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쟁의 폭력 속에서 개인으로 존재하기 -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공연]

글 입력 2024.12.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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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생조선인최영우_포스터.jpg

 

 

여기 어쩌면 당신이 절대 알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으로 징집되거나 그들을 보조하는 노동에 징용되어야 했던 시대의 고통을 겪은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이야기다. 아직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인 포로감시원의 이야기를 전한다.

 

연극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동명의 르포르타주를 원작으로 한다. 스무 살 청년 최영우가 일제 치하 일본군 포로감시원으로 참전하여 겪었던 실화를 적은 육필 원고가 외손자에게 발견되면서 그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졌다.

 

일제강점기, 고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 진학을 꿈꾸던 영우는 갑작스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일본군으로 징집되길 기다리거나, 일본의 포로감시원으로 지원하여 복무하는 것. 영우는 총과 칼을 드는 대신 포로를 감시하는 군무원으로 복무하기를 택한다.

 

영우는 연합군 포로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는다. 일본군은 제네바 협약을 무시한 채 포로들을 비윤리적으로 대하고 무리한 강제 노역을 시켰다. 하루에 달성해야 하는 노동량은 비인간적으로 설정되었고, 포로들이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포로감시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정식 군인이 아닌 포로감시원이라는 신분과 식민지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은 일본군의 비이성적인 명령에도 복종하게 만들었다. 포로수용소 속 말단 직원이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명령을 따를 강제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_콤마앤드 제공 (c)이강물  (3).jpg

 

 

일본의 패망이 확실해질수록 일본군은 포로들을 더욱 가혹하게 대했다. 강제 노역과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다수의 포로가 사망했다. 이로 인해 일본의 패전 이후 포로감시원들은 연합군의 전범재판을 받게 되었고,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있었다.

 

‘경계인.’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군이지만 정식 군인도, 일본인도 아니며, 영국과 미국 등 서양인 포로들 사이에 낀 그들은 등 터지는 새우가 되어버렸다. 그들이 국제 협약에 위배되는 일본의 명령에 복종한 것은 이성이 마비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 역시 강제동원의 피해자였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의 삶은 지난했다. 지난한 그의 이야기는 ‘라이브필름 퍼포먼스’ 형식을 빌려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라이브필름 퍼포먼스란 공연 중 무대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촬영해 재구성하여 스크린에 송출하는, 영화와 공연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장르이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_콤마앤드 제공 (c)이강물  (1).jpg

 

 

촬영을 위해 무대 위에 상주하는 4명의 촬영감독과 무대 위 스크린은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지만, 디오라마와 조명을 활용한 훌륭한 연출 덕분에 몰입감 있는 관극이 가능했다. 카메라를 통해 손전등 하나로 기차가 들어오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두 화면을 오버랩 시켜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도 위에 기차 소품을 등장시켜 최영우의 이동 동선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거나, 사형을 묘사할 때 극적인 화면 전환을 통해 사실성을 극대화하는 등 카메라를 이용한 연출이 돋보였다. 연극의 실시간성을 살리는 동시에 영화의 섬세한 화면 연출이 가능했던 라이브필름 퍼포먼스 덕분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_콤마앤드 제공 (c)최양현 (7).jpg

 

 

공연은 끝났지만 포로감시원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들의 존재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그렇기에 더욱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단순히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포로감시원의 이야기는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구조적인 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선택을 강제하고, 인간성을 억압하는지를 생생히 증언한다.

 

이들은 단순히 역사 속 피해자로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들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전쟁과 억압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하며,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인가?

 

비록 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연극이 남긴 울림은 오래도록 남아야 한다. 이제는 관객들의 차례다. 그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고,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며, 이러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행동으로 이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연극이 진정으로 성공하는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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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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