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에세이] 청년 기획자의 전시기획 도전기 - 속, 보이다 ②' 에서 이어집니다.
기획자이자 관람객의 눈으로 본 <속, 보이다>
노트북 화면으로만 마주하던 작품들이 실제 공간에서 펼쳐진 순간, 예상을 뛰어넘는 감동이 밀려왔다. 디지털 이미지로는 결코 전달할 수 없는 작품의 질감과 아우라가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각각의 작품이 지닌 고유한 빛깔이 하나의 공간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며, 지난 몇 개월간의 준비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전시를 둘러보는데, 신기하게 일곱 작가의 작품들은 각기 다른 주제와 표현법을 가졌지만, 한 공간에 함께 있으니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고 서로의 작품과 조화를 이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먹을 활용해 흑과 백으로만 이뤄진 임하연 작가님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불안과 고통에서 시작된 작품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담고 있다.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면의 아픔과 결함을 독특한 풍경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 깊다. 우울함이 느껴졌던 화면과 달리 직접 마주한 실물 작품에서는 희망이 보였고,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웅장함도 느낄 수 있었다.
내면을 표현한 작품에는 무의식을 포착하는 천지용 작가가 있었다.
인간의 영혼을 그리는 작가로 인간의 심리와 욕망, 감정을 표현한다. 손으로 칠한 작품들에선 속도감이 생생하게 느껴졌으며, 날것의 느낌과 에너지가 넘쳤다. 마치 베놈이 생각나는 이 녀석들은 무의식의 주인공들이다. 정신없이 획획 지나가는 영혼의 잔상을 따라 생생한 우리 무의식의 여정에 잠시 올라탔었다.
다음은 참여형 작품을 볼 수 있는 최한결 작가님의 작업이었다.
빨간색에 영감을 받는 최한결 작가님은 '가짜 노스탤지어'란 주제를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오리 목욕 장난감을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한 추억을 그린 '다정한 상실감'. 다음 참여형 작품 '그리움의 형태'는 관람객이 각자의 어린 시절 그리움을 타일에 적어 물이 든 통 속에 떨어트린다. 그러면 해당 글자가 수면 위에 뜨게 되며, 자신과 타인의 그리움은 문자를 벗어나 다양한 형태가 되어 뒤섞인다.
동심을 그리는 김지은 작님은 달달한 사탕과 젤리를 주로 그리는 작가님이다.
실제 젤리를 묘사한 리얼리즘 작품으로 보고 있다 보면 빙그레 웃음 지으며 행복해지는 그림이었다. 투명한 젤리에서 잊혀가는 동심과 순수성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아이의 동심이라고 한다면 문우주 작가님은 자연 속에서의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낯선 하루의 반복 속 자신을 지켜주는 건 자연이다. 한지 위에 그려진 문우주 작가의 자연의 표현에서는 편안함, 안정감,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김혜진 작가님은 큰 눈을 가진 고풍 있는 동물을 그린다.
"현실을 살아가며 공적인, 사적인 관계에 놓일 때, 모두가 그럴싸한 탈을 쓰고 연극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무척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해당 페르소나를 동물과 어린아이들로 표현한 김혜진 작가. 그림 속 인물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객을 바라봄. 우리를 관찰하는 작품들이라는 재치 있는 설정. 발상과 아이디어가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앙우 작가의 작푸은 유일한 조형 작품이었다.
나는 감정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덩어리라 생각하는 작가는 '나'의 사유에 집중해서 작품을 만든다. 특히 고전 회화나 문학을 통해 작품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자주 한다. 아름다움과 슬픔, 사랑의 의미가 담긴 셰익스피어 속 '오필리아'는 앙우 작가의 재해석으로 초콜릿 봉지 속에서 재탄생했다. 또한 문학작품 '이방인'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신체의 각 부위가 재단된 소녀로 이방인을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작품을 만난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를 만나는 것과도 같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고, 개성적인 표현법으로 새로운 표현을 배우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상상을 현실로, 속 보이다
5일간의 전시 여정 동안 약 1nn명의 관람객이 찾아와 우리의 작은 전시장을 가득 채워주셨다.
이번 전시는 수익 창출보다는 예술적 가치 공유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작가들을 위한 특별한 지원의 일환으로 단체 제작 굿즈 외에도 작가 굿즈 판매 공간을 마련하여 수수료 없이 자유롭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 무료 전시의 특성상 판매 수익은 크지 않았지만, 관람객을 직접 마주하며 그들의 생생한 반응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기획자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작은 규모의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람객들이 작품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음미하며 오랜 시간 머물러 주셨다는 점이다. 뎁센드2의 관리자님께서도 방문하시어 작품들을 깊이 있게 감상하시는 모습은 우리의 기획 의도가 잘 전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설문 조사를 통해 수집된 피드백은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특히 기획존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의 필요성, 홍보 활동의 확대, 그리고 굿즈의 퀄리티 개선 등이 주요 과제로 도출되었다. 비록 전시 공간의 위치적 제약이 있었지만, 이러한 한계점들은 다음 전시를 위한 소중한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비록 작은 규모였지만, 관람객들의 진정성 있는 관심과 깊이 있는 감상이 어우러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앞으로 더 나은 전시를 기획하고 실현해 나가는 데 있어 귀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후즈아트의 첫 전시기획팀이라 다사다난 일이 많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감돌았다. 예술을 사랑하는 또래들과 함께 일하며 많이 이야기하며 배우고, 동시대의 예술가들과 소통하며 예술계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소중한 기회였다.
혼자라면 분명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후즈아트에게, 기획팀원분들에게 감사하다. 언제 전시를 또 만들어볼 수 있을까.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꿈만 같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행동하여 결과를 만들어낸 인생에서의 큰 성취다. 삶을 살아가며 도전 앞에 망설일 때, 새로운 분야에서 두려울 때,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는 성취감이자 용기가 될 것 같다.
이번 활동이 영감이 되어 예술 생태계가 지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