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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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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Sister Act >와 < Wicked >의 포스터

©Dominion Theatre(좌), Apollo Victoria Theatre(우)

 

 

얼마 전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 Sister Act >와 < Wicked >를 관람하였다.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더불어 뮤지컬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는 이곳 런던에서는 그 명성에 걸맞게 매일 수십 편에 달하는 뮤지컬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공연의 규모와 화려한 의상, 그리고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우들의 노래 실력 외에도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유분방한 관람 분위기였다. 공연 중 이동이 자유로워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음식물 섭취도 가능했다. 심지어는 앉은자리에서 모바일 앱을 이용해 음식을 주문하면 직원이 자리까지 직접 배달해 주는 서비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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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서 주문한 음식을 자리로 배달받을 수 있는 서비스

©ATG Entertainment


 

우리나라 공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관람 문화에 놀란 동시에, 최근 국내 뮤지컬계의 도마 위에 오른 일명 ‘시체 관극’ 논란이 떠올랐다. ‘시체’라는 다소 강렬한 단어를 포함하는 이 말은 공연 관람 시 어떠한 움직임이나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마치 시체처럼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주로 뮤지컬이나 연극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작년 12월 한 기자가 뮤지컬 < 리진 > 관람 중 필기를 하려 하자 옆 자리 관객이 관람에 방해가 된다며 자리를 바꿔달라고 항의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시체 관극 관련 논쟁이 공론화되었다. 이에 공연 중 필기하는 행위가 타인의 관람에 방해되므로 기자의 잘못이라는 의견과 옆 자리 관객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군 것이라는 의견이 대립해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그렇다면 뮤지컬에서 ‘관크’는 어디까지 용납되어야 할까? 물론 공연장에서 관객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 관람 태도를 지녀야 한다. 전화기를 끄지 않아 공연 중 벨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휴대전화나 스마트워치의 화면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 취식이 허용되지 않은 공연에서 물 이외의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 비정상적인 자세로 앉아 주변 사람의 시야를 가리는 것, 공연 중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큰 소음을 내는 것, 타인의 집중과 감상을 흐릴 정도로 지나치게 호응하는 것 등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매너가 아니라 이른바 ‘시체 관극’을 타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표 값을 지불한 모든 관객에게는 관람 중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이상 일정 수준의 불편은 감수해야 하며 과도한 예민함으로 다른 관객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내세워 타인의 관극 경험을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체 관극을 지향하기보다는, 상식적인 선에서 허용되는 범위라면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조금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보는 것(일명 ‘수그리’)처럼 주변 사람의 시야를 가리는 관객의 대부분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부드러운 어조로 자세를 고쳐달라고 부탁해 보면 어떨까. 몸을 부산스레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서 신경 쓰이게 하는 관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공연 중간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것 역시 비난받을 수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다급한 상황일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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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Wicked >의 커튼콜 장면으로, 많은 관객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간혹 기립박수가 시야를 가린다고 싫어하거나 반대로 기립박수를 하지 않는 관객에게 눈치를 주는 경우도 있는데, 둘 다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최민서 에디터


 

한편 ‘시체 관극’과 ‘관크’가 뮤지컬계의 화두가 된 데는 다름 아닌 티켓값의 상승과 과도한 스타 마케팅이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 뮤지컬 티켓의 가격은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으며, 특히 2022년 하반기에 이전까지의 암묵적인 가격 상한선인 ‘VIP석 15만 원’이 깨지면서 기존 뮤지컬의 마니아층조차 관람을 망설이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웨스트엔드와 같은 해외 뮤지컬과 비교하면 좌석의 가격이 등급에 따라 합리적으로 책정되지 않는 데다가 학생 할인 혹은 당일 할인과 같은 제도로 비교적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는 방법조차 거의 없기 때문에 국내 뮤지컬 관객에게 더 큰 부담이 지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은 응당 자신이 지불한 비용 이상의 가치를 얻고 싶어 하기 때문에, 여느 공연에서보다 타인의 작은 행동에도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대중이 금전적으로 큰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공연이라면 지금과 같은 수준의 시체 관극 트렌드는 형성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둘째로 한국 주요 뮤지컬의 캐스팅을 살펴보면 뮤지컬 배우로 시작해 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들도 있지만 아이돌이나 가수, 배우 등 연예인 출신으로서 뮤지컬 배우를 겸업하는 이들을 전면에 내세운 스타 마케팅이 지나친 편이다. 연예인과 스타급 뮤지컬 배우들의 팬덤이 공고하게 형성되어 있고 이들이 관객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팬심으로 인해 타 관객의 행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이렇게 암묵적으로 형성된 공연 관람 매너 수칙으로 인해 전반적인 관객 분위기가 더 경직되고, 결과적으로 본래 그리 예민하지 않았던 관객까지 덩달아 그 분위기에 편승하게 되는 현상도 있다. 나아가 이러한 문화는 새롭게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는 관객들에게 심리적으로 큰 진입장벽이 되며, 뮤지컬 산업 전체의 활기를 잃게 하는 요인이 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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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Sister Act >의 커튼콜 장면.

웨스트엔드에는 당일 잔여 좌석을 싸게 판매하는 '데이시트(Day Seat)' 제도가 있어, 우리나라에서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좌석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최민서 에디터

 

 

이처럼 오늘날 특히 뮤지컬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시체 관극’ 문화의 발단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뮤지컬 산업 자체의 고질적 문제들이 해결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한계가 있다. 또 국내 뮤지컬의 문화를 서두에 언급한 해외 사례와 동일 선상에 두고 비교하거나 해외의 공연 문화를 그대로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우리나라와 해외 뮤지컬 시장의 공급과 수요, 그리고 전반적인 인프라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근본적 원인이자 가장 중요한 관객의 마음과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 관객들이 주위 사람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거슬려 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관객 한 명 한 명의 관점 변화와 서로를 향한 작은 배려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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