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중독으로부터 멀어지는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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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누구에게나 실험이고 중독의 연속이다 그 중독으로부터 조금 멀어지는 실험을 해보자 무언가를 깨트리는 것은 경계를 부풀리는 새로움을 전해줄 것이다 익숙함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인정하자 살아가며 우리가 배운 건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거 아닌가?
- <0308>, 보수동쿨러
우리는 중독 사회에 살고 있다. 중독의 대상은 감히 나열할 수조차 없다. 아주 대중적이고 위험한 것들부터 개인적이고 시시한 것들까지. 당장 떠올려만 봐도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이지만. 중독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조금 도와주자면 이렇다. 카페인, 알코올, 숏폼, 불닭볶음면, 캐라멜 팝콘, 편한 스웨트 팬츠에 어그, 세일하는 요거트 사기, 소리 내면서 기지개 피기......... 이거 순 엉터리 아니야?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는 수많은 것들에 중독되어 있고, 이것들이 내 삶을 끊임없이 형성하고 또 무너뜨리도록 내버려둔다.
독일에 온 지 두 달이 넘어간다. 한국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외부적이고 가시적인 것들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 누가 훔쳐 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사라지던 한국에서의 시간들이. 모두 다시 독일로 환불 배송되는 것마냥 시간이 넘쳐나기 때문이겠지. 시간과 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땐 시간을 죽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데. 또 기왕 죽이는 거. 의미 있게 혹은 나름 생산성 있게 죽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작정 방안을 나와 걷거나 괜히 마트에 가지만. 그럼에도 떨쳐지지 않는 이유 모를 좌절감에 힘겹게 잠에 들곤 한다.
더 이상 좌절하지 않기 위하여. 이 질기고 거대한 시간을 해체하여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익숙함과 낯섦, 그러니까 중독과 실험을 발견한다. 아주 작은 패턴이나 습관이라도, 제대로 인식하는 순간 재밌어진다. 그리고 약간의 변주를 섞어가며 그 변화를 즐긴다면.... 나는 그제서야 내 삶을 제대로 아는 것 같은. 비로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요리할 일이 없었다. 정확히는 요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내내 급식을 먹거나, 집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삼시세끼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 돈이 없는 교환학생은 유럽의 비싼 외식 물가를 감당할 수 없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독일 마트에 처음 갔을 때 느낀 무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토록 정보가 넘쳐나는 공간에서 내가 읽어낼 수 있는 정보가 단 하나도 없다니- 심지어는 한국에서조차 장을 본 경험이 없었으니 정말이지 순탄치 못했다.
사람은 왜 하루에 세 번씩이나 배가 고플까- 하는 의문문 빌린 원망이 튀어나오는 걸 막으며. 난생처음 쌀밥을 짓고, 파스타를 만들고, 따져가며 우유를 사고, 냉장고 속 양송이의 생명을 걱정하다 보니. 어느새 나에게 요리는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한 그 어떤 생명 연장의 행위를 넘어. 나에게 어떤 부가적인 의미를 가져다주고 있음을 발견한다. 내가 먹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쾌감. 무엇을 언제 어떻게 먹을 것인지에 대해 주어진 적극적인 결정권. 그리고 그 속에서 비롯되는 실험의 욕구를 느낀다.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대단치 않다. 정확히는 작고 시시할수록 더 재밌다. 이를테면 이렇다. 이번에는 펜네 대신 페투치네 면을 사용해 봐야지. 다음번에는 가지를 더 말랑말랑하게 익혀야지. 닭갈비에 양배추도 넣어봐야겠다. 토마토를 익힐 때 올리브유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와 같은 시답잖은 그러나 즐거운 퀘스트 혹은 실험들. 그러나 목적 그 자체인 실험들. 토마토를 익힐 때 올리브유를 둘러보았더니 최악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실험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실험하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기 때문. 중독에서 벗어나는 틈을 마련하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실험은 성공이다.
독일에 온 것 자체가 큰 실험이고. 이미 많은 중독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했으나. 그 순간부터 내 일상은 또 다른 중독으로 가득참을 깨닫는다. 비교적 새로운, 그리고 크고 작은 중독들로 빼곡한 나의 삶. 들여다볼 충분한 시간 속에서. 그리고 깨부술 수 있는 여유로움 속에서. 나는 무한히 유효한 스킬을 얻은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고 쉽지만. 일상이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치트키 같은 것을 말이다. 더 이상 숨 막히는 지루함과 단조로운 일상도 두렵지 않으리라. 앞으로 어떤 삶 속에서도 입체적인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으리라.
나는 여기 독일 주방에서 시작하였으나. 그 누구도 어디서든 언제든 가능하다. 나 또한. 침대에 들기 전 습관에서. 혹은 아침 루틴에서. 그것도 아니라면, 통학하는 서울의 지하철 안에서 중독을 비틀고. 즐거움을 얻고. 또다시 중독과 실험을 반복하며 살아가겠지. 다만, 지나친 중독은 나아갈 수 없게 하고 지나친 실험은 피곤하니. 결국 삶은 균형 맞추기의 연속이다. 익숙함과 낯섦, 중독과 실험의 균형. 그리고 반복. 그 순환을 뚜렷하게 인지하고, 개입하고 기여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나만이 아는 내 삶의 주름들. 사실은 그런 것들이 정말 내 삶을 단단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정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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