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 이런 말 하면 안 되지 - 착한 대화 콤플렉스 [도서]
-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서 어색함을 풀기 위해 어떤 대화를 하는가? 나이, 출생지, 그리고 빠지면 섭섭한 MBTI까지. 상대를 알기 위해, 조금이라도 공통점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간단한 질문조차도 망설여진다. 내가 선택한 단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혹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을지 생각하다 보면 결국 말문이 막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가 특정 프레임을 씌우거나 의도치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세상에서, 대화란 점점 더 신중한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뉴진스라는 아이돌 그룹이 유튜버 침착맨 방송에 출연해 '킹받네'라는 단어에 대해 말을 나눴다. 멤버중 혜인이라는 친구가 라이브 방송 중 ‘킹받네’ 이라는 단어를 썼다 다른 멤버인 민지가 "혜인아, 그거 어디서 나온 말인지 알고 있어?"라고 물어 그 어원을 찾다 보니 침착맨이 ‘킹받네’라는 단어를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종종 유행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어를 사용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들 앞에 서는 직업인 연예인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록에 남기 때문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어의 어원이나 맥락을 모르고 사용했다가 논란이 될 수 있는 상황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역시 일상에서 말하고 싶지만 말이 무서운 아이러니한 상황을 수없이 마주한다.
그리고 대화의 어려움이 특정 단어로 인한 것만이 아니다. 내가 쓰던 말을 지금 쓰면 옛날 말이라는 소리를 듣고, 친구와의 대화를 윗세대가 들으면 ‘요즘 것들’이라고 하니 어떤 식으로 대화를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은 입을 다물고 상대가 하는 말에 대답만 하는 앵무새가 되어있다. 이럴 때 옛날부터 내려오는 문장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어라.’ 그럼, 중간 나이대인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착한 대화 콤플렉스⟫ 에서는 위와 같은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맞장구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책은 총 네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내 선의가 무례가 되는 사회]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이 의도와 달리 무례함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다룬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내가 사용하는 있어 보이는 말'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글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음에도 굳이 영어를 사용하는 경향, 세대 간 단어 사용의 차이 등은 우리의 대화를 종종 어렵게 만든다.
2부 [말은 잘못이 없다, 쓰임이 잘못됐을 뿐]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한다. 책은 "라떼는 말이야" 같은 표현이 단순히 꼰대적 발언으로 치부되기 전에, 그 말속에 담긴 감정과 맥락을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언어적 마찰은 단순히 세대 간 갈등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특정 단어가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표현하거나 왜곡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단어가 가지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또한, "노인"이나 "아줌마" 같은 단어에 담긴 의미가 얼마나 다층적이며, 때로는 차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도 다룬다. 과도한 공감이나 단어의 남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역시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다.
3부 [낡은 단어에 물음표를 던질 때]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온 단어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호칭"이나 "치매" 같은 단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드러낸다. 특히 '우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포괄적이면서도 동시에 배제적인지에 대한 논의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우리는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 속에 담긴 편견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 단어들에 물음표를 던지는 순간, 우리는 기저에 깔린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말하는 이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있는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놓치기 쉬운 건 이러한 시선이 누군가를 향한 날카로운 칼날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너와 내가 깊은 연결성을 지닌 관계, 사회적 관계성을 구축하는 테두리, 집단이 가진 강한 신뢰에 기반한 시선들. 평소엔 안정되어있다고 느끼는 이 유대감은 한순간에 날 선 칼자루로 변모한다. 상대방과 나의 고유한 연결성을 찾는 데서 느끼는 정서적 편안함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의 기저에 숨어있는 '밀어내는 힘'을 소환한다. 각각의 정체성을 배제한 채 끊임없는 닮은 점을 찾아 '우리'를 묶어버리는 오랜 습관의 결과물이다.
⟪착한 대화 콤플렉스⟫ 211-212 p 발췌
마지막으로, 4부 [말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는 혐오와 분열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단순히 말을 조심하라는 교훈에 그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더 나은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단어의 이면을 바라보려는 노력이야말로 대화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우리가 눈을 뜬 순간부터 감을 때까지 함께하는 단어와 대화라는 소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경험과 맥락 속에서 살아가며, 때로는 그것이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차이가 결코 대화의 걸림돌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나에겐 일상용어이지만, 누군가에겐 여전히 낯설기만 한 단어. '와이파이를 쓴다'는 문장 하나에 얼마나 많은 행위가 함축 되어 있는지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컴퓨터를 열어 와이파이 버튼을 누르고 신호가 강력한 아이콘을 한 번 더 눌러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일련의 행위를 다 마쳐야 '와이파이를 쓴다'는 말이 완성된다. 커피숍에 들어가 벽면에 붙은 와이파이 아이디와 비밀번호 를 당연하게 입력하곤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사용하던 나날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와이파이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에겐, 와이파이가 와이프인지 와이퍼인지 혼란스러운 이에겐 당연히 예측할 수조차 없는 막막함의 세계일 수밖에. (중략)
와이파이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상대방이 당연히 알거라 가정하고 발설되는 말들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걸까, 정말 그 모든 걸 정보의 빠름, 시대의 흐름이라 일축해 버려도 괜찮은 걸까. '키오스크로 주문해 주세요'라는 말을 건네기 이전에 키오스크가 대체 뭔지부터 설명해야 하는 건 아닐까. (키오스크 는 여전히 낯선 매장에 갈 때마다 약간의 긴장감을 주기에 나 역시 버벅거 린다.) 모든 속도에 적응을 빨리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우리는 너무도 손쉽게 이 모든 걸 '세대 차이'라는 네 글자로 일축해 버린다. 적응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존재했다는 걸 금세 망각하고, 익숙함이란 이름으로 과정을 삭제해 버린다. 훗날 무언가를 처음 접하는 이를 만났을 때 '왜 모르지?'라는 생각 부터 떠오르는 것처럼. '와이파이가 뭐죠?'라는 질문에 잊고있던 과정의 기억을 끝없이 떠올려야 했던 것처럼. 내게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도 얼마든지 상대방에겐 장벽일 수 있다. 그 당연한걸 매일 절감하면서도 매순간 잊고 지낸다. 나만 알고 있는 용어를 들이대면서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면 '아, 말이 안 통해 아, 설명하기 귀찮아'라며 게으름을 피웠던 건 아닐까, 정보력 차와 언어격차를 비단 세대 차이라고만 일축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착한 대화 콤플렉스⟫ 95-96p 발췌
특히 이 장면을 읽는데 부모님 생각이 났다. 어느 날 집에 가보니 책상에 컴퓨터 활용법 책이 있었다. 책을 펼쳐보니 컴퓨터를 켜고 끄는 법부터 시작해 바탕화면에 폴더 만드는 법, 환경설정을 통해 어떤 걸 설정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이걸 왜 샀느냐 물어보니 컴퓨터를 잘 쓰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그 후로 부모님은 내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어떤 것을 누르냐 묻는 질문에 일단 뭐든 눌러보라는 말을 하곤 그저 부모님을 지켜보기만 했었다. 와이파이가 뭐냐고 물은 아버지를 보며 쪽지에 와이파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적어준 아들이 나였다는 생각에 당황하고 부끄러웠다.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업계에서 쓰는 용어를 몰라 점심시간에 몰래 단어를 검색해보던 내가 떠오르면서 세상에 당연하게 아는 것은 없다는 걸 한 번 더 깨달았다.
우리는 매일 대화를 한다. 그리고 그 말들 속에서 세상을 배우고, 서로를 이해하며,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간다. 그렇다면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 더 친절하다면 더 부드럽고 유연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박지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