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 사람의 마음, 몸, 그리고 영혼을 탐구하는 작가 정예진의 세계

'녹색의 마녀' 정예진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글 입력 2024.11.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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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사람의 마음, 몸, 그리고 영혼을 탐구하는 작가 정예진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람의 마음, 몸, 그리고 영혼의 형태에 대해 탐구하는 작가 정예진이라고 합니다.

 

저는 2020년에 사후 세계, 죽음을 경험했다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 삶을 살게 되었어요. 그 순간을 기점으로 해서 제가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스토리성을 녹여낸 작품을 제작하거나, 실험적인 작품 위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크기변환]1.Let me be your friend.jpg

 

 

- 처음 아트워크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먼저 여쭤보고 싶어요. 작가님의 작품을 보다 보면, '판타지스러운 작품을 제작한다'에 넘어서서 실제로 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 심지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셔서 더욱 궁금해요.

 

하하, 감사해요. 처음에는 제 친구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그 친구와 더욱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단순히 타인으로 인해서 그림을 그리게 되지 않더라고요. 저 스스로가 그림을 너무나도 좋아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림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오래 그리고, 그림에 애정을 갖다보니 자신만의 데포르메, 일명 그림체를 발견하고 싶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저도 저의 개성을 찾기 위하여 탐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계열의 그림을 그렸는데, 계속 그림을 그리고 연구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회화가 더욱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특히 저는 예전부터 저의 독특한 그림체를 보며 ‘내가 애니메이션 등의 계열로 가는 것이 과연 정말 맞을까’라는 고민을 했거든요. 예를 들어 머리카락을 그릴 때도 애니메이션에서는 덩어리로 양감을 표현하는데, 저는 정말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그릴 때가 많았죠. 하하. 그래서 캐릭터 일러스트가 아닌, 저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다른 계열의 그림은 무엇이 있을지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회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회화라는 것은 저의 의견, 즉 내고자 하는 목소리를 표출하기 위한 가장 중점적이고 대중적인 장르잖아요. 저 또한 그림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에,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기에는 회화가 가장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회화라는 분야에 발을 들여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언급해 주셨다시피 저는 그림뿐만 아니라 공예 작업도 함께 하고 있어요. 공예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참 커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도예가이시고, 아버지께서는 유리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시거든요. 그래서 저의 삶 중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가족'을 예술이라는 것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침 이전에도 여러 공예들을 경험해 보며 공예를 할 때의 즐거움을 알고 있었었기에 부담 없이 공예까지 제 활동 범위를 확장시키게 되었습니다.

 

현재 메인으로 작업하고 있는 것은 유리 공예에요. 하지만 그 외에도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도자공예도 함께 하고 있으며 레진, 스컬피 등 정말 다양하게 시도하고 익히고 있습니다. 최대한 제 무기, 제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을 늘리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 앞서 사후세계를 경험했고, 이를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실례가 안된다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저는 아주 예전부터 성폭행 사건과 악플에 굉장히 시달려왔어요. 제가 ‘OOO 사건’의 최초 고발자거든요. 온라인상에서 알려진 사건의 피해 당사자가 되다 보니 이에 대한 악성 댓글을 정말 많이 받았고,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일로 인해 굉장히 고생했어요. 그 상황 안에서 몇 번이나 안 좋은 시도를 하게 되었죠. 2020년에는 응급실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경험이 정말 저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응급실에서 죽음이 가까워져 있을 때, 저에게는 분명 의식이 있었거든요. 몸은 존재하지 않는, 오직 정신만이 있는 세계에서 저는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때, 저는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굉장히 편안했어요. 안심이 되고 아늑했습니다. ‘이것이 나의 죽음의 형태라면 나는 기꺼이 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그런데 그때, 아주 짧은 순간 머릿속에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그 이후 정말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었어요. '만약 세상에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이 실존한다면, 아까의 그 공간이 천국이고 지금은 지옥이구나, 나는 지옥으로 오게 된 것이구나' 생각하게 될 정도로 말이에요.

 

‘여기에 계속 있으면 안 되겠구나, 나는 돌아가야겠구나’ 생각하게 되었고, 몸이 없는 상태에서 발버둥을 치려고 노력하니 오른손부터 시작해서 전신으로 고통이 퍼져나가며 다시 저의 육체가 구성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정말 저의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사람들의 곁을 떠나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어요.

 

저는 이 경험에서, 제가 육체 없이 의식만이 존재했던 그 순간이 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혼'의 상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인지하겠다’는 그 의지 자체가 영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이 경험에서 비롯하여 영혼과 몸, 마음 이 세 개의 것을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영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확립했지만, 몸과 마음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 중에 있기는 해요. 하지만 몸은 저희가 인식하는 것, 경험하는 것과는 다른 일종의 물질적인 것이잖아요. 그래서 ‘변화하고 피어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제 안에서 형성하여 작품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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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것을 무너뜨리며 나아가는 용기, 정예진 작가의 작품들


 

- 워낙 다양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소개해 주고 싶으신 작품이 있다면.

 

저는 정말 많은 실수와 실패를 경험해왔고, 현재도 그 성장 과정에 있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말씀해 주셨다시피 다양한 작업을 해왔지만, 그래도 저의 '메인 작품'이라고 말씀드리며 무언가를 소개해 드리기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특히나 지금은 오히려 기존의 안정화되었던 것들을 다시 무너뜨리고 오히려 불안정하게 만드는 과정에 있거든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초기 저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에서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애니메이션에 국한된 작품들이 '과연 진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일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저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으니까요.

 

그 고민을 몇 년간 지속해오니, 결국 그림 자체에는 통일성이 생기고 그 스타일이 안정되었지만 저는 그것을 무너뜨려야만 제가 그 이상을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은 안정적으로 확립된 저의 스타일을 해체시키고, 그 구성 물질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무엇이 과연 맞고 틀린 지에 대해 살펴보는 중이에요. 그래서 지금의 제 그림은 정말 잘못되었고, 불안정해요. 하하. 하지만 그만큼 저는 저의 뇌의 흐름을 살펴보며 제가 나아갈 방향성을 찾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그나마 ‘제가 추구하는 방향’에 가깝게 다가갔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어서 그 작품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저를 보지 않고, 저 스스로가 느끼는 저를 표현하여 제작한 자화상 [Love will never die(Faith)]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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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드렸듯 저의 초기 작품은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영향을 받아 전부 눈이 크고 연필로 그려져 있었어요. 그런데 그 틀에서 벗어나 이 작품을 그리며 ‘캔버스라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고, 캔버스를 몸이라고 칭했을 때 영혼이라는 존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캔버스의 뼈대에서 제가 작업하는 천으로 넘어가며 빛이 비칠 때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모습들을 하나하나 보고 고민하며 저는 ‘가변성과 불변성’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현재 이 작품을 가장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 '가변성과 불변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가변 하는 것과 불변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불변하는 것은 무언가를 인지하고자 하는 마음, 변화하는 것은 신체와 그 외의 마음인 것 같아요. 인지하는 마음의 경우에는 우리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언가를 보고자 하는 것, 듣고자 하는 것, 그 모든 의지들은 우리 마음에 남아있어요. 하지만 무언가에 자극받으며 ‘이건 차갑다’ 느끼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잖아요. 어떤 때는 그것이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그것이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 현재는 해체하고 살펴보는 과정이라고 해주셨어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 느끼기에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저의 해체하는 과정에서 그림뿐만 아니라, 제 삶 전체에서 흘려보낼 것을 흘려보내고, 남길 것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놓아주고 싶은 감정은 놓아주고, 기억만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하고 있죠. 그래서 기억에 관한 작품을 굉장히 많이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 감정과 기억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맞아요.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고,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껴요. 하지만 기억 자체는 사실 저희가 없애려고 한다고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다만 천천히 흘려보내는 것이죠. 그래서 최근 제가 그리는 작품들은 형태를 분명히 갖고 있지만, 그 윤곽이 뚜렷하지는 않아요. 녹아내리는 듯한 표현도 있고, 물감이 퍼져나가는 듯한 표현도 있죠. ‘나의 감정을 놓아주겠다’는 저의 마음이 작품에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파괴되어도 다시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정예진 작가의 움직이는 유리작품


 

- 말씀해 주신 것처럼 작가님께서는 다양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유리를 메인으로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유리 공예의 길을 정말 걷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두 개가 있어요.

 

첫 번째는 역시 부모님의 영향이 굉장히 컸어요. 특히 저희 아버지께서 취급하시는 유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리가 아닌, 석영 유리라는 이름의 조금 특별한 유리거든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희 어머니께서는 도자를 하고 계시는데, 석영 유리 특유의 단단함과 강함을 가지면서도 도자공예처럼 식기 등 다양하게 무언가를 만들기에 적합한, 어느 정도의 자유도를 갖고 있는 것이 바로 하드 유리에요. 그래서 저는 현재 하드 유리를 활용해서 작품 활동을 진행하고 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작품 특성이 모여 지금의 제가 이뤄지게 된 것이죠.

 

두 번째는 제가 한국에서 유리 공예를 잠깐 배울 때, 한국에서 저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의 모교이신 국내대학의 워크샵에서의 기억이에요. 그때 제 계기가 되어주신 일본 작가님이자 현 선생님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본인 선생님께서 진행하시던 그 워크숍의 분위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모두가 즐거워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다들 좋아하며 웃는 그 분위기가 참 좋았죠. 그 선생님께 유리 공예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그분 아래에서 유리를 더욱더 자세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 '유리'라는 것 자체를 직접 접해보니, 작가님께서 느끼게 된 유리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기존 회화와의 접합점도 있을지가 궁금한데.

 

도자기랑 비교해서 말씀을 드려볼게요. 예를 들어, 도자기의 경우에는 가마 안에 들어가면 그 형태가 조금씩이라도 변형이 되거든요. 도자 흙을 가마에 굽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그런데 유리 같은 경우에는 제가 한 번 원하는 모양을 잡으면 그 모양에서 변형이 일어나지 않아요. 물론 도자기의 특성도 굉장히 재미있고 매력적이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유리가 갖고 있는 그 안정감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투명한 유리의 경우에는 완전히 박살이 난다고 하더라도 1200도 고온에서 구워주면 다시 그것을 활용하여 새롭게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가능해요. ‘무언가가 파괴되어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저에게는 굉장한 따뜻함을 건네주었어요. 그래서 유리를 다루는 그 순간, 그 과정 자체도 정말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도 최근 깨달은 사실입니다만, 유리는 굉장히 날카로운 물질이잖아요. 그런데 저도 그림 자체가 굉장히 ‘날카롭다’는 인상을 준다고 피드백 받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그 서늘한 온도에서 제 작품의 특성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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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예를 통해서는 어떤 것을 남기고자 하시나요?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 중 눈을 움직여서 치료를 진행하는 치료법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것을 유리공예로 표현할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단단하고 멈춰 있는 유리공예가 아니라 작게나마 이동성을 갖고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 어머니께서 도자 작가님이시다 보니 저는 제가 아주 어릴 적부터 외부에서 구매한 식기를 사용한 적이 없어요. 늘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는 그릇에 요리를 담아 식사를 했죠. 그 사실을 저는 유학을 가서 처음 깨닫게 되었어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정말 많은 그릇이 필요하구나’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저 또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삶과 굉장히 밀접한 식기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분야에서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유리 공예라는 것은 유리를 녹이고 굳히는 과정을 반복하여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서 유동적인 표현을 담아내고자 하신다는 것이 인상 깊어요. 보통 어떤 방법을 통해서 이 유동성을 표현하고자 하시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유리관 안에 액체를 넣어서, 그 안에 있는 물체가 움직이도록 하거나 혹은 모터를 달아 기계적인 느낌으로 표현하는 중이에요.

 

제가 제작했던 이동성이 있는 유리공예 작품 주 제일 좋아하는 것은 <움직이는 해파리 글라스 펜>이에요. 글라스 펜 안에서 해파리가 유영하는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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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드렸던 사건에서, 그 사건의 가해자가 피해자인 저에게 ‘해파리처럼 살아가라’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해파리와 관련된 유명한 문장 중 하나가 ‘해파리는 헤엄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수면을 떠돌며 생활한다, 그러니 헤엄치는 힘이 약하면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수면을 떠돌며 살면 된다’거든요. 타인이 저에게 응원의 메시지로 남기는 말이라면 모르겠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인 저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정말 싫었어요. 저에게 그 해파리처럼 그저 삶에 힘들이지 말고 죽은 듯이 둥둥 떠다니며 살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정말, 정말 싫었습니다.

 

그래서 해파리에 대해서 조금 더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너무나도 당연하게 해파리는 하나의 생명체에요. 독을 갖고 있고, 운경 신경들이 있죠.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기능들을 다 갖고 있는 어엿한 하나의 존재인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고작 인터넷에서 유명한 문장 하나만을 갖고 저에게 해파리가 되라며 지금까지 저에게 행해졌던 모든 폭력을 넘기려고 했던 것이, 저에게는 도저히 용서가 안되었어요.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움직이는 해파리를 만들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글라스 펜은 무언가를 기록하는 물건이잖아요. 제가 겪었던 사건은, 단순히 가벼운 해프닝으로 치부할 것이 아닌 하나의 큰 범죄였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제가 지금까지 남겨왔던 기록들이 정말 소중해요. 그 기록을 세상에 남기며, 끝까지 안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글라스 펜을 제작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라스 펜’이라는 물건에 해파리를 넣어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 말씀해 주셨다시피 작가님께서는 글라스 펜을 제작하고 계시죠.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라고 해주셨는데, 처음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정말 좋은 추억이 있어요.

 

제가 유리를 자세히 배우고 싶다고 느끼게 된 것은 앞서 말씀드렸던, 우연히 일본어 통번역을 하게 되었던 때였어요. 그때, 일본의 유리공예 선생님께서 저에게 감사의 의미로 선생님께서 직접 제작하신 글라스 펜을 선물해 주셨어요.

 

저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 당시에는 펜을 사용하여 수작업으로 그림을 많이 그렸었거든요. 그래서 그 글라스 펜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려보게 되었죠. 그런데 정말 감촉이 좋았어요. 이전까지 사용했던 펜은 금속 재질로 제작되어 있다 보니 제가 관리를 소홀히 하면 망가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글라스 펜은 그런 부분이 전혀 없기도 하고, 그 느낌도 참 좋았거든요.

 

그때 ‘글라스 펜은 나와 정말 잘 맞는 도구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선생님을 다시 만나며 저의 삶에서 글라스 펜이 갖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에 대하여 깨달을 수 있었고, 이 안에 기록이라는 의미까지 녹여내서 저의 작품의 일부가 되어 현재는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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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진 작가가 녹색의 마녀로 여러분을 찾아뵙습니다.


 

- 작가님의 작품 중 <녹색의 마녀 시리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작가님의 하나의 정체성이라고까지 느껴지는데. <녹색의 마녀 시리즈>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잖아요. 저도 과거에 경험했던 폭력으로 인해 마녀사냥을 당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에요. 그래서 저는 저 스스로가 굉장히 마녀 같은 사람이라고, 어디에서도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마녀와 관련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단순히 ‘마녀’만을 테마로 잡기에는 너무나도 범위가 넓은 거예요. 저 자신을 보다 특정 짓고 지칭할 수 있는 어떠한 단어가 필요했는데, 그때 저희 부모님의 취미가 나무를 관리하는 것이었어요. 그때 관리하시는 식물을 보며 ‘나도 식물처럼 사랑을 받아 무성하게 잎을 피울 수 있는 마녀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녹색의 마녀>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또, <녹색의 마녀>라고 하면 숲에 살 것 같은 아기자기한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실제로 제 방도 그런 이미지였어서, 그렇다면 ‘숲속에 살고 있는 녹색의 마녀가 이런 것들을 갖고 와서 보여드립니다’라는 느낌에서 착안하여 작업을 구성했습니다.

 

사실 <녹색의 마녀>는 굉장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프로젝트예요. 제가 평소 작업하던 그림들은 워낙 무게감이 있었다 보니 당시 제가 좋아하던 이미지들을 합쳐서 조금 더 가볍게 진행할 수 있는 조형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 작업들을 많은 분들께서 사랑해 주셔서, 그 사랑에 힘을 얻어 더욱 이야기를 확장시키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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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의 마녀>에서 진행했던 퀴즈가 모아진 글을 정독했습니다. 단순히 하나의 스토리를 연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고민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과정을 주었다는 게 참 인상이 깊어요.

 

맞아요. 틱톡에서 저는 녹색의 마녀 시리즈를 계속 업로드하며 게임처럼 작품을 표현했어요. 어떠한 힌트와 함께 문제를 내며, 그것을 해결하면 마지막에 제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구상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삶을 살아갈 때의 모든 것들은 전부 벽이었고, 문이었거든요. 그것을 제가 직접 열고 나아갔을 때야말로 비로소 새로운 장들이 펼쳐지게 되었죠. 그래서 녹색의 마녀에서도 제가 느꼈던 삶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퀴즈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그렇게 문제들을 직접 구상하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문제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문제를 풀고 났을 때 해바라기 이미지가 나오는 문제였어요. 저는 성폭력 피해자이고, 그 당시에는 정말 어렸기 때문에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성인이 된 후 해바라기 센터라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담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녹색의 마녀’ 안에 해바라기 이미지를 남겨, 그러한 아픔에 대해서 어딘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넣었습니다.


 

- 저는 <녹색의 마녀 시리즈>에서 선보여주셨던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도 아래의 <요정 액침 표본>이참 인상 깊었어요. 요정이라는 것은 현실에서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살아있는 존재를 표본으로 만든 것 같아서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리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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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있어 요정이라는 존재를 표현한 작품은 제가 친구들과 함께 했던 기억을 중점적으로 녹여서 만든 작품들이에요.

 

그중에서도 특히 <요정 액침 표본>의 경우에는 제가 친구들과 함께 했던 즐거웠던 기억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저의 안에서 계속 존재하여 저를 지탱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제작하게 되었어요. 위의 작품은 제가 처음 펀딩에 발을 디뎠던 계기가 되기도 하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이 작품이 닿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제작했던 첫 요정 표본이기도 해서 마음이 많이 가는 작품입니다.

 

 

- 친구와 함께 했던 기억을 통해 제작된 작품이라니 멋지네요. 다른 작품 중에서도 이와 같이 키워드에서 파생된 작품이 있을까요?

 

제가 만들었던 작품 중 '가족'에서 파생된 작품도 있어요. 예를 들어, <저주 인형>은 가족이라는 존재는 절대 끊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그것이 저주라는 것과 굉장히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된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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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는 아기용 시리즈예요.

 

부모와 자식의 이미지 안에서 가족이 아닌 ‘아이’의 이미지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 만들었던 작품이죠. 일반적으로 성인의 경우에는 어른의 입장에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잖아요.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하여 일을 하기도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꾹 참고 넘어가고자 하죠. 그런데 이 모든 모습이 결국 몇 백 년 사는 용에게는 아이가 어른 행세를 하며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일 것 같은 거예요. 심지어 100세 노인도 용에게는 아기의 모습으로 보일 거예요. 하하. 그 이미지에서 파생되어 제작하게 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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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에도 판매했던 작품 중에서 작가님이 가장 애정이 깊었던 작품이 있다면.

 

저는 가장 처음 만들었던 눈 브로치를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제가 형태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품이거든요. 또, 제가 조형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는 작품이기도 해요.

 

저에게는 8년을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저의 눈 브로치를 보고 ‘너 이거 정말 잘 만들었다’ 칭찬해 줬어요. 그전까지 저는 조형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남자친구의 그 한마디가 ‘조형 작업을 해볼까’ 용기를 얻어 시작하게 되었죠. 그래서 눈 브로치는 저에게는 조형을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는, 일종의 ‘용기 브로치’이기도 해서 가장 마음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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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녹색의 마녀 시리즈>를 들여다보니 참 즐거워요. 다른 분들께서 <녹색의 마녀>를 보았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 주었으면 하는지, 목표나 꿈이 있으실까요?

 

판타지 속에만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실제로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재미있게, 가볍게 받아들여주셨으면 해요. 다만 그 속에서 제가 계속 남기고자 했던 흔적을 따라가 주시면 참 감사할 것 같습니다.

 

 

- 이렇게 자세하고 방대한 스토리가 담겨있는데, ‘가볍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다는 것이 인상 깊어요.

 

결국 제가 이렇게 자세하게 스토리와 설정들을 남기는 이유는 자기만족에 조금 더 가까워요. 제가 어렸을 대부터 보았던 만화 같은 것들도 사실은 가볍게 향유하기 위해 제작된 콘텐츠잖아요.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설정을 들여다보면, 정말 방대한 세계와 설정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죠. 저는 그것을 콘텐츠를 향유하고 제가 직접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큰 기쁨을 느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가볍게 받아들이시고, 이후 무언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을 때 하나씩 제가 담아놓은 이야기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마무리 지으며


 

- 작가님께서 스스로를 정의 내릴 수 있다면, 어떻게 말씀하고 싶으실까요?

 

저는 제가 만드는 작품이 어떠한 장르가 국한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요. 그저 ‘옆집에 사는 마녀’ 정도로만 느끼고 받아들여주셨으면 하죠. 제가 어떠한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제가 갖고 있는 자율성에 제약이 생기는 경우가 간혹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제가 유리 공예가로 저를 지칭하게 된다면, 그 외의 작품들은 유리공예가 아니기 때문에 소개해 드리거나 작업하기 애매해지죠.

 

그래서 저는 특정한 단어로 스스로를 정의 내리고 싶지 않아요. 그저 ‘옆집 마녀’라는 호칭 하에서 다양하게 작업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 작가님의 앞으로의 목표를 말씀해 주신다면?

 

저는 지금 저의 첫 번째 책을 닫고, 다시 연구를 시작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책을 한 권 끝내면 그 한 권의 책에 대해 연구하고, 되돌아본 뒤 더욱 준비해서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하잖아요. 저는 그 중간 과정에 있어서, 곧 준비가 되면 다시 새로운 책을 펼칠 예정입니다.

 

다음 책은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영혼 시리즈에 조금 더 조형적인 판타지 요소들을 섞어 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색채는 ‘푸른 새벽 여명의 색’이에요.

 

종종 <녹색의 마녀>를 다시 시작할 의향이 있을지에 대해 여쭤보는 분들도 많으세요. 저에게 있어서 <녹색의 마녀>는 삶을 유지시키기 위한 어떠한 가이드, 인도자로서 저에게 새롭게 생겨난 자아에 가까우며 혼, 육체, 마음을 한데 묶어 체험시키고 알게 하는 것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2021년~2022년 사이에 진행되었던 <녹색의 마녀>가 가진 커다란 스토리는 종료되었습니다만, 이 이후 재등장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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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께서 궁극적으로 남기고자 하는 한마디가 있다면.

 

살아남아.

 

 

- 인터뷰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저는 항상 인사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하하. 인사를 드리는 게 오늘의 인터뷰에서도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네요.

 

저의 작품을 너무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마시고 편하게 구경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제가 이벤트에 많이 참여하는 이유도 최대한 다른 분들께서 저의 작품을 가볍게 받아들여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크거든요. 그래서 ‘저의 작품을 편하게 구경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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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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