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만들어져 온오프라인에서 꾸준히 만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있습니다. 음악 감상회 MUZER GANG입니다.
이 모임은 크게 글을 쓰는 사람들과 음악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있는데요. 2년 전 프로젝트 당신에서 글쟁이의 대표 격인 편집자 삼백이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뉴스레터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저희는 꽤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요. 그 기간이 어느덧 3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짧다고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함께 한 멤버들과 신나게 근황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모임의 주축이 되는 멤버 세 명을 모아 근래의 음악씬과 작업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하루종일 음악과 함께하는 사람들이다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 이야기밖에 없네요.
정리를 도와준 인홍이에게 감사인사 돌리며, 글 시작합니다. 편의 상 각자의 이름이나 닉네임 대신 A, B, C, D로 처리했습니다.
1. 요즘 가장 핫한 음악계 화제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B: '힙합이 멋없어'지면서 그에 대한 반향으로 락이 뜨고 있어요. 원래부터 리스너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혁오나 실리카겔을 중심으로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락이 다시 메인스트림이 될 확률은 적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근본 밴드 음악은 만들기 너무 어렵거든요. 일례로 제가 지금 컴퓨터를 켜서 비트를 찍으면 30분이면 한 곡을 만들 수 있는데 밴드 음악은 생각할 게 너무 많아요. 저도 밴드 음악을 좋아하고 밴드들을 존경하지만 천재들이 아니면 뜨기 힘들 것 같아요.
D: 저는 힙합씬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최근 힙합씬에서는 디스전이 번져 명예훼손으로 법정까지 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때, '디스전을 예술로 볼지 혹은 명예훼손으로 볼지'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해볼만 한 것 같아요. 1세대 래퍼인 JJK가 개인 유튜브에서 이 사례에 대해 잘 정리해두었는데, 관심있으면 찾아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C: 그 밖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소위 '사'짜 들어가는 전문직들과는 달리 음악은 라이센스가 있는 영역이 아니잖아요. 챗지피티가 나온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음악 코드나 탑라인을 짜달라고 하면 다 해주긴 해요. 아직 인간 손을 많이 타야하지만 몇 년 안에는 학습시키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인상적인 음악은 만들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귀에 맞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어요.
D: 저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생각하기 쉽도록 그림으로 비유해볼게요. 미드저니로 만든 그림을 보면 선이나 오브젝트가 분명하지 못한 느낌이 있잖아요. 현업자가 볼 때는 현재의 인공지능 음악도 비슷한 느낌이에요. 음정이나 음색이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고 뭉개져요. 그래도 음악의 형식이나 구성, 멜로디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B: 저는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조금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는데요. 이제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어중이 떠중이들은 없어지고 진짜 본질을 아는 사람들만 남게될 것 같아요.
2. K-POP에서 돋보이는 걸그룹은 단연 뉴진스
C: 저는 요즘 뉴진스 음악을 정말 많이 들어요. 특히 250과 FRNK가 프로듀싱한 곡들은 굉장해요.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각각 소개해드릴게요. 250은 약간 은둔고수같은 느낌이라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거나 활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 유명한 곡을 많이 썼어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250은 원래 스탠다드한 힙합 비트를 찍던 사람이에요.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이센스의 <비행>도 250이 찍었고요.
지난 2022에는 앨범 <뽕>으로 한국대중음악상을 휩쓸기도 했어요. 밈으로 유명한 신바람 이박사와 함께 작업한 곡이 있었는데, 그걸 계기로 '뽕끼'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4년동안 앨범을 만들었어요. '뽕끼'에 특유의 코드와 리드가 특징이고요. 최근 뉴진스의 곡인 <하우 스윗>에서도 잘 나타나죠.
저는 2022년에 후르츠 칵테일이라는 쇼케이스에서 직접 본 적이 있는데요. 관리가 잘된 외모도 외모인데 담배를 진짜 맛있게 피던 게 인상 깊어요. 그리고 의외로 문신(은) 없었습니다. 그때 공연장에서 CD 샘플팩을 공짜로 나눠줬었는데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답니다.
FRNK는 제가 뉴진스 곡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오엠지>
최근에는 뉴진스 윈터 리믹스에 참여했는데요. <오엠지>
A: 냉정하게 말하면 250은 전자음악 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자가복제의 느낌이 있죠. 물론 그걸 '신'급으로 잘하지만요. FRNK는 다양한 장르를 많이 시도했죠. 테크노에 트랩에 인디락도 하고... 부분 부분에 있어서 잘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승무원>, <간주곡> 등 김심야와의 작업들이 좋았는데, 이제는 의견 차이가 너무 커졌다고 해서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 250과 FRNK는 한국 디제이씬에서 개성이 가장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이 대중적으로 많은 공감을 사는 곡들을 만들고 있다는 게 재미있고 즐거운 지점인 것 같아요.
다만, 민희진 대표가 주장한 '이지리스닝'이나 '저지클럽'이 뉴진스의 음악색이라는 말은 공감하지 못하겠어요. 왜냐하면, '저지 클럽'은 이미 5년 전부터 유명했던 장르고, 최근에는 뉴진스 말고도 많은 걸그룹들에서 차용하고 있어요. 당장 떠올려보아도,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푸른 수염의 아내>도 저지클럽이고요. 트와이스의
B: 최근 뉴진스는 마이애미 베이스라는 장르를 차용했어요. 일반적으로 808로 만드는 비트는 트랩처럼 박자를 많이 쪼개는데요. 이 장르는 100-130BPM을 유지하면서도 쿵쿵쿵하는 느낌을 주는 게 특징이에요. 종종 숏폼 영상을 보면 흑인들이 퓨마 신고 이 장르의 곡에 맞춰서 춤을 추기도 하지만, 절대 메이저한 장르가 아니라 놀랐어요.
3. 비슷한 시기에 앨범을 낸 '에스파'와 '아이브'는 어떻게 들었어요?
A: 에스파 부터 말하자면, 선공개된 <수퍼노바>와 <아마겟돈>을 너무 잘 들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좋다고는 못하겠어요. 저는 에스파의 팬으로서 에스파의 지향점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쇠맛'과 '하이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앨범의 구성을 보면, 1-5번 트랙은 '쇠맛'을 6-10번 트랙은 '하이틴' 느낌을 주려고 한 것 같아요. 이렇게 구성하면, CD의 A면과 B면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고, CD 플레이어의 모습을 한 이번 앨범 패키지와 합도 잘 맞고요.
둘의 컨셉 차이가 큰 만큼 잘 연결해야 했을텐데 그게 좀 미흡했어요. 그냥 두 컨셉을 억지로 합쳐버리거든요. 그게 저는 많이 아쉬웠어요.
B: 참고로 두 컨셉을 연결하는 7번 트랙은 전소미의 <패스트 포워드>를 만든 작곡가가 만들었어요. 전소미의 곡이 굉장히 매력적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저도 조금 아쉬웠어요.
A: 이수만 대표의 부재가 조금 컸던 것 같아요. 원래 에스파처럼 컨셉이 강한 그룹을 만들 때는 진두지휘하는 디렉터에게 강한 힘이 집중되어야 하고, 에스파는 데뷔부터 이수만 대표가 직접 총괄하는 그룹이어서인지 그게 굉장히 잘되었어요. '쇠맛'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고요.
사실, 이번 앨범에서는 '쇠맛'도 잘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쇠맛'은 사실 진짜 '쇳소리'를 의미하는 단어거든요. 2022년 이수만 대표가 디렉팅한 <세비지>에는 그 소리가 굉장히 잘 쓰였고, '쇠맛을 잘한다'는 그런 맥락에서 나왔어요. 하지만 이번 앨범에는 이 '쇳소리'가 없습니다.
B: 반면에 아이브의 앨범은 정말 균형있게 잘 뽑혔어요. 특히 저는 예쁜 느낌을 주는 곡들을 좋아하는데 수록곡 <아이스 퀸>은 펼쳐지는듯한 아르페지에이터 사운드가 매력적이어서 정말 많이 들었어요. 에스파는 정규 앨범이고, 아이브는 EP 앨범이라서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겠지만요.
D: 아이브 앨범 좋죠. 정말 다양한 장르에 대해 시도를 했고요. 특히 <리셋>에서는 요즘 리드에서 자주 쓰이는 '아프로 비트'라는 장르를 굉장히 잘 썼는데요. K-POP에서 이 장르에 대해 어떻게 다가가야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잘 보여준 것 같아요.
A: 저도 아이브의 앨범 전곡 다 좋게 들어서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는데요. 하나 아쉬운 점은 아직 '아이브'만의 색이 없는 것같아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K-POP은 그룹마다의 독특한 컨셉이 있다는 게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그게 안 보여서요.
그런 점에서 레드벨벳이 컨셉과 대중성 사이에서 균형을 정말 잘 잡았죠. 사람들이 농담처럼 '국힙 원탑'이라고 하는 게, 레드벨벳은 힙합의 주요 장르인 트랩을 기반으로 정말 예쁘고 컨셉도 좋은 앨범을 많이 보여줬거든요. 그래서 이번 곧 발표될 앨범도 기대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