이들이라면 그의 작업물들이 우리에게 선사했던 신선한 감흥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앨범 [Get Real]이 발매된 지도 어느덧 1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나, 디즈 이후 국내 알앤비 장르 팬들의 오랜 갈증을 해결해 줄 법한 네오 소울 뮤지션의 등장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Sugar’, ‘Devil’s Candy’, ‘너 하나면 돼’ 등 그를 대표하는 트랙들은 발매 이래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충분히 세련된 인상을 자아내는 곡들이다. 시대를 타지 않는 감각적인 작업물을 통해 이미 알앤비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한껏 증명해낸 그인 만큼, 언젠가는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건 새로운 앨범으로 팬들의 곁에 돌아와 주지 않을까 공연히 기대해 볼 뿐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이쯤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다면, 혹자는 이러한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비교적 최근까지 꾸준히 작업물을 발표하고 있는 ‘장기하’의 음악을 기다리면 될 것이 아닌가?
물론 프론트맨 장기하가 밴드 내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장기하 개인의 음악을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과 동일시하기에는 ‘얼굴들’이 지닌 매력 또한 결코 가볍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집 [장기하와 얼굴들]을 기점으로 밴드로서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며 본인들의 색깔을 더욱 공고히 한 장기하와 얼굴들은 장기하 특유의 간결한 보컬과 풍성한 밴드 사운드를 적절히 융화함으로써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자신들이 지닌 매력을 고루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들이 걸어온 발자취에 스스로 만족감을 표하며 밴드로서의 ‘졸업’을 선언한 그들이기에 재결합을 바라는 것은 다소 그릇된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따금 그들의 독보적인 소리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