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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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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불가항력이다.

 

참아보려 애써도 어쩔 수 없이 계속 마음이 가고, 다칠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뛰어들게 만든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사랑이라는 ‘불가항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정열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자기파괴적인 사랑에 뛰어드는 청년 베르테르를 통해 사랑의 모순적 본질과 젊음의 고뇌를 섬세하게 담아냈다. 25주년 기념 공연으로 돌아온 <베르테르>는 특유의 잔잔한 감성을 간직하며, 2000년 초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객에게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불꽃


 

 

기름을 끌어안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도

사랑하고 있다면 마음을 불태우세요

 

- ‘사랑을 전해요’, 뮤지컬 <베르테르> 중

 

 

롯데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불꽃과도 같다. 롯데를 향한 그의 감정은 맹목적이리만치 순수하고 열정적이어서 결국 자기 자신을 태워버린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롯데를 향한 그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라 아무리 억누르고 끊어내려 해봐도 도저히 잘라낼 수 없게 되어, 베르테르의 삶을 쥐고 이리저리 흔든다. 그 속에서 베르테르라는 한 개인은 그저 거센 풍파를 만난 돛단배와 같다. 흔들리는 촛불처럼 방황하고 괴로워하던 그의 마음은 결국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불길이 되고, 결국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작은 호기심에 이끌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이 배는 무너져간다

이 배는 침몰해간다

 

- ‘자석산의 전설’, 뮤지컬 <베르테르> 중

 

 

그렇게 뮤지컬 <베르테르>는 사랑의 양면성을 그려낸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은 삶을 고양시키는 한편 열정에 사로잡힌 개인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베르테르는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사랑 앞에 스스로를 내던지며, 관객들에게 사랑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감정과 이성


 

뮤지컬 <베르테르>의 가장 흥미로운 구도 중 하나는 베르테르와 알베르트의 대립이다. 베르테르는 감정과 열정의 화신인 반면, 알베르트는 철저하게 이성과 현실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이 두 인물의 대비는 단순히 롯데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를 넘어, 감정과 이성의 대립으로 확장된다.

 

두 인물이 가장 크게 대비되는 지점은 정원사 카인즈의 처분에 대한 입장 차이에 있다. 극 후반부 베르테르가 사랑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발하임의 정원사 카인즈가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려다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카인즈가 체포되기 전 알베르트는 이성을 표상하는 법관으로서 ‘살인자’인 그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베르테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알베르트 앞에 찾아가 카인즈의 행동이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역설하며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결국 베르테르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카인즈는 결국 이 일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는다. 베르테르가 아닌 알베르트의 방식이 관철된 것은 이성이 감정을 통제하는 당대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는 동시에, 그 현실에 부딪혀 끝내 패배하고 말 베르테르의 앞날을 암시한다.

 

 


불꽃같은 사랑 뒤 남겨진 것


 

카인즈는 사랑의 달콤함과 파괴적 속성을 몸소 겪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의 양면성을 강렬하고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사랑 덕분에 가장 달콤하고 꿈 같은 순간들을 맛보았지만, 사랑 때문에 한순간에 살인자가 되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럼에도 그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사랑이라는 선택에 한점 후회를 남기지 않았노라 노래한다.


 

후회하지 않아요 

마음을 불태웠으니

한 줌 재로 남는대도

 

- ‘괜찮아요’, 뮤지컬 <베르테르> 중

 

 

아마, 롯데에게 마지막으로 거절당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베르테르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면서도 롯데에게 선물받은 리본을 권총에 꼭 묶어놓은 베르테르에게서는 죽음의 순간까지 사랑을 이어가는 그의 결연한 연정이 느껴진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성장하고, 때로는 상처받으며, 결국 삶을 살아간다. 사랑은 불꽃처럼 타올라 한 줌의 재로 남기도 하지만, 그 불꽃이 있었기에 우리는 뜨거웠던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때로는 우리를 구원하고, 때로는 파멸로 이끌 수도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결국 사랑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소영 컬처리스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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