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One-day Gooner’가 되어보다
지난 화요일, 영국의 프로축구 리그 팀 아스날 FC의 팬인 석사 과정 동기 S와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투어를 했다. 2년 전 영국에 처음 왔을 때 북런던 더비이자 한국의 손흥민 선수가 적을 두고 있는 토트넘 구장을 방문한 이후 두 번째 축구 경기장 방문이다. 선수 칼라피오리에 대한 팬심을 계기로 아스날의 팬이 된 S가 빌려준 아스날 목도리를 두른 채 오늘 하루는 Gooner¹가 되어 경기장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아스날 구장 전경 (2025년 3월 18일 직접 촬영)
투어를 통해 경기가 진행되는 필드, 트레이닝 및 샤워장, 인터뷰를 진행하는 프레스 룸 등 실제로 선수들과 감독이 사용하는 시설들을 직접 방문할 수 있었다. 평소에 축구를 즐겨보지 않는 나조차도 흥미로웠던 탐험이었다. 동경하던 대상의 현장을 직접 방문한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한 편으로는 공연장의 백 스테이지를 구경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코스를 따라 투어를 마치고 나니 이러한 경험이 관객들에게는 경기를 보고, 공연을 보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단에 대한 애착을 강화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아스날 구장 인터뷰룸, 다양한 국가에서 온 관광객들이 인터뷰 상황극을 한다. (2025년 3월 18일 직접 촬영)
프로 스포츠 구단이 문화 조직으로서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
‘문화 조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보통은 미술, 공연, 음악을 다루는 조직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스포츠 구단 또한 특정 지역과 연고를 맺어 그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부가 되며, 유니폼, 구단의 역사, 지역의 특성과 연계한 경기 외적 운영 등으로 적극적인 스토리텔링을 이루어 구단의 팬이라는 일종의 소속감과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이들 또한 문화 조직이다.
스포츠 산업의 구단들은 조직의 수입원 마련과 장기적인 충성 고객 유치를 위해 다방면에서 문화가 지니는 특수성과 소속감을 경영 자원으로 적극 활용한다². 예를 들어, 내가 응원하는 구단이자 오는 3월 22일 수원에서 프로야구 개막전을 앞둔 kt 위즈는 홈 구장에서 승리할 경우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는 좌석을 판매한다. 또한, 연고지인 수원의 문화적 개성을 살려 경기장에 수원 화성을 연상시키는 장식이 부착된 전광판과 깃발을 설치했으며, 수원의 이름에 있는 ‘水’라는 한자에서 착안하여 국내 프로야구 최초로 여름 워터 페스티벌을 런칭해 연고지의 특성을 활용하여 관객들이 야구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을 확장했다. 아이돌 산업의 응원봉을 벤치마킹한 응원 도구 ‘비트배트’를 출시로 가장 역사가 짧은 구단임에도 새로운 응원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kt 위즈 구장 전경, 전광판에 수원 화성이 보인다. (2022년 10월 22일 직접 촬영)
즉, 프로 스포츠 구단은 브랜딩, 마케팅, 상품 기획 등을 통해 문화를 활용 및 형성하여 관객들이 구단과 애착을 키울 수 있는 경험의 범위를 확장한다. 이는 한 조직의 관점에서 재원 다각화를 위한 상업적 전략이라는 이점 뿐만 아니라 거시적 관점에서 해당 종목 자체에 대한 산업의 부흥과 대중성 강화를 도모할 수 있다. 산업의 규모와 대중적 선호도 확대, 스포츠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산업 전반에 필요한 노력일지 모르겠다.
국내 문화예술 조직들의 관계 맺음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향유 경험의 다각화
아스날의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투어를 하며, 비단 스포츠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산업 전반의 제도적 특성과 자금 규모를 고려했을 때 장기적인 성장과 규모 확장을 위해서는 청중 경험 다각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시장에 자리 잡은 일부 대형 사기업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공 및 사립 중소 문화예술 조직들은 문체부, 지역 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의 공공 기관이 지원하는 공적 자금으로 운영 보조금을 충당한다. 이는 문화예술 산업의 규모 확장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은 예외로 하더라도, 대부분의 문화예술 조직들은 그들의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해 상업적 가치보다 공공성과 문화복지 기여도를 보조금 출연 기관에 강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향유자 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상업성보다 공공성을 우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공공 지원 기관의 정형화된 기준이 수혜 집단의 개성을 획일화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재정적 규모도 낙관적인 편은 아니다. 2025년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에 투입된 정부 예산은 전체 677조 중 약 7조 1000억으로 전체 예산의 단 1%에 불과하다. 이 7조로 스포츠, 관광, 문화예술, 한류 산업을 모두 지원해야 한다. 이 중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사업으로 편성된 예산은 약 2778억이다³. 이는 음악, 공연, 시각 예술 등 세분화된 예술 산업군에 투입되는 예산은 더 적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일부 대형 사기업을 제외하면 국내 문화예술 산업은 공공 보조금 의존도가 높으며 그 규모조차도 큰 편은 아니다. 이로 인해 문화예술 관계자들은 정부의 전체 예산안 중 문체부 예산 편성 비율 2% 도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2% 도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여정은 쉽지 않다. 산업 자체에 대한 청중들의 장기적 관심을 유도하여 사회적으로 보조금 확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강화하고, 문화예술 산업의 크고 작은 소비 기회를 확대하여 산업에 흐르는 자금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북미와 서유럽의 문화예술 기관들은 청중들과의 관계 형성 수단으로 후원과 자선 활동 활성화를 주요 전략의 일환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는 자본을 축적했던 중세의 종교와 르네상스 이후 귀족들이 가난한 예술가들을 후원하던 관행에서 발전된 것이기에 식민지배와 전쟁을 거쳐 20세기 후반부터 문화예술 산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던 한국이 전면에 벤치마킹할 전략은 아니다. 따라서 스포츠 구단의 운영 전략에서 보았듯, 합리적인 예산 내에서 청중들이 전시를 감상하는 것 외의 다양한 예술 향유 경험을 구축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동시대의 국내 문화예술 산업이 경영전략의 불모지일 정도로 고리타분한가? 사실 주어진 여건 상에서는 최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시각 예술 산업을 예로 들자면, 일부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 수장고를 개방하여 공연장의 백스테이지 투어와 비슷한 향유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젊은 세대와의 공감을 위한 전략도 있다. 지난 해 부산현대미술관의 아트숍은 청년층 사이에서 서브 컬쳐로 여겨지는 가챠 기구를 활용해 백남준의 작품을 귀여운 일러스트로 제작한 핀뱃지를 판매했다. 2024 부산비엔날레는 웹사이트에 온라인 mbti 테스트와 유사한 작품 성향 테스트를 운영하여 사이트 방문자들의 흥미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을 소개했다. 아시아프의 10만원 그림, 예술의 전당의 예술 상점 등은 미술대학 학생들과 갓 커리어를 시작한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을 마련하여 다양한 소비자들이소비자들이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최소 유명 브랜드의 전자기기 1대 값을 지출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이고 작품 소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가정과 개인 사업장에 월정액 그림 렌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작품의 본질을 소홀히 할 정도로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다양한 향유 경험을 통해 문화예술에 대한 청중들의 관심을 확장하기 위한 산업의 노력은 지속적인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다. 새로운 문화예술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중소 사업들을 지원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역할도 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1. 아스날의 선수들을 부르는 애칭은 ‘The Gunners’, 팬들을 부르는 애칭은 ‘The Gooners’다.
2.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은 많이 이기는 것이다. kt 위즈도 2025년 효과적인 마케팅을 이루기를 바란다.
3. 2025년 추진 예정인 ‘문화체육관광부 주요 사업’의 편성 예산이기에 명시되지 않은 부대사업 예산과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사업 및 사기업 문화재단의 예산을 고려하면 실제 투입 예산은 2778억보다 많을 것이다. 다만 장르와 향유자를 세분화하면 여전히 넉넉하지 않은 예산 편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