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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다는 유명한 노랫말이 있다. <스윙걸즈>를 보며 이 가사가 떠오른 이유는 아마도 등장인물들의 웃음 때문인 것 같다. 우연히 빅밴드를 시작하고 청소년 음악제에 오르기까지의 반년 동안 시행착오와 난관이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억지스럽고 막막한 일들의 연속이지만 그들은 솔직하게 웃고 운다.


열심히 노력하고도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거나 열심히 모은 돈으로 산 중고 악기가 아주 엉망진창이라거나 기껏 만든 단복을 기차에 두고 내린다거나. 노력은 자꾸 배신당한다. 예상을 벗어나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가 생겨난다. 그런 만큼 이들에게는 상상도 못 한 기회가 주어지거나 우연이 펼쳐진다. 두 밴드 부원의 전 남자친구들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악기를 고치고 여름 보충학습을 빼주셨던 선생님께서 재즈에 관심이 많다거나 송이버섯을 캐러 간 산에서 멧돼지를 잡아 장학금을 받기도 한다.


적어두고 보니 역시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소녀들(그리고 소년 하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스윙걸즈의 역경은 삶의 에피소드로 남을 뿐 지독한 절망으로 묘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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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이 영화를 청소년기에 보았다면 지금과 상이한 감상을 남겼을 것 같다. 등장인물들이 당장 곁의 반 친구들처럼 느껴져서 여유롭게 관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속 좌충우들이 나의 일이 되거나 친구들이 이런 짓을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졌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듯 한 발짝 떨어져 흐뭇하게 바라볼 때 그들의 반짝거림을 알아볼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시절을 지나간 사람들을 위한 청춘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청춘이 지나간 사람들을 위한다기보다는 엄밀히 말해서 너그럽지 않은 삶을 헤쳐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가 적절할 것 같다.


실수나 무지가 문제가 되지 않는 하루하루. 스윙걸즈가 일을 저질러버렸을 때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 물론 이들도 혼나고 무시당하고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영화 속 세상은 스윙걸즈에게 꽤 너그럽게 군다. 항상 다음 기회가 이들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 속 세상의 또 다른 매력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학교의 주인공이 아닌 일반 학생들과 다소 불량아처럼 보이는 학생들, 독특한 이력을 가진 주변 친구들까지. 모두 같이 악기를 들고 연주한다. 이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음악은 클래식만 듣다 보니 재즈가 낯선 사람들도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흥겹게 즐길 수 있다. 각자 마음에 드는 리듬을 찾아 신난 모습은 자유로워보기까지 한다.


으레 청춘물이 '그럴 수 있는, 그래도 되는' 특별한 시기를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 시기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그 시기를 벗어나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다시 말하면 잊고 있었던 반짝거림과 여유를 일깨우는 이야기들인 셈이다. 꼭 그래야 하는 때라는 건 없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잠시 가려두었던 나만의 리듬을 다시 한번 쫓아가 볼 때라고 주문을 걸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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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영화다 보니 현재의 감성으로는 조금 걸리는 포인트들이 있다. 그럼에도 여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삶을 평소와 다른 시선으로 지켜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스윙걸즈의 음악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얼렁뚱땅일지라도 웃고 있는 모습에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서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쭉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얼렁뚱땅'이라고 웃고 놀릴지라도 스윙걸즈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느 날에는 성취와 상관없이 과정으로만 만족할 수도 있다는 법을 느낀 영화였다.


재개봉한 '스윙걸즈'를 보고 들어간 빵집에서도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호등 소리에서도 길가의 음악 소리에서도 스윙리듬을 찾던 등장인물처럼 어디에나 스윙 리듬이 울리고 있었다. 정말로 어떤 박자로 어떤 속도로 살아가는지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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