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기관, 면천에 유채, 150*120
밑이 푹푹 꺼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잡히지 않는 것들을 쥐어보려 발버둥을 쳤더랬지. 탄내가 진동할 만큼 과열된 초조함과 불안함은 온전한 제 자신이 되려는 것을 번번이 막아섰다. 끊임없이 궤적을 남기는 삶이 부끄러워지면 몸을 웅크리고 어딘가 처박혀 아주 오래 잠을 잔다. 잠을 자는 동안 미리 장례를 치른다. 사소하고 커다란 나의 연민, 걱정, 번뇌 전부 이번 생의 몫으로 맺어둔다. 나는 시간이 흐르는 그곳에서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을 억지로 쥐어보려 했던 죄로 제 자신을 삼켜 거세게 타올랐던 불덩이인 나의 오만과 집착을 놓는다. 눈을 뜨면 오랜 세월이 지나있다. 인류가 만들어놓은 모든 산물이 잡아먹혀 버린 세상이다. 모든 것이 부식되고 사라진 땅은 태초와 닮아있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삶을 산다.
타인은 내가 지각했던 사물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세계 속 자신의 자리에 있게 하는 보증인으로서 기능한다. 타인이 없다면 나는 내가 대상을 지각하고 있는 것인지를, 내가 지각한다고 착각하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속 모든 사물은 타인 구조를 경유하면서만 내게 지각된다. 만일 타인이 부재한다면, 지각적 장은 아예 기능하지 않을 것이다. 공간 속에 거주하고, 그곳을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신체이지만 공간과 관계하며 자신의 존재 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심리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 세계는 타인이 부재하는 세계이다. 나는 이 무인도에서 타자가 조건이 되어 생기는 나의 공간 경험과 이 경험을 수반하는 심리의 변화를 담아낸다. 타인 구조는 타인들이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타인 구조를 대체하는 인공물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점차 타인 구조가 소멸하는 순간이 오며 모든 것이 형태와 형상으로부터 해방된다. 사물의 깊이는 표면으로, 유기적인 신체 또한 해체된다. 신체의 기관들은 신체로부터 벗어나는 동시에 순수한 평면으로 하락하게 된다. 내가 섬이 되며 섬은 내가 되고, 나는 섬 자체가 뿜어내는 배설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