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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마법소녀가 되기를 꿈꾼 적이 있을 것이다. <세일러문>에서 <슈가슈가룬>까지, 화려한 의상에 빛을 내뿜는 마법소녀들은 세대를 불문하고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 경우에는 <파워레인저 매직포스>가 되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지만, 같은 초능력자이니 이것도 마법소녀의 일부이지 않나 생각한다. 마법소녀가 된다는 건 단순히 초능력을 얻는 것을 넘어 세계를 지키는 사명감을 가지는 것이다. 마법으로 막대한 부를 쌓거나 세계 제일의 권력자가 되는 것은 ‘마법소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는 마법소녀가 되길 꿈꿨던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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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보호단체,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약자가 우연히 초능력을 얻어 히어로가 되고 나쁜 세력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것. 전형적인 히어로물의 공식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에도 저마다의 사연으로 마법소녀가 된 이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나’는 일자리를 잃고 줄지 않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죽으려던 순간에, 메인 빌런인 시간의 마법소녀는 지속적인 가정폭력으로 고통을 겪던 순간에 마법소녀로 각성한다.

 

특이한 점은 다른 히어로물에서는 보기 어려운 히어로들의 보호 조직인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 일명 <전마협>의 존재다. <전마협>은 여느 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조합원인 마법소녀들이 능력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현상금 헌터나 경호원 등의 직업을 소개하며 조합원들을 보호한다. 그런데 단 몇 분만에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초능력자들이 굳이 협동조합을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29살이라는 나이의, 소녀가 아니어도 마법소녀가 될 수 있느냐는 주인공의 질문에 예언의 마법소녀 아로아는 이렇게 답한다.

 

 
“마법소녀가 생겨나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그 힘이 가장 필요했기 때문이니까. 거꾸로 말하면, 각성 직전의 마법소녀란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가장 필요한 힘이 부여되기 때문에 소녀들에게만 마법의 힘이 부여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그게 내 생각이에요.”
 

 

마법소년이나 마법사가 아닌, 마법소녀만이 생기는 이유는 소녀들이 가장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법소녀들은 <전마협>을 통해 서로를 지키고자 한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구하게 반복된 가부장적 질서와 차별의 역사 속에서 연대는 소녀들이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렇듯 <전마협>의 존재는 소녀들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연대라는 것을 보여준다.

 

 


[기후 위기라는 종말]


 

다른 히어로물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도 빌런이 존재한다. 바로 ‘시간의 마법소녀’다. <전마협>은 지구의 종말을 막기 위해 예언의 마법사 아로아를 필두로 시간의 마법소녀를 찾아다닌다. 이들이 말하는 지구 종말의 원인은 외계인의 습격이나 욕심 많은 인간들의 전쟁이 아니라, 다름 아닌 기후 재난이다. 시간의 마법소녀가 지구의 시간을 정지한 사이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시설을 제거하거나, 만년설의 시간을 되돌림으로써 지구 멸망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마법소녀라는 판타지물 속 ‘기후 위기’라는 재앙은 지극히도 현실적인 것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만년설의 시간을 되돌린다니, 그런 게 가당키나 한 것일까? 그럼에도 기후 재난이 작중 가장 큰 위기로 설정된 것은 현실과 미래를 함께 지킨다는 점에서 세계를 구하는 마법소녀들의 사명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기후 위기가 기후 재난으로 바뀌기 시작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재난은 제일 낮은 곳에 있는 약자들을 가장 먼저 습격한다. 삶의 터전을 잃고 도망치는 기후 난민들, 발 디딜 곳 없이 얼음 위를 뛰어다니는 북극곰들에게 기후 위기는 말 그대로 현실에 닥친 재앙이다.

 

그러나 마침내 찾아낸 시간의 마법소녀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인류 멸망을 이루겠다고 선포한다. 그것은 바로 기후 위기를 가속화 시키는 것이다. 없던 재난을 만드는 것이 아닌 이미 진행되고 있는 종말을 앞당겨 지구에 해를 끼치는 인류를 없애겠다는 것은, 인간이 그동안 묵인해온 기후 위기에 대한 업보로 느껴지기도 한다. 종말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


 

제대로 힘을 사용하는 법조차 깨우치지 못한 ‘나’는 기후 재난을 막고자 하는 <전마협>의 뜻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뚜렷한 신념이나 목표는 없다. 그저 자신을 발견하고 믿어준 아로아를 위해서, ‘나도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시간의 마법소녀를 저지할 방법을 찾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리고 뒤늦게 마법소녀로 각성한 ‘나’는 마침내 시간의 마법소녀를 저지하는 데 성공한다. 시간의 마법소녀가 힘을 잃은 뒤, <전마협>의 입회 테스트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을 보며 아로아는 시간의 마법소녀의 힘이 많은 사람들에게 분배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약간의 마력을 지닌 선량한 다수의 힘을 모아서 기후 재난에 맞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어지는 아로아의 말은 결국 시간만이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 명의 강력한 초능력이 아닌, 다수의 시간이 쌓임으로써 위기를 막을 수 있다. ‘날씨의 마법소녀’나 ‘대지의 마법소녀’가 아닌 ‘시간의 마법소녀’가 지후 재난을 해결할 방안으로 설정된 것 역시 같은 맥락이 아닐까? 아직 우리에게는 종말을 막을 시간이 있다.

 

시간의 힘이 필요한 것은 개인으로서의 삶을 새로이 꿈꾸게 된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정식 마법소녀가 되기도 전에 마법소녀 은퇴를 선언한 ‘나’는 마법소녀보다 더 간절히 되고 싶었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오래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다짐하면서.

 

신용카드를 마법도구로 사용하고, 세계를 구한 직후에도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잘릴 걱정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마법소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마법소녀’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마법소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잠재적 마법소녀들이 자신만의 시간으로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마법소녀는 결코 지는 법이 없으니까. <전마협>의 일원으로서 이 글을 읽는 모든 마법소녀들에게 연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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