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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설 연휴의 마지막 날, 신도림 디큐브링크아트로 향하는 발걸음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한편에 마련된 역대 포스터 구조물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반겨주는 작품 <베르테르>. 무려 25년째 이어지고 있다. 25주년을 맞아 5년 만에 돌아온 <베르테르>는 모두가 알고 있듯, 괴테의 원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사랑이 없다면 무(無)와 다름없다는 주인공 ‘베르테르’. 그리고 그의 영원한 뮤즈이자 이어질 수 없는 아름다운 인연 ‘롯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막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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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돌아온, 뮤지컬 <베르테르>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니 새롭게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영화 못지않게 의상과 소품 등이 사실적이어서 더더욱 극에 몰입할 수 있었고, 2층으로 분립된 무대 구조를 통해 현실과 이상, 합심 혹은 분립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무대에서는 베르테르와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 나누어진 구조물을 잘 활용한다. 화려하게 수놓아지는 롯데와 알베르트의 결혼식이 무대 상단에서 이루어지기도 하면서, 또 어떤 경우에는 베르테르의 처절한 외침과 구슬픈 노랫소리가 동일한 곳에서 울리기도 한다.

 

더 나아가, 파란색과 노란색 조명은 상반되면서도 서로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롯데와 사람들 사이에서 만개하며 흩날리던 꽃잎이 주는 화사함. 그리고 이와 함께 1부 무대를 노랗게 물들이던 조명은, 반대로 베르테르를 푸른 빛으로 비추어 처연한 모습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롯데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해 내내 마음을 앓았던 시간을 오롯이 표현해주듯 말이다. 이 두 간극을 이어주는 캐릭터는 알베르트였다. 실제로도 알베르트는 베르테르, 롯데와 달리 이성적 사고를 중요시했던 캐릭터로, 감정과 이성의 양립화를 잘 설명해주는 장치로서 등장한다.

 

이를 알 수 있는 사건 하나를 조명해 보자. 극의 중반쯤, ‘카인즈’가 등장한다. 그는 술집에서 만난 베르테르의 거울 그 자체였다. 사랑에 적극적이지 못한 카인즈의 모습에, 자신에게 충고하는 듯 베르테르는 조언을 준다. 그 결과 카인즈는 구애에 성공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살인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사건을 두고 이성을 중시하는 알베르트, 감정을 중시하는 베르테르가 팽팽하게 맞선다. 깊은 곳 느껴지는 가엾은 영혼을 감싸안아달라고 베르테르가 애원하는 한편, 알베르트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베르테르 스스로가 숨기고 있는 모습이기에 그를 주둔하는 것이 아니냐고 일침을 가한다.

 

 

 

사랑의 다른 말은 '슬픔'


 

카인즈의 삶과 닮아 예견된 결말이었는지, 점점 휘몰아쳐 가는 이야기 속, 베르테르는 더욱 고립되어 가고 결국 비극적인 끝을 맞이하게 된다. 원작 소설, 그리고 뮤지컬 <베르테르>는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롯데를 마음에 품는 등, 도덕 윤리적으로 지지받지 못하는 캐릭터로 여겨질 수 있다. 롯데 또한 이를 피할 수만은 없다. 실제로 다양한 토론장에서는 이 이야기를 두고 주인공들에 대한 비판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아끼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모두가 아는 베르테르의 ‘사랑’은 모두가 ‘슬픔’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광기 어린 사랑이 결국 결말을 비극으로 이끈 것이다.

 

두 단어는 명확히 다르지만, 맥락상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마냥 좋을 것 같은 사랑에도 냉철한 가르침과 슬픔이 있고, 영원할 것 같은 슬픔에도 개개인의 애절한 사랑이 깃들어있다. 이처럼, 원작 소설, 그리고 뮤지컬 <베르테르>에서는 감추지 않은 솔직한 매력을 볼 수 있었다. 모두 예쁘게 포장하지 않은, 날 것 그 자체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래서 때로는 찬란하기도, 추악하기도, 다시 아름답기도, 그러나 주저되기도 한다.

 

실제로 원작 소설을 집필한 작가, 요한 볼프강 폴 괴테는 그런 양립과 조화 속에서 비로소 가치가 탄생한다고 믿었다. 애써 숨기고 있었던 본연의 모습. 사랑, 그리고 감정은 지켜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이런 모순과 함께 대립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한 편으로는 베르테르의 감정에 공감되면서도 알베르트가 되어 냉철하게 사고를 비판하게 된다. 그 무렵, 무대 위에서는 마지막 해바라기 한 송이가 힘없이 쓰러지며 막이 내린다. 꽁꽁 숨겨두기만 했던 감정과 낯선 깨달음을 비로소 꺼내 마주할 수 있을 때였다.

 

 

뮤지컬 베르테르 25주년 기념 공연 캐스팅 이미지_제공 CJ ENM.jpg

 

 

뮤지컬의 매력은 순간의 잔상과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고 감각할 수 있다는 데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모든 막을 놓치지 않으려다보니 어렴풋이 잔상으로나마 <베르테르>를 떠올리고 추억하고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마지막까지 100퍼센트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 배우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객석에 명연기, 넘버로 에너지를 전달해주었다. 그에 화답하듯, 객석에서는 커튼콜 때 모두가 일어나 아낌없는 박수를 건네었는데, 그때 느껴지던 관객들의 열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마치 영원히 만개할 것만 같았다. 베르테르를 닮아 비극을 빈틈없이 껴안은, 해바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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