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과 식물의 끈질긴 생명력 - 김초엽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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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살기 위한 욕망은 끝이 없다. 식물 또한 그렇다.
김초엽 작가는 첫 장편소설의 배경으로 2058년 미래, 더스트 시대 이후의 세계를 다룬다. 공해와 흙먼지가 뒤엉켜 식물과 동물, 인간마저 파괴하고 모든 걸 먼지로 만들어버린 종말, 그 이후 살아남은 주인공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의 이야기가 작가가 구현한 세계 속에 녹아있다. 세계의 멸망을 초래한 더스트는 코로나 시기에 겪었던 숨이 턱 막히는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연상케 하였고, 이에 내성이 없는 사람들이 밖과 안의 공기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돔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집 안에서 나가지 못했던 당시 상황을 떠오르게 하였다. 위 소설에서 주인공 나오미는 내성이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아마라 자매와 함께 온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사를 담았다.
소설은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첫 장에서 식물생태학자 아영은 ‘모스바나’라는 베일에 싸인 식물에 대한 물음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이를 채집하여 분석하고, 덩굴식물인 모스바나가 수상할 정도로 빠르게 증식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2장에서 나오미는 돔 밖에서도 살 수 있는 ‘프림 빌리지’라는 곳을 알게 되고 그곳에 도착한다. 그곳은 허구가 아닌 실존지역이었고, 그곳에선 돔 없이 사람들이 숨을 쉬고 식물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외부인들로부터 침략을 받게 되고, 결국 그곳에서 모두 쫓겨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푸른빛을 지닌 신묘한 힘을 가진 모스바나는 더스트폴의 종말을 유도하였고, 결국 이는 더스트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밝혀낸다.
위 소설은 세 가지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된 세계,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의 투쟁, 그리고 식물과 인간과의 관계. 세 측면은 한 세계 속에서 공존하고 있으며, 투쟁력이라는 형용사로 포괄해 읽어낼 수 있다. 먼저, 세계를 파괴한 주범인 더스트는 책 속에서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전에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은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극심한 기후변화는 우리가 원치 않은 자연재해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환경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피해를 준다. 이는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기후변화 또한 인간이 인공적으로 구현한 도시가 원인이 된다는 점과 동시에 인간의 욕심이 결국 환경 파괴를 이룬다는 미래주의적인 관점을 내포한다. 두 번째로, 소설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한 세상 속에서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함께 숨쉬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며 투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식물과 인간은 상호작용하는 관계이며, 적응해나가는 처지이다. 책 속의 모스바나는 더스트를 종식시킨 식물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필요한 역할을 하며 종족의 번성을 이루어냈다는 점은, 식물과 인간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일종의 공생 관계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측면은 한 세계안에 모두 얽혀있으며 소설 속 인물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도 읽혀진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식물과 인간의 공통된 본성은 생명력으로 보았다. 그들은 멸망한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인간중심적 사고가 식물중심적인 사고로 변화한다.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낸 식물이 세계의 종말을 초래하였으며, 남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 투쟁하며 식물로서 세상의 재건을 결심한다. 그 속에 얽힌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각자의 가슴에 남아있는 흉터는 덩쿨식물인 모스바나의 모습과 닮았으며,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이를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깊은 마음 속 연대를 이끌어낸다. 인간의 욕심이 초래한 종말, 그리고 최후의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사람들의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결합력,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인간과 식물 사이의 관계. 생명을 향한 투쟁은 식물이나 인간이나 별 다르지 않았다.
또한 소설 안에서 자연과 문명의 세계를 이분화하는 역할을 하는 온실은 인간과 식물 사이의 연결점과 이분법적인 사고의 모순을 내포한다. 인간의 세계와 식물의 세계, 자연이자 인공적인 공간, 인간이 개입한 공간이자 아닌 공간이라는 양극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이미 지구의 큰 부분을 개입하며 살아가고 있다. 식물에게 인간은 지구의 불청객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마치 자연인 듯 인공 같은 온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현실로 보인다. 언젠가 그 경계가 깨지거나 해쳐질 수 있고, 영원하다고 믿지만 영원하지 않을 장소라는 점은 매일 다변히 변화하는 불안정한 세상과 참으로 닮았다.
소설을 마무리한 작가는 SF소설 특징적인 미래주의적 담론을 이끌어낸 것이 아닌, 현재의 세상을 표망하고 있다. 삶의 재건을 결심하는 아마라와 나오미처럼 자그만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도 부단히 애쓰며 삶을 이어가려는 누군가의 투쟁과, 더스트라는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이라는 새로운 싹을 틔우고 무성한 덩쿨로 세상을 재건해가는 모습은 작가의 의도에 공감하면서 식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에 강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결국 살아간다는 건 누군가와의 작은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라고 여운을 남긴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무성하게 얽혀있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관계의 얽힘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었을까.
[이다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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