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흥’은 이 작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연기면 연기, 이제는 문학까지 대한민국 문화 예술의 질주를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지경이다.
대한민국 문화 예술의 현재 위치를 가능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예술인들의 노력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로 대한민국 예술의 가장 기본, 기초,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전통예술’이다.
특히 최근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막을 내린 드라마 ‘정년이’를 통해 우리나라 전통예술인 ‘판소리’와 ‘국극’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필자 역시 ‘정년이’를 사랑하는 시청자 중 한 명으로서 ‘판소리’의 매력에 푹 빠져 출근길과 퇴근길에 판소리를 듣는다. 소리꾼들의 시원하면서도 애절한 소리를 들으며 길을 걸으면 마치 내가 조선시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정년이에서 나오는 다양한 소리를 통해 느낀 것은 누군가의 말 또는 동화책을 통해 듣는 전래동화와 소리를 통해 듣는 전래동화가 내용은 같지만 참 다르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부모님께서 1인 다 역을 최선을 다해 소화해 내시며 읽어주셨던 전래동화, 때로는 아름답고 예쁜 단어들로 때로는 사실적인 묘사의 단어를 통해 읽었던 전래동화도 참으로 훌륭했지만 판소리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듯 감정이 가득 담긴 몸짓과 대사, 단단함과 여림 애절함과 밝음, 반전이 가득한 판소리는 하나의 예술로써 다가왔다.
그리고 그 예술에 나는 깊이 파묻혀 나의 모든 생각과 감정, 주변의 공기와 온도, 습도 등 내면적인 것과 외면적인 것까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절로 바꿔버린다. 이는 기존의 뮤지컬, 오페라, 연극과는 전혀 다른 ‘판소리’라는 하나의 예술 장르다.
그런 전통문화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해 무대에 오른다. 수림문화재단의 공동기획 시리즈 ‘NUDGE(넛지)’에 선정된 5개의 예술 단체가 준비한 공연이 김희수 아트센터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필자는 그중 11/23에 무대에 오른 소리극 ‘프리즘 리어’를 관람했다. ‘프리즘 리어’는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판소리의 음악적 언어로 풀어낸 소리극으로써 ‘악당’이 공연을 진행한다.
판소리는 앞에서 말했듯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예술 장르로 현재 대표적인 5마당(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서양의 대표적 소설가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이라는 소설, 즉 이야기를 주제로 판소리를 준비했다는 것은 판소리의 특징을 잘 살렸다는 점과 한국적인 정서와 언어로 서양의 이야기를 녹여내어 소설에 대한 정서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관람을 할 때 판소리의 연기와 소리를 통해 책을 통해 알지 못했던 주인공의 다양한 감정과 정서적 변화의 부분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전통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전통은 잊히기 쉬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명료하게도 ‘다름’ 때문이다. 먹는 음식, 의복, 언어, 사용하는 물건, 생활, 목표 등 옛날 사람들과 현대인들은 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산업화가 순식간에 진행된 대한민국의 경우 더욱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옛 것, 전통예술을 계속 유지하고 전승하는 이유는 현대예술이 주지 못하는 특별한 감동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공연에서 그 특별함을 느꼈다. 그 특별함은 바로 ‘한’을 통해 느껴졌던 것 같다.
예로부터 다양한 민족의 침입을 받고, 많은 아픔을 겪으며 어렵게 살아온 대한민국은 ‘한’이라는 독특한 정서를 가지고 살아왔다. 이는 근대와 현대를 거슬러 오며 사라지지 않고 시대에 맞게 존재해왔다. ‘프리즘 리어’의 소리는 ‘한’이 많이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분명 내가 듣고 있는 것은 서양의 소설인데 왜 우리나라 소설 같지?’, ‘왜 이야기가 친숙하고 익숙하지?’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리어 왕이 한국 사람인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리어 왕의 감정에 한이 서려있었다.
이런 부분에서 판소리나 풍물놀이, 탈춤 등 전통예술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시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익숙함에서 전해지는 특별함’, ‘익숙함에서 전해지는 공감’
이것이 어떻게 보면 앞으로 전통예술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맥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대한민국 전통예술의 색다른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