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몸의 주인이며, 감각과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주체'라는 느낌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 자기(minimal self)이다. 이 개념들을 그림 감상에 적용하면, '그림 앞에 서서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즉 "나는 감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인공지능 기술은 예술 창작의 영역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AI 모델들이 인간의 상상력을 구현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언어 모델은 시와 소설을 써내며, 심지어 교향곡까지 작곡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머지않아 AI가 생성한 예술 작품과 인간의 창작물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창작'에 집중하던 것과 달리, 이번 책에서는 '감상'에 집중한다. 책에서 말했듯이, "미래에 최첨단 인공지능이 그림을 창작하고 평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림 앞에 서서 감상하고 있는 감상자의 마음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인공지능 시대에 감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화두를 던진다.
미래에 최첨단 인공지능이 그림을 창작하고 평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림 앞에 서서 감상하고 있는 감상자의 마음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설령 인공지능이 그림 감상을 하고 분석을 한다고 치더라도 그림 감상 자체는 타인 또는 다른 존재와 절연된 감상자만의 영역인 것이다. 물론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먼 미래에 자신은 집에 가만히 누워 있고 자신의 아바타가 미술관에 가서 감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도 결국 감상의 느낌은 그 아바타가 아닌 집에 있는 '나'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그림 감상은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감상은 단순한 정보 처리나 분석의 과정이 아니다. 감상은 감상자의 인생 경험, 감정적 배경, 문화적 맥락, 그리고 순간의 기분까지 모두 녹아든 총체적 경험이다. 『감상의 심리학』이 특별한 이유는 감상이라는 행위가 지닌 고유한 특성을 명확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그림 감상 자체는 타인 또는 다른 존재와 절연된 감상자만의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감상의 본질적 특성을 정확히 짚어낸 통찰이다. 동일한 작품을 보더라도 각자의 감상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 어떤 작품을 보며 누군가는 첫사랑의 설렘을, 다른 이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또 다른 이는 인간 관계의 복잡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경험한다.
인공지능은 아무리 발전해도 이러한 개인적 맥락과 경험의 총체성을 가질 수 없다. 인공지능은 작품의 형식적 요소를 분석하고, 색채의 심리적 효과를 계산하고, 구도의 균형을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작품 앞에서 느끼는 가슴 떨림, 등 뒤로 흐르는 전율, 눈시울을 적시는 감동은 오직 인간만이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감상의 객관성을 찾아서
책에서 설명하듯, 예술이란 철저히 주관적이고, 예술 작품은 창작자의 영감이나 광기, 시대적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에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존의 관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이는 감상이라는 주관적 경험에도 일정한 객관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소개하는 흥미로운 실험들은 이러한 객관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0.1 초만에 그림의 상당한 특징을 파악할 수 있으며, 미술관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10초 이내에 그림을 더 볼지 말지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의 감상 행위에 일정한 패턴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또한 그림에 대한 정보, 제목, 설명이 감상에 주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는 큐레이터와 미술관이 관람객의 경험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실용적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추상화와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일수록 적절한 정보 제공이 감상의 질을 높인다는 사실은 미술 교육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인공지능 시대, 감상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역설적이게도,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역을 더 많이 장악할수록 감상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창작이 알고리즘화되고 자동화될수록, 감상이라는 인간 고유의 경험은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그림 감상은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책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예술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술적 완성도? 창의적 독창성? 아니면 그것을 경험하는 인간의 내면적 변화인가? 『감상의 심리학』은 후자에 무게를 둔다. 예술의 궁극적 가치는 감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성장, 그리고 깨달음에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앞지르는 영역이 늘어날수록, '인간다움'의 의미는 재정의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재정의의 중심에는 감상이라는 행위가 자리할 가능성이 크다. 감상은 단순한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내적 경험이다. 즉, "감상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능동적인 심리적 과정"이다.
감상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공감 능력을 확장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책에서 소개하는 미술관 감상 전략은 우리의 감상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아주 짧게 휙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마음을 끄는 그림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그 그림들만 집중적으로 감상하는 전략"은 실용적이면서도 감상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다.
『감상의 심리학』을 통해 저자는 감상이라는 행위가 지닌 고유한 가치를 재조명한다.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역을 넓혀가는 시대에, 감상은 더욱 인간만의 고유한 특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창작과 감상, 둘 중 하나만으로는 예술이 완성될 수 없다. 그리고 감상의 순간에 우리는 가장 인간다워진다.
인공 지능 시대에도 감상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감상은 예술 경험의 본질이며,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고유한 영역으로서 더욱 빛날 것이다. 『감상의 심리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상의 가치를 일깨우는 소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