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상으로 진실에 가닿을 수 있을까 [도서/문학]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비겁한 기억의 가단성에 대하여
글 입력 2025.01.0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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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원제목은 'The sense of an ending'이다. 하는 예감이라고는 족족 틀리는 주인공, 토니 웹스터의 작중 행적을 보면 원제목이 조금 더 이치에 맞는듯하다. 그는 평균의 사람이다. 카뮈를 좋아하는 친구와 키가 큰 애인이 있었던, 그리고 그 전 애인과 친구가 만나는 소소한 불행을 겪은 사람. 그저 개인적인 뿐일 이 비극을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 것인가? 제1차 세계대전 같은 세계의 비극이야,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암살자의 책임인가 아닌가 하는부류의 논의도 이루어진다만 지극히 평범하고도 개인적인 이러한 불행은 그랬겠거니 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도 결국 개개인의 삶이 모인 기록물인 법. 사학자마다 역사관이 다른 것처럼 삶을, 그 기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해석이 편향되면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도 흐려진다. 그렇기에 'The sense of an ending', 이 끝맺음의 감각은 불완전한 기억으로 진실에 가닿으려는 평범한 이들의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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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재구성


 

역사 이야기부터 해보자.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 아드리안이 학창 시절 들었던 역사 수업은 소설 내내 그의 기억을 재구성하며 되풀이된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

 

“그래, 안 그래도 자네가 그렇게 말할까 봐 걱정을 좀 했는데.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는 것 기억하고 있나 심슨?" (...)

 

"역사란 기억의 불완전성과 기록의 부족이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 확실성입니다."

 

- The sense of an ending, 18p (번역)

 

 

책의 1부는 토니가 스스로 작성한 그의 삶의 역사이다. 여자 친구인 베로니카는 좀처럼 관계를 맺어주지 않으며 그녀의 형은 토니를 적대한다. 헤어진 뒤 그는 허락을 구하는 아드리안의 편지를 통해서야 둘이 만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행운을 빈다는 쿨한 내용의 편지를 써서 보내며 토니는 이들을 자신의 삶에서 내보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드리안이 "삶은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선물이고,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선물을 포기하기로 한다면 이를 실행하는 것은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의무이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기억은 자기중심적이다. 그것은 역사적 기록물처럼 사학자들이 둘러앉아 각자의 견해를 내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재판관이고 피고고 검사이니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결이 날 수밖에. 결국 그 기억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조된다. 마치 토니의 편지 답장처럼 말이다. 2부에 들어서며 그는 아드리안의 대답을 다시 인용한다. 역사란 '기억의 불완전성과 기록의 부족이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 확실성'이고, 나이가 들고 나의 삶을 증언해 줄 증인들이 사라질수록 진짜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진다고. 노년기의 토니는 불완전한 기억을 부족한 기록으로 재구성한다. 그가 아드리안에게 쿨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던 편지는 실은 신랄한 공격이 담긴 저주의 편지였다. 물론 철없던 시절의 치기 어린 행동일 수도 있겠다. 다만 그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왜곡시켜 버린 토니의 기억이 문제가 될 뿐이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우리의 잘못을 축소하는가. 그것은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승자들이 저질러 온 만행들은 철저히 가려지고 덮어졌으리라. 하지만 그와 동시에 '패자의 자기기만'이라는 말도 설득력 있다. 그 연애 게임에서 토니는 아드리안에게 철저히 패배했으며 그 쓴맛을 지우기 위해 아주 손쉽게 베로니카를 나쁜 X로 탈바꿈시켰으니 말이다. 그는 그제야 그가 의도적으로 축소했던 베로니카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굿나잇 키스를 하기 전의 따뜻한 말들, 역류하는 세번보어를 함께 보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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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토니는 다시금 낭만적인 기분에 빠진다. 결국 그들 사이의 역사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토니에 의해 왜곡되고 또 그의 기분에 따라 재조립된다. 승자도 패자도 아닌 그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으로 쓰인 것이 역사일지도 모른다.

 

 

 

너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


 

토니는 자신이 타인에게 미친 영향을 인정한다. 베로니카의 탓을 하며 그가 회피해왔던 아드리안의 자살에 대한 책임을 일부 받아들인다. 책임. 아드리안은 역사적 책임이 어느 한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사슬로 이어진 책임의 고리가 있다고 보았다. 사슬이 너무 길어지면 누구의 책임소재인지도 알기가 어렵다고.

 

 

"사실, 책임을 전가한다는 건 결국 회피가 아닐까요? (...) 제 생각엔 지금이나 그때나 개인의 책임이라는 연쇄가 이어져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 책임의 고리 하나하나는 모두 불가피한 것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모두를 비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사슬이 긴 건 아니죠."

 

- The sense of an ending, 13p(번역)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의 본성은 어쩌면 역사를 해석하는 동기가 될지도 모른다. 본인의 책임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책임을 파헤치는 과정 말이다. 남의 인생, 그것도 이미 생의 끝을 맞이한 타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무엇이라고 떠들어도 생의 주인은 이미 무덤에 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번 변형된 진실을 원형 그대로 깨닫기란 쉽지 않다. 토니는 베로니카와 다시 만나 그녀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젊은 남성, 돌보미로 추정되는 사람들. 사회 돌봄의 일종인 것 같았다. 토니가 이해하지 못하고 물어보자 베로니카는 말한다.

 

"너는 그냥 이해를 못 하는구나.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너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사실,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있지 않은 이상 말하지 않은 것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저 처음 보는 상황에 놓였을 뿐인 토니에게 이 같은 말은 과도한 비난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무지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마치 '아는 것처럼' 타인의 삶을 쉬이 판단한 데에 대한 비난이다.

 

아드리안은 항상 토니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니, 그 동경마저도 토니가 아드리안에게 마음대로 부여한 감정이 아니던가. 토니의 삶에 있어 축적은 끊임없는 실패다. 관계의 계속되는 붕괴로 실패가 곱해지고 합해진다. 그래서 그는 아드리안의 자살을 부러워하지는 않지만, 그의 삶에 대한 명료함을 질투한다. 하지만 그가 베로니카 사이의 아이를 두고 도망쳤고, 그 아이는 기형아였다니. "나는 한편으로는 너희가 애를 낳기를 바라고 있어. 하지만 복수는 맞는 사람에게 가야지, 죄 없는 태아에게 가서는 안되지 않겠어?"라고 썼던 그 생각 없던 시간들. 토니는 힘든 시간을 겪었을 베로니카에 대한 연민과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토니는 또다시 베로니카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이 멍청했으며 아드리안의 일기장은 그의 아들의 어머니인 네가 갖는 것이 맞다는 편지. 하지만 그 편지에 대한 답은 똑같았다. "너는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그냥 노력하지 마."


 

 

현상으로 진실에 가닿을 수 있을까


 

그 오판의 과정은 토니가 방문한 선술집의 '수제 감자튀김(hand-cut chips)'과 동일한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만 쓰여 있었던 롭손의 유서와도 비슷한 것이고. 드러나 있는 증거는 고정되어 있으나 그 속의 진실은 알 수가 없다. 조금 더 관용적으로는, 빙산의 일각이다. 수제 감자튀김이 손으로 자르는 것인 줄 알았던 토니는 더 얇게 잘라달라 주문하지만, 그것은 그저 더 두껍게 잘라서 배송된 감자칩일 뿐이라 두께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드러난 사실: 수제 감자튀김(hand-cut chips)이라는 이름의 메뉴는 두껍게 잘려 나온다.

추론된 사실: 매장에서 감자를 직접 두껍게 자른다.

진짜 사실: 두꺼운 감자칩이 배달이 오고 그것을 수제 감자튀김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그럴듯한 추론이어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당사자만 아는 법이다. 어릴 적 아드리안이 롭손의 유서를 두고 말했듯, 미안하다는 유서와 여자 친구가 임신했다는 것은 드러난 사실이나 롭손이 여자 친구의 임신으로 자살했다는 것은 추론된 사실일 뿐이니.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지만,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낸다.

 

- Sense of an ending, 88p(번역)

 

 

아드리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토니는 과거 아드리안이 죽은 이유를 꾸며낸다. 혹은, 추론한다. 아드리안은 그가 왜 자살했는지를 적어놓았지만 본인의 증언 또한 진실은 아니다. 미래에 본인이 어떻게 보일지를 예상한 증언이야말로 의심의 대상이니까.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운 사실이 적혀 있을 아드리안의 일기장이 불타버린 이상 내면 깊숙한 원인은 이제 알 방법이 없다. 그것이 베로니카가 자꾸만 복사본을 보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진실이 아닌 증거품. 그리고 그 증거품에서도 한 번 더 가공을 거친 복사본. 그것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의 모방과도 같다. 세상은 이데아의 모방이고, 우리가 남긴 흔적들은 또 현상일 뿐이다.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남긴 유산, 아드리안이 남긴 일기, 토니가 남긴 편지, 이 모든 것은 그저 현상일 뿐이다. 의도를 가진 사람이 행한 행위로 인한 현상. 이 현상으로 진실에 가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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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간 선술집에서 토니는 또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아드리안의 아들 '아드리안(2세)'의 어머니가 베로니카가 아니라는 사실. 베로니카는 '아드리안'의 어머니가 아닌 누나였다. 토니는 아드리안에게 남긴 그 저주의 편지에서 베로니카의 어머니에게 자문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사슬은 책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아드리안은 토니에게 남긴 편지에서 '사슬이 끊어지면 어느 쪽에 책임이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책임의 진실은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드리안은 자살이 오직 단 하나의 진실한 철학적 질문인 줄 알았던 사람에서 감당할 수 없는 아이와 유모차에서 도망가 버린 사람이 되었다가 또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사람이 된다.


토니가 우상화했던 아드리안은 우상이 맞았을까? 그가 정말 비겁자였는지, 철학자였는지 남겨진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아드리안이 어떤 사람인지는 역사 속 수많은 위인처럼 다만 토니가 서술했던 것으로만 추론할 수 있으니. 그렇다면 과거를 명료하게 하려는 움직임은 다 의미 없는 행동인가. 그 옛날 이들의 역사 선생님이 남긴 말처럼 "정신은 행위에서 추론될 수 있다". 아드리안의 동기를 짐작하게 하는 것은 그가 남긴 기다란 유서도, 토니가 남긴 저주의 편지도 아닌 살아있는 '아드리안(2세)'이다. 정신은 행위를 남기고, 행위는 유산을 남긴다. 아직까지 유지되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감히 자신의 기억과 타인의 정신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윤희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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