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으시나요?
대답을 듣기에 앞서, 먼저 나의 대답을 하자면, 시의 ‘시옷’조차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시를 일부러 찾아 읽기는커녕, 교과서 속에 나오는 지문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서점의 시집 코너를 발견하고는 부끄러웠다. 서점을 수만 번도 더 오며 이곳을 둘러볼 생각을 티끌만큼도 하지 않았으며, 꽂혀있는 시집이 정말,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까지 읽은 시라고 해봐야 시험을 위해 외운 것이 전부였고, 그것마저도 진정한 의미의 ‘읽기’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때는 시의 감성을 느끼기보다는, 어떤 표현법이 사용되었는지,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특정 단어가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분석하고 암기하는 게 다였다.
그런 의미에서 시를 ‘읽었다’기보다는 그저 ‘훑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물론 입시를 앞둔 상황에서 어떤 방식의 공부가 정답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뿐만 아니라 어떤 글이든 제대로 읽는 법을 배워두면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세상에 살고 있고, 모든 것은 결국 ‘읽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왜 찾지 않느냐며 내게 질책하는 시집들을 보며 느낀 부끄러움을 이겨내고자 한 권씩 사서 읽은지 1년 정도 됐다. 1년을 읽었을 뿐인 사람이 시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내 삶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큰 변화를 불러왔기에 감히 이야기해 보려 한다.
‘어떤 감정과 상황을 설명해 봐.’라고 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의 시점과 감정을 늘리려면 무한히 확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덜어내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어렵다.” 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단어 하나를 발굴하기 위해 인내하고, 띄어쓰기 속에 눅진하게 담아온 감정과 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활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 구절 한 구절을 곱씹으며 스스로의 감정을 발견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길가의 표지판에서도, 스치는 바람 속에서도, 마을 버스를 타며 보이는 풍경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을 더 세심하게 포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방대한 시의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것은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조각들이 내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기에 내가 읽었던 시집 중 몇 권의 간단한 소개글과 감상평을 적어보려 한다.
미래에 이 시집들을 읽을 당신이 느낄 감정의 여백을 남겨두기 위해 덜어내고 덜어내보겠다.
1. 류시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오래된 미래): 류시화 시인이 사랑하는 시들을 엮은 책. 각기 다른 시인들의 작품이 한 권에 담겨 있어,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온다.
2. 박참새 『정신머리』(민음사): 기존의 ‘시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철저히 부순 작품. 자유로운 형식과 날카로운 시선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는 과연 틀을 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3. 박연준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문학동네): 작고 작은 것이 사실은 가장 큰 것이었음을 일깨워준 시집이다. 가끔 문장 하나에 오래 머물게 된다.
4. 고선경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열림원): 끝과 시작은 양립할 순 없지만 늘 함께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사람 키보다 큰 종을 친 파동을 시집을 읽는 동안 느낄 수 있다.
이 시집들은 시를 읽기 시작하며 만난 세계의 일부다. 앞으로는 또 어떤 단어들이 내 삶에 스며들지 기대된다. 그리고 소설과 에세이 말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해 보고 싶다면 서점으로 가 시집 코너를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직 가보지 않은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