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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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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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필자는 요 근래 극렬한 유행세를 타고 있는 'A형 독감'에 걸려서, 속된 말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2025년이 된지 어언 한 달이 된 지금까지도 골골거리고 있다. 독감의 원흉이 시작된 시기는 작년 12월 중순 주말에 외할아버지 생신잔치를 앞둔 금요일 저녁 밤이었다. 퇴근 후 저녁엔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학원 일정까지 마친 후 집에 와서는 사두어 둔 김밥 한 줄을 급히 먹은 후, 목이 말라서 레모네이드 한 잔을 타 먹은 그 순간 목구멍에서 무언가 모를 극렬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 한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침대에 누워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 잠에 드려하는 그 순간, 목이 간지러우면서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불안한 기분이 음습했지만, 내일 지방에 가는 아침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찬 음료를 먹어서 생긴 일시적인 기침일 뿐이라고 되뇌이며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으나,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크게 아픈 별개의 증상들은 없었으나, 미약하게 곳곳이 아픈 탓에 결국 그날 지방에 내려가는 기차표를 취소하고는 엄마에게 못 갈 것 같다고 메세지를 남기곤 다시 전기장판 속으로 몸을 파고들었다.

 

아프면서 너무 서러웠던 것이, 차라리 뚜렷한 증상이라도 있다면 약국에라도 겨우 가서 약을 사먹고 약 기운에 '잠'에라도 들 수 있을 터인데, 뚜렷한 증상 없이 잠도 오지 않고 한기만 더더욱 느껴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약국이 집에서 도보로 10분도 걸리지 않을 터인데도, 그 10분 거리를 돌아다닐 기운이 없어서 하루 종일 전기장판에만 의지하며 하루 종일 버텼다. 더군다나 밥맛이 전혀 없었기에 심야가 되서야 과일 몇 가지가 먹고 싶어 배달을 시켜 먹었다. 그리고 증세는 하루가 지난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요일에 여는 병원은 물론 없었기에, 또하루를 전기장판과 두꺼운 겨울 이불 두 겹을 덮어 버텼다.

 

월요일에 증세는 더더욱 심해져서 당연히 출근은 할 수 없었다. 상사에게 메세지를 보내는 것 조차 힘들 정도로 많이 아파서 감기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핸드폰 타자를 쳤다. 이러다간 다 죽는다는 불안감에-이런 표현은 살 만한 지금에나 쓸 수 있는 것이다- 꽁꽁 싸매서 동네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갔다. 이비인후과 문을 열고 갔을 때 병원은 온갖 아픈 증세들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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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진이었기에 문진표를 작성하고 대기를 할 때만 해도 한 번만 들어도 매우 상태가 심각해보이시는 환자 분들의 기침 소리가 굉장히 장내를 싸늘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때만 해도 '설마 내가 독감까진 아니겠지.' 하는 생각과, '그런데 독감이 아니면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할 터인데..' 하는 생각을 하며 긴 대기 줄 속에서 내 순서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진료실에 입장하니 의사 선생님께서는 온갖 무장을 하신 채로 나를 맞이해주셨다. 증상들을 설명해보라고 하셔서, 이것저것 열거하다보니 웬걸,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오한'과 '몸살'이 가장 심하다고 하니, 의사 선생님께서는 요즘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특히 오한/몸살이 있다면 독감 검사를 해볼 것을 권고한다고 하셨다. 허걱, 내가 독감이라니... 그 순간 요 몇 주간 출/퇴근길 버스에 들려오는 기침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스크를 끼고 다니지 않은 그 순간들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눈물이 찡긋 흐르는 독감 검사를 마친 후 몇 분간 다시 대기를 했고, 그 결과는 아주 선명한 한 줄과 놀랍게도 아주 희미하지만 엄연한 한 줄로, 양성이었다. 아니.. 내가 독감이라니.. 그래서 타미플루 치료를 해야 한다며 독감 약 처방을 받았다. 독감 진단을 받는 순간 아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 속에서 흘러갔는데, 그 중 하나는 '오히려 독감이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만약 단순 감기 몸살이었다면, 늦게 출근하는 것에 눈치가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기승을 부리는 유행성 독감이라니! 그렇다면 쉴 수 있는 명분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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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후 약국에서 처방약을 받고 약국 문을 나갈 때즈음에는, 마치 학창시절에 담임 선생님께 아파서 조퇴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나갈 때면 웬일인지 그 아픔이 가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과 같이, 증세가 호전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아픈 것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오는 후련함 같은 것 때문이었을까? 그리고는 상사에게 독감에 걸렸고, 유행성인지라 오늘은 출근이 어려울 것 같고, 내일 출근도 내일이 되어서야 가능할 것임을 '나름 당당하게' 보고했다.

 

약을 먹고 하루 이틀이 지나서는 연말이 되었고, 연말과 새해가 다가온다는 기대감을 느낄 새도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그 이후로는 마스크를 끼고 '겨우' 출근이 가능할 정도로는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잘 알고 있는 '타미플루' 약의 부작용이 그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기에, 하루 하루 회복되어 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며 출근일수를 채워가고 있었다. '엇, 이대로라면 다 나은 건가?' 싶을 정도로 회복세를 보였으나, 그건 나의 오판이었다.

 

타미플루 약 부작용 중에 '속쓰림' 증상도 있었는데, 이 증상은 단순히 속이 쓰리게 할 뿐만 아니라 구역질은 나오게 하면서 구토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제일 큰 문제는 밥맛을 일체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오한 증세까지 생기게 되면서 일주일만에 다시 결근을 하게 되었다. 이번 독감은 걸렸어도 또 걸린다는데 과연, 또 걸리게 된 것인가 좌절하면서, 이비인후과 약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비인후과가 아닌 내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역시나 내과에도 환자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아픈 증상을 말하고 앉아 있는데, 그때 무언가 이 증상은 독감은 아닐 것이라는 일종의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독감 검사를 해보았으나 역시나 일반 감기/몸살이었다. 그러나 지난 속쓰림 증상이 너무 무서웠기에 의사에게 제발 속쓰림 증상도 보완할 수 있도록 부탁을 했다. 몸은 치고 내려가서 바닥을 칠 수준 만큼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고, 이러다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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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한약사 선생님에게 한약을 지어 먹고 하루 이틀 그리고 몇 주가 지나게 되면서, 아직도 기침을 조금 하지만 입맛이 돌고 때가 되면 배고픈 상태까지 되돌아오게 되었다.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지만, 죽을 만큼 아팠던 고통이 한동안 내 몸 속에 머무르다가 지나가게 되었을 때 느끼는 안도감은 나에게 정말로 너무나 소중했다. 독감 이후 한 차례 겪었던 이상한 안도감이 이번에 한 차례 더 아팠던 경험을 거친 후 그것은 역설적으로 더욱 고조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정말로 나에겐 '아픔'이라는 불가피한 장치를 통해서도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하는 과정' 역시 필요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파서 무력해지는 것이 싫은 나에게도, 아픔은 몸이 과도한 고단함을 느낄 때면 언제나 찾아오는 것일 수 있음을 나는 힘들지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꽤나 많이 아프고 나니, 아프지 않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살아 있는 그 자체'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인식이 요즘의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했는데, 왜냐하면 이때까지의 나는 나에게 부과하는 삶의 기준치를 너무 높게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높은 기준치는 안타깝게도 타인에게도 적용해왔다는 것이 이번 경험의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 기준치를 나에게도, 남에게도 좀 더 낮추기로 다짐했다.

 

"삶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자. 그럼에도 내 삶은 끝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명심하자!" 이 정도의 깨달음이면 올해로 30살이 된 필자가 큰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일종의 뿌듯함을 전달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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