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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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글이 안 써졌다. 일기나 단상, 초안도 되지 못하는 어설픈 문장들이라야 끄적였지만 하나의 완성된 글은 써내지 못했다. 나를 고용해야 한다고 공작새처럼 몸집을 부풀린 문서를 몇 주 동안 붙잡고 있으면서 마음이 쪼그라든 탓이었다. 뭔가를 들여놓는 것도 버거웠고, 꺼내놓는 것은 더 쉽지 않았다. 모든 사람 앞에서 작아졌다. 글 하나라도 완성해야 존재가 펴질 기미라도 보일 텐데, 원래 계획했던 주제를 도저히 쓸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를 소개하는 내용인데, 카페 인테리어를 관찰하고 조금 묘사해 두긴 했어도, 이미 방문한 지 몇 주나 지나서 인상도 흐릿해진 데다 그때의 감각을 행복하게 곱씹으며 글을 쓸 만큼 마음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러다 엊그제 문득, 영화 〈소공녀〉가 떠올랐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A little princess’가 아닌 〈Microhabitat〉다. 미소서식지라는 뜻인데, 아주 작은 미소 생물이 서식하는 환경 혹은 하나의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을 갖춘 최소한의 서식지를 의미한다. 이 제목이 재미있는 이유는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미소이기 때문이다. 미소는 갈수록 치솟는 물가에 좋아하는 위스키와 담배 대신 집을 포기하고, 대학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다 나중에는 저 한 몸 간신히 누일 텐트에서 사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이름에 맞게 최소한의 서식지에도 만족한다. 나도 이정도 작아졌으면 미소 생물이라고 쳐도 되지 않을까. 그러니 나에게 맞는 미소 글을 쓰는 것이다. 영화를 깊이 음미한 뒤에, 카페의 구석구석을 온몸으로 느끼고 나서야 거창한 글을 써야 하나? 꼭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리뷰를 써야 하나? 초반 두 꼭지만 읽고 미소하게 느낀 점을 써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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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생각은 문보영 시인의 『일기시대』 덕분이다. 일기 쓰기를 사랑하는 시인의 일기 비슷한 글을 모은 산문집인데, 재작년에 우연히 찾아 읽었다가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 읽었을 때만큼의 감동을 받지 못할까 봐 최근에는 부러 읽지 않다가 급히 수혈하는 마음으로 꺼내 들었다. 진심을 담으면서도 좀 더 가볍게 글을 쓰기 위한 영감이 간절했다.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재치 있는 상상력과 표현을 주워 에세이를 쓰는 데 시인들의 산문만큼 좋은 게 없었다.

그간의 걱정이 무색하게 두 꼭지를 읽자마자 또 반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작년에 처음 이 책의 초반부를 읽을 때는, 낯선 작가에 대한 경계를 아직 풀지 못해 데면데면했던 것 같다. 오히려 작가의 스타일에 적응하게 된 지금 다시 읽으니 훨씬 즐거웠다. 초면에는 조금 당황스럽지만 적응하면 더없이 즐거운 문보영 시인의 엉뚱한 상상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MBTI 결과가 치우친 N이 나올 게 분명한 시인은 일기라는 이름 아래 온갖 상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센티멘털하기보다는 어딘가 심드렁하면서도 발랄해서 영혼의 무게를 덜기에 도움이 된다. 작가는 평범한 일상 속 사건에도 거창하고 유쾌한 의미를 곁들이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시인은 친구와 함께 즉석 복권을 산 뒤 근처 냇가에 가서 복권을 긁었다. 천원이 당첨되었다. 그들은 편의점으로 돌아가 또 다른 복권을 사고, 냇가에 다시 와서 긁었더니 또 천원이 당첨되었다. 그래서 또 편의점에 가서 복권으로 바꾸고…. 이때 시인은 “신이 살아갈 최소한의 빌미로서 1000원을 우리 삶에 던져놓고 그것을 당근 삼아 유산소운동을 시키고 있다고. 알고 보니 신은 헬스 트레이너고 우리는 개인 PT를 받고 있었던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너무 엉뚱하고 웃기지 않은가? 그녀의 재기 발랄한 상상력을 야금야금 맛보니 좀 더 경쾌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외에도 글 쓸 때 써먹을 수 있는 팁과 용기까지 얻었다. 서문과 단 두 꼭지만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얻은 팁은 세 가지다. ① 어렸을 때를 회상하기, ②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③ 책 속 두 문장만 읽고 떠오르는 생각 쓰기 – 본 문장의 요지와 전혀 반대될지라도. 하나씩 자세히 말해보겠다.
 
 

① 어렸을 때를 회상하기

   

작가는 어린 시절 늘 따라 하고 싶은 대상이 있었다며, 자신이 누구를 얼마큼 따라 했었는지 고백한다. 유년 시절 회고는 흔히 쓰이는 소재지만 새삼 좋은 주제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현재의 나와 어느 정도 분리된 존재이므로 낱낱이 드러내도 덜 부끄럽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또 유년 시절을 되짚어 보는 것은 지금의 나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되니까. 잠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나는 부끄럼을 많이 타는 소극적인 아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초등학교 방과후 시간에 자기 이름 앞에 두 글자 수식어를 붙여 별명을 지으라는 말에 '부끄'를 달았더랬다. 명절에 친척들과 헤어질 때는 '안녕히 가세요'와 '안녕히 계세요' 모두 알맞지 않은 것 같아 우물쭈물하다가 엄마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원래 쉽게 긴장하고 길게 망설이는 성격이었으니, 요즘 들어 불안해하고 소심한 내 모습도 유난한 것은 아니구나 싶었달까. 생긴 대로 살고 생긴 대로 쓰면 된다.

 
 
 
②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시인은 놀랍도록 솔직하게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면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학창 시절 다른 친구들의 글씨체를 따라 하고, 필통을 따라 사고, 필기법을 따라 하고, 심지어는 손가락을 다쳐 둘둘 만 붕대까지 따라 했던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따라 하는 사람을 비꼬거나 헐뜯을 때, 나는 그 험담에 동조하기보다 모방자의 입장이 되는 편이다. 동시에 미묘한 수치심을 느낀다. 어느 날 친구 몰래 그 친구가 사용하는 파란색 철제 필통을 문구점을 뒤져 샀는데, 왠지 찔려서 집에서만 몰래 사용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깜빡하고 학교에 가져가 버렸고, 그 친구는 내 필통을 보며 “어! 나랑 똑같다!”하고 외쳤다. 나는 진땀이 났다.”

아무리 중학교 시절 이야기라지만 미숙했던 경험을 공개하는 게 어디 쉽나. 그러나 시인은 창피하고 당혹스러운, 전혀 멋있지 않은 경험을 털어놓고, 당시 느꼈던 감정까지 진솔하게 드러낸다. 아마 일기라서 더 가능한 것이겠지.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솔직하게 자신의 수치심을 고백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 또한 살면서 곤혹스러웠던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학생 때는 물론, 스무 살이 넘어서도,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도 수치스럽고 찌질한 순간은 발생한다. 평소에도 불현듯 떠올라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실수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는 시인을 보니, 나의 부끄러움과 결함도 별것 아닌 것 같았다.
 
문학의 좋은 점이 바로 여기 있다. 문학은 멋지고 똑부러진 사람을 다루기보다 평범한 사람의 부끄러운 결함을 뒤집어 까놓는다. 세상은 온갖 대단한 사람만 비추어서 그들을 동경하게 되는 한편 불완전한 나를 미워하기 쉬운데, 문학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나의 찌질함도 대수롭지 않아진다. 덕분에 구겨져 있던 마음이 그나마 펴져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읽으면 나의 결점을 수용하게 되어 불안이 가시고, 자신감이 생겨 나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으니 글도 더 잘 써진다.
 
 
 
③ 책 속 두 문장만 읽고 떠오르는 생각 쓰기

 
“우리는 어떤 사람이 했던 방식을 따라서, 그 사람‘처럼’ 무엇을 해서는 절대로 배울 수가 없다. 배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배우는 바와 닮은 점이 없는 어떤 사람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한다.”

작가는 들뢰즈의 책 속 두 문장을 인용하더니, 그 내용과 정반대되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따라 했던 경험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기억을 늘어놓는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글의 요지에 맞는 이야기를 조금 한다.) 반드시 책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이야기만 써야 하나? 혹은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비평해야 하나? 단 두 문장만 읽고 나서 떠오르는 단상을 적어도 된다. 평론을 쓰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나도 마이크로하게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두 꼭지만 읽고 내가 느낀 바를 쓰자고, 깊거나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나는 시인도 소설가도 평론가도 아니니까 그냥 쓰면 된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런 내가 쓸 아무것도 아닐 글이 약간 아무렇지 않아졌다. 조금은 대범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일기시대』를 읽길 잘했다. 일기는 정말 좋다. 특히 문보영 시인의 일기는 더더욱. 이 책을 재독하면서 한동안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일기가 될 생각과 상상을 해봐야겠다. 그리고 또 작디작은 미소 글을 쓰겠다. 글 자체는 또 엄청 길어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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