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다의 보물을 찾아서

본제는 'Glass'
글 입력 2024.05.3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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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물이 찰랑거리는 캐리비안의 바다. 한때는 해적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누볐던 이곳은 과거와는 달리 차분하고 잔잔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시끄러운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된 하나의 캡슐, 바다와 해변과 하늘이 만나서 조각해낸 이곳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해변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정갈한 파라다이스 같은 느낌을 풍겼으며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분위기가 깊이 스며든 곳이었다.

 

해변 앞에 펼쳐진 깊은 바다와 땅을 잇는 얕은 바다에는 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과거와 현재 사이 어딘가에 놓인 시점, 해적들의 이야기가 점차 끝에 도달해 가던 황혼의 시대에 한 해적이 이곳에 보물을 숨겼다는 것이다. 그 보물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직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특별한 물건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 보물은 얕은 바다의 어딘가에 묻혀 있으며,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보물 근처에 함께 묻혔다고 알려진 금빛 돋보기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금색 꽃이 새겨진 그 돋보기로 보물을 비추면, 그 누구도 지나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신비롭고 밝은 빛이 보물에서 스며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보물을 찾아내고 감별하는 방법인 돋보기가 아주 중요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전설은 사실이 아닌 단순한 이야기로 치부되어 왔다. 보물을 찾기 위해 바다를 찾는 이들은 많지 않았으며, 덕분에 이 바다는 유명세나 사람들의 몰림으로 인해 망가지거나 시들어 가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좋아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은 아직 전설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설이 사실이고 보물이 바다에 묻혀 있다고 믿었으며, 이 모든 것은 그들의 감정과 흥분, 호기심을 형용할 수 없을 정도까지 자극했다.

 

한 주말, 캐리비안의 얕은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케리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수영복을 입고 환한 금발 머리를 찰랑거리며 물속을 누비는 그녀는 허리춤에 찬 작은 주머니와 손목의 시계 등, 최소한의 장비만 착용한 채 보물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케리의 손에는 방수 처리가 된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바다를 찾은 이유는 혼자서 휴식을 취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아를 깨끗하게 치유하고 무엇보다 추억을 쌓기 위함이라고 했다. 하지만 바다로 온 진정한 이유는 보물을, 그리고 그 전에 돋보기를 찾기 위함이었다.

 

아침 일찍, 태양이 나타나 바다와 해변을 비추기 시작한 시점부터 한낮인 지금까지 케리는 물속을 탐험하고 있었다. 날씬하고 탄탄한 그녀의 몸에 강렬한 열정과 호기심이 더해지자 케리는 결코 지칠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근처에 있는 바위 위로 올라가 태양빛을 받고 휴식을 취하면서 인어공주의 모습을 따라하기도 했지만,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이 바다는 워낙 얕았기 때문에 아무리 깊이 내려가 바닥에 닿더라도 머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면과 햇빛이 가까이 보일 정도였다. 하나의 거대한 수영장 같은 깊이였다.

 

역사 도서관의 먼지 끼고 구석진 한 곳에서 지도를 찾은 그녀는 사서 몰래 페이지를 뜯어 가져왔다. 물에 젖지 않게 방수 처리를 한 그녀는 돋보기의 위치를 그린 지도를 보면서 집착에 가까운 수색을 하고 있었다. 돋보기가 묻힌 곳의 추정 범위는 점점 좁혀져 오고 있었다. 케리의 마음은 길어진 수색 때문인지 지루함이 조금씩 섞여들어가 바다에 처음 들어올 때보다는 진정이 된 상태였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 뒤편에서는 작은 두근거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케리는 입에 호흡기를 물고, 깨끗한 수경을 낀 채 계속해서 바다를 누볐다.

 

그러던 어느덧 케리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 아래 모래가 빠짐없이 깔린 바다의 바닥에, 작은 돌과 짧은 해초 사이에 무언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언뜻 보면 주위의 자연물 사이에 숨어들어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의 인공적인 몸체는 주위에 섞여들지 못하고 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케리는 헤엄치던 깊이에서 더 아래로 잠수해 바닥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수면을 뚫고 바닷속으로 들어온 한낮의 강렬한 햇빛이 그녀를 감쌌으며, 그녀가 향하는 바다의 바닥까지 선을 그리며 비추었다. 아래로 헤엄치면서 케리는 그 물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가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물체는 더 자세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바닥에 도달하자 케리는 물체로 손을 뻗었다. 물체를 만지자 단단함이 느껴졌다. 모래와 작은 조가비가 묻고 쌓이면서 표면은 울퉁불퉁했지만, 그 사이로 드러난 물체의 피부 같은 표면은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케리는 다른 한 손으로 물체 주변에 있던 바위와 해초를 치우면서, 천천히 그리고 조심히 물체를 당겼다. 어느새 그녀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소리가 그녀의 귓속으로 들어오고 물속에서 찬찬히 울리고 있었다.

 

케리가 꺼내든 그녀의 손에는 작은 돋보기가 들려 있었다. 손잡이와 테두리는 모래 등으로 인해 더러워져 있었지만, 그 중심부에 달린 둥근 유리는 여전히 깨끗하고 투명했다. 유리에 조금 묻어 있던 모래와 해초 조각은 케리가 돋보기를 꺼내 들면서 다 떨어져 없어졌다. 돋보기를 발견한 케리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지금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케리는 돋보기를 손에 들고 다시 수면 위로 헤엄쳐 갔다. 위를 바라보면서 올라가는 케리의 앞에는 물속에서도 보이는 환하고 둥근 태양이 보였다.

 

물 위로 올라온 케리는 호흡기를 빼고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따뜻하고 눈부신 햇빛이 그녀의 얼굴을 적셨으며, 눈부심이 가시자 드러난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푸르고 맑은 모습이었다. 케리의 얼굴에는 작지만 자연스러운 미소가 환하게 피어 있었다. 그녀는 물속에 있던 손을 꺼내 돋보기를 들어 보였다. 수백년의 세월 끝에 돋보기는 다시 물 위로 나왔다. 돋보기에 묻은 물기는 햇빛을 받아 환하게 반짝였으며, 돋보기의 유리는 하늘과 마찬가지로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지는 듯했다. 돋보기에는 금색 꽃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케리의 미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환하고 길게 그녀의 얼굴에 퍼졌다. 입이 귓가에 걸릴 정도의 환한 미소였으며, 그녀의 눈 역시 행복한 감정을 맘껏 뿜어내고 있었다. 돋보기를 얻은 케리는 이제 보물을 찾기만 하면 됬다. 돋보기를 비추며 바다를 돌아다니기만 하면 되니 보물을 찾는 일은 보다 쉬울 것이었다. 무엇보다 보물은 돋보기가 묻혔던 곳의 근처에 있다고 하니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케리의 마음이 다시 뛰기 시작했으며, 흥분과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케리는 수면 위에 고개를 내놓고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잠시 동안 눈을 감고 둥둥 떠다녔다. 따스한 햇빛이 그녀의 젖은 몸을 다시 감쌌으며,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는 그녀에게 바다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렇게 짧은 휴식을 취한 다음 케리는 다시 몸을 풀고, 호흡기를 입에 물었다. 수경을 다시 착용한 다음 케리는 품속에 안고 있던 돋보기를 다시 확인했다. 물기가 거의 마른 돋보기는 유리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강인하면서도 작고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새겨진 금색 꽃 문양은 예쁘게 빛났다. 케리는 돋보기를 들고 물속으로 잠수했다.

 

돋보기가 묻혀 있던 곳을 시작으로, 바닥이 코앞에 닿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잠수한 채 케리는 돋보기를 이곳저곳에 비추기 시작했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점프를 하듯 빠르게 헤엄치기도 했다. 돋보기를 찾고 정오가 지난 다음 헤엄치는 바다는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바다에는 마법의 물약을 탄 듯 보석과 같은 색감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었으며 지금껏 보지 못한 색조의 파란색이 스며들어 있었다. 물의 품에 안겨 있던 케리는 따뜻하면서도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바닷속 탐험은 케리가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듯 했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케리는 근처 지역을 한번씩 다 누볐지만, 돋보기의 유리에 환하게 빛나는 보물은 드러나지 않았다. 케리는 바닥에 더 가까이 다가가서 돋보기를 들이댔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케리를 자극하던 흥분과 기대감은 점점 희미해져 갔으며, 그녀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 갔다. 돋보기를 찾던 과정에는 느끼지 못했던 피로감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후가 지나면서 밤에 조금씩 가까워지자 물도 차가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리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은 채, 점점 더 힘들어지는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물속을 헤엄쳤다. 하지만 끈은 점점 얇고 가늘어졌다. 시간이 더 흐르고 하늘이 우중충해지는 오후가 되자 끈은 결국 끊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시간이 더 지나면 해가 뉘엿뉘엿 지고 밤이 찾아올 것이었다. 케리는 밤이 돼서도 손전등을 키고 검고 어두워진 바다를 누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너무 위험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찾아올 우울함과 외로움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앞이 잘 보이지 않으면서 보물이 빛나기만을 기대한 채 돋보기를 이리저리 휘두를 수도 없었다. 결국 케리는 마음속에 독처럼 퍼지는 실망감 그리고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짓누르면서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해변으로 올라온 케리의 낯빛은 어두웠다. 그녀의 감정과 표정을 따라하듯, 하늘에서도 태양의 빛이 빠져나가면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는 초저녁의 짙푸른 색감과 회색이 스며들었다. 하루 종일 물 속에 있었던 케리의 피부는 물에 젖어 매끄러웠지만 이곳저곳에 멍이 들고 쭈그러진 부분이 있었다. 바다에서 수 년의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케리는 해가 저물어 가는 바다를 마지막으로 바라본 다음, 다시 몸을 돌려 터덜터덜 숙소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돋보기가 들려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케리는 몸을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쓰러지듯이 침대 위로 몸을 누웠다. 다른 일을 하고 싶지도, 다시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단순 의지의 문제일 뿐 아니라 몸 자체를 움직일 수 없었다. 몸 뿐 아니라 정신 역시 피곤함에 점차 잠식되기 시작했으며, 케리는 졸음이 파도처럼 빠르게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서서히 그녀의 마음은 잠의 파도가 만든 바다에 잠겼으며, 케리는 잠에 빠져 몇 시간을 잤다.

 

케리는 이후 갑작스럽게 깨어났다. 꿈을 꾸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설사 꿈을 꾸었다 해도 그녀가 깨어나는 순간 머릿속에서 빠르게 휘발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창밖은 완전히 검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난 것이 분명했다. 케리는 옆에 놓인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여덟 시 정도였다. 케리는 다시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바다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케리는 침대 위에 다시 드러누웠다.

 

하지만 잠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케리의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몸은 많이 나아졌으며, 사라진 피곤함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정신은 말똥말똥 깨어 있었다. 오늘은 숙소 내에서 간단하게 놀면서 조용히 밤을 보내게 될 것 같았다. 케리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자신이 바다에서 나와 숙소에 들어온 이후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을 씻기는 커녕 물기를 닦지도 않고 침대에 바로 드러누웠던 것을 케리는 기억해 냈다. 침대의 하얀 천은 마치 그녀가 자면서 땀을 흘린 듯, 아니면 물을 크게 쏟은 듯 그녀가 누운 자리에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지금 물기는 많이 마른 상태였지만, 케리의 몸에는 뒤늦게 찝찝함이 몰려왔다. 바닷물이 마르면서 그녀의 몸과 침대에는 작은 모래들과 함께 바다의 진한 향기가 묻어 있었다. 물이 빠졌지만 여전히 축축한 수영복은 케리의 몸에 기분 나쁘게 달라붙어 있었다. 케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이 걸어온 문과 복도를 확인했다. 문에서 침대까지 물방울과 발자국이 마른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어렵지 않게 청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바닥과 침대를 치우기 전에, 오늘 밤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이전에 몸부터 씻어야 했다.

 

케리는 자신이 옷을 넣어 둔 서랍과 가방으로 가서 갈아입을 셔츠와 반바지 같은 겉옷과 속옷을 꺼내들었다. 욕실로 향하던 그녀는 순간 무언가를 깜빡한 듯, 다시 침대 쪽을 뒤돌아 보았다. 젖은 침대 시트 위에는, 자신이 들고 왔던 돋보기가 놓여 있었다. 오늘 그녀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게도, 좌절하게도 한 돋보기. 케리는 돋보기에서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다. 여기서 돋보기를 버리거나 다시 바다로 던져 버릴 수도 없었다. 케리는 다시 침대로 걸어가 돋보기를 챙겼다. 돋보기에도 바다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내일 다시 바다로 탐험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돋보기를 같이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리는 옷과 함께 돋보기를 챙겨 들고 욕실로 향했다.

 

케리는 수영복을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얼굴에 다시 물이 닿자 바다에 잠수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케리는 몸을 더 격렬하게 움직이고 수영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숙소였으며 오늘 남은 일은 쉬는 것뿐이었다. 물줄기가 케리의 머리에서 시작해 어깨와 가슴, 배와 다리까지 타고내리면서 그녀의 몸에 묻어 있던 바다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워 나갔다. 케리의 발 아래, 대리석 바닥을 타고 배수구로 흘러내리는 물에는 모래와 땀이 함께했다.

 

비누와 함께 깨끗하게 샤워를 마친 케리는 옷을 입었다. 샤워실의 창문은 열려 있었다. 아직 한여름인 데다가 더운 휴양지였지만 밤이 되니 창밖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더 신경쓰이는 듯했다. 거기에다가 하루 종일 수영복만 입고 있었으니, 다시 입는 옷과 바지가 든든하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케리는 옷을 다 입고 나서 욕실에서 나가기 전에, 잠시 변기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바닷속 탐험의 과정과 거기서 느꼈던 기쁨 그리고 실패를 되새겼다.

  

보물을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관련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보물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과연 내일 다시 바다에 나가는 것이 맞는 선택일지 그녀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무엇이 맞는 선택일까. 거기서 더 나아가 과연 보물이라는 게 있는 것일지 케리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금색 꽃이 그려진 돋보기를 찾았다면, 전설은 사실이라는 의미일 텐데.

 

혹시 파도에 의해 보물이 바다 깊은 곳으로 쓸려 나갔을까? 아니면 그것이 보물인지를 모르는 다른 사람이나 혹은 바다 생물이 먼저 가져가 버린 것일까?

 

케리는 머릿속에 갑작스레 떠오른 이 생각이 신빙성 있다고 생각했다. 저 바다에는 보물이 없다는, 자신이 헛고생을 한 것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먹구름처럼 마음에 끼기 시작했다. 케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쩌면 어때. 보물에 목숨을 건 것도 아닌데. 케리는 주의를 돌려 오늘 밤 무엇을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맛있는 걸 먹고 영화도 보고 싶었다.

 

케리는 욕실에서 일어서기 전, 마지막으로 돋보기를 바라보았다. 샤워 하면서 돋보기도 함께 씻기로 결심했는데, 깜빡하고 있었다. 케리는 옆에 놓여 있던 돋보기를 들어 올렸다. 바다가 아닌 실내에 들어와 자세히 살펴보니 알아채지 못했던 돋보기의 고급진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 부분, 새겨진 금색 꽃, 낡았지만 부드럽고 단단한 테두리와 손잡이까지. 아직 씻지 않은 상태여서 모래와 먼지 등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은 오히려 돋보기를 고대의 유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케리는 돋보기를 얼굴에 더 가까이 가져왔다.

 

그 순간, 돋보기의 유리 한가운데서 환한 빛이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눈이 부시자 케리는 고개를 돌리고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깜빡하고 있던 사실을, 보물을 비추면 빛이 난다는 사실을 케리는 생각해 냈다. 화장실 안을 돋보기로 보는데 빛이 나다니, 이곳에 보물이 있을 리가? 케리는 갑작스레 뛰기 시작하는 마음을 붙잡고 다시 돋보기를 들여다보았다. 돋보기에는 이전보다 더 강하고 환하게, 금색 빛이 환하게 나타나 있었다. 케리는 돋보기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돋보기 그리고 케리의 앞쪽에는 세면대 위 벽면에 크게 설치된 거울이 있었다. 돋보기는 거울 비추고 있던 것이다. 케리는 순간적으로 이 거울이 보물인지, 아니면 거울 안쪽에 보물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돋보기를 비추면 보물에서 빛이 난다고 했으니 말이다. 돋보기를 든 케리의 손은 덜덜 떨렸다.

 

하지만 거울은 보물이 아니었다.

 

돋보기를 다시 들여다본 케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케리는 돋보기의 유리 안을 들여다보았다. 빛을 내고 있는 것은 거울이 아니었다. 거울의 표면 위에, 거울 안쪽에 비친 돋보기가 빛을 내고 있던 것이다.

 

곧 돋보기는 더욱 환하게 빛나면서 눈을 뜨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며, 돋보기에서 시작한 빛은 케리의 팔과 몸을 타고 올라와 그녀의 가슴으로 향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빛은 사라졌다. 돋보기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들어왔다. 케리는 조심히 돋보기를 집어 들어,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거울 안에 비친 케리는 반짝이는 별과 같은 환한 빛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하지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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