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무애 無碍 16

경멸의 서 2
글 입력 2024.05.0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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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그대 가슴에 밭고랑을 갈 것이라. 대지에 쇠스랑의 흔적과 상처를 내는 것은, 결국 씨앗을 심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농부는 그 고된 일을 행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땀흘리지 않을 것이라. 나는 경멸과 고통을 알려줄 것이다. 쉽게 흔들어 무너질 것이어서도 아니, 누군가 쉽게 뺏들어가갈 만큼 연약한 것이어서도 아니, 도로 가져갈 수 있는 남의 것도 아니, 그대만의 사랑. 우리는 더 뒤에서 가는 만큼 멀리, 더 밑에서 오르는 만큼 높이, 하여 오직 끝없을 듯이 꾸준히 가야만 한다. 그대에게 그런 사랑을 알려주기 위해 경멸을 알려주리라. 

 

경멸할 만한 것들에게, 모서리를 깎은 애틋하고도 절절한 경멸을 주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이다. 스스로 경멸할 만하나 그를 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의 눈을 열어 경멸을 보이는 것과 경멸할 만하나 그를 직면하기 어려워 언제나 도망쳐온 사람의 발을 묶어 경멸을 마주하게 하는 것, 아픔으로만 갈 수 있고 그처럼 뜨거운 것으로만 갈 수 있는 사랑이 그대와 나의 사랑이다. 생명이 세계를 터득하여 스스로 알아볼 수 있던 것과 달리, 우리는 자신을, 더 정확하게는 자신의 경멸을 알아볼 줄 모르기에 쉬이 사랑스러워질 수 없었다. 우리가 안고 태어난 장막을 두 눈에서 거두어, 고통 속에 뜨겁게 소리치며 태워버릴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가 참되게 사랑스러워 나갈 수 있도록은 그보다 먼저 서글픈 고통을 주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사랑이다. 

  

- 무애 無碍 15

 

 

사랑스럽지 않은 것들. 포문을 열었음에도 일컫기가 너무도 망설여지는구나. 어떤 양식으로도 장차 일어나게 될 무수한 반감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나의 사랑이 처음에 오해로서 가리. 반감과 불신, 곡해, 경멸 혹은 혐오, 이 모든 것이 생에 내리듯 쏘아 박히는 당연함이었다. 나는 본디 다정한 사람이 아니요, 순응하는 자 아니요, 겸손한, 실은 두려움 굴복하여 적당히 타협하는 자 아니요, 두려움이 많은 이로되 쉬이 꺾을 수 없을 만큼 치기롭고, 집요하며 오만하다. 재바르고 예리하신 사람이라면 내 글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이따위 경멸스러움을 미리 알아보시었으리다. 


자기에 대한 자신의 인정, 두둔과 합리화를 경멸하여 내 민낯의 진실만을 원했다, 아 빌어먹을 것, 영혼에 있어 오직 그 엄정한 진실만을 요구하매 나날이 표독스러워만 졌다. 진실 이 빌어먹을 것, 도무지 이 영혼이란 것은 숨거나 피하려만 들고 어지간해서는 순순히 자백하지 않아서 말이지. 그만 인정하라고 소리쳐 몰아세우는, 피로와 광기에 찌들어간 어느 심문관처럼 나를 다그쳐왔다. 끝없을 것처럼 나를 다그쳐 경멸해왔어 허나, 청교도와 참회자, 순례자와 죄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그러하였듯이 온순하고 아름답게 하지는 못했군. 문서로 남겨진 그들, 정돈된 활자에 안치된 채 전해 내려온 그들처럼 맵시 있고 아름답게만 참회하지 못했어, 나도 그들처럼 가시 없는 아름다움으로만 성사 聖事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이렇게 표독한 아픔으로 그대들에게 가지는 않았을 테니. 허나 여전히 내가 지나와 이해하는 고해란 그렇게 깔끔하게만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이렷다. 아집일지도 모르지, 허나 자신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높고 정순할수록, 그 뒤를 따르는 고해의 눈물이 따숩고 아리따이 떨어질 리야 만무할지니.


경멸스러운 자신을 두둔하는 자가 못되었기에 타인을 그저 받아들이지 못하였고, 자신에게 엄격함을 요구하는 만큼 타인에 너그럽지 못하는구나, 여전히. 그건 내가 택한 삶의 방식, 신실한 자기 경멸의 뒤편으로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것임을 나는 복잡미묘하게 이해하나, 그것을 그대에게 이해시킬 방법까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리야. 아 자신을 느끼는 듯이 서로를 느낄 수 있다면, 이지의 해석이 아니라 이 몸의 느낌으로 몸소 알 수 있다면! 허나 우리 저마다의 세계가 감각적이자 즉물적인 경험으로서는 완벽히 단절되어 있기에… 그대가 나를 들으신들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며, 훌륭하신 그대 능히 이해하신들 받아들임엔 이해보다 깊은 것이 필요하였으니, 그대 이해를 넘어서는 깊이 느끼실 것이며, 그렇게 그대가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내가 그따위 엄청난 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 이미 나를 정히 느끼시어 구태여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으시고, 하여 내가 행하고 있는 이 구구절절한 변명이란 애초부터 필요 없는 것이 되어 있었으면…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난 것에 대해 느끼어 알고, 이미 이해해 받아들이시었던 바로 그 방식처럼. 마치 어제 저녁에 그대 누군가 몹시 미워하시고 경멸하시던 일을 스스로 생각할 제 가슴이 벌써 느껴버리는 듯이. 허나 우리 중 누가 그럴 수 있을까. 


하여 내가 되받아온 것은 내가 뿌려버린 바로 그것이다, 단절된 자 우리 사이의 몰이해에 더부는 고통, 태어나는 경멸, 내가 받을 것은 오직 내가 지금 주고 있는 것이다. 내내 살아왔던 것, 내게로 돌아드는 경멸과 혐오란 집요할 정도로 공평하며 편협한 나 자신으로서의 인생이 받게끔 점지 되었던 것이고, 받아야만 했던 당연한 것들이었다. 경멸, 받아온 것들과 되돌아 나가려는 것, 어느 쪽도 경멸스러우나 어느 쪽으로도 쉬이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이제야 그로부터 조금 떠나갈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떠나가려는 지금, 뒤를 돌아보며 나는 묻는다. 무엇이었던지, 무엇이 나를 그 기나긴 방황과 공황, 고독과 오뇌 속으로 인도하여 그 안에 머무르게 하였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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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경멸의 침묵 속에서, 두려움과 고통이 낳는 뜨거운 아우성을 가두어둔 가슴의 침묵 기나김 속에서, 나는 오래도록 진실을 구가해왔다. 그건 세계의 거창한 진실 따위가 아니라 오직 나만의 것, 나만의 진실, 경멸로부터 자유하는 나의 정답. 알려줘, 무엇이 나를 그토록 사랑스럽지 않게 하였는지, 경멸스럽게 했는지. 가르쳐줘, 어떻게 그대와 같이 나는 자연히 사랑스러워질 수 있을는지. 내내 힘주어 사랑하지 않고 숨을 내쉬는 듯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며, 오직 그렇게만 느낄 수 있을 것인지. 허나 어떤 그대도 내게 그걸 알려줄 수 없었다. 하나의 문장으로서, 하나의 주장으로서는 말해질 수 있겠으며, 실지 무수히 들어도 보았으나 그건 그저 그대의 사랑스러움을 내게 알리는 것에 불과할 뿐. 누구도 완벽한 것이자 필연한 것으로서는 알려 줄 수 없었다.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인즉 사람에 선별 없이 필연한 것이요,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같은 것인즉 변치 않는 것이며, 나와 비단 그대 외의 모든 인간에 걸맞은 것인즉 보편타당한 것으로서는. 그건 가르쳐줄 수 있는 것, 바깥으로부터 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이해한다. 상냥한 사람의 누구나 내게 그것을 알려주려고 했으나, 그 어떤 것도 나의 오만과 불신과 두려움을 압도하는 것인즉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서는 올 수 없었다. 나는 오래도록 알고 싶었다. 무엇이 내 사람의 경멸을 사는지, 또한 무엇이 내 안에 그 경멸 살만 한 것인즉 경멸스러운 것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었는지, 마치 지금 이 글과 같은. 나는 알고 싶었으며, 정확히는 자유하고 싶었다. 허나 그건 너무 어려운 바람이었고, 나를 지금에 이르는 아주 먼 곳으로 이끌었다. 구한들 답을 찾을 수 없고 나선들 도착할 수 없는, 기나긴 의심의 문답으로. 


보련들 잘 보이지 않고, 찾으련들 이미 짙게 가려져 있는 것을 찾고자 오래 헤매였구나, 사람의 경멸스러움. 찾고 구함에 있어 언젠가 나는 실패하리라는 것을 이해했다, 이 모든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야만 하며, 널리 알리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러므로 실은 침묵 속에 있는 편이 더욱 좋으리라는 것을 이해했다. 결국에 인간의 경멸스러움은 명명히 찾아내 증명할 수 없고, 그 외 다른 피치 못할 사정 및 인간적인 정서들과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로부터 온전히 그것만을 들쳐 올릴 수 없으며, 백백히 가리켜본들 끝내 납득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여 어딘가쯤에서는 멈추어 포기하고 타협점을 찾아야만 하는 것, 현실, 실재하는 인간의 현상과 그것을 해석하는 사상 사이에 조화점을 모색해야만 하는 것. 나도 알아, 내 두려움의 깊이만큼. 그래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솔직하나 오만하고, 발칙하며 성급하고, 편집적으로 진실을 구가하였으나 결국 철저히 실패한 사람, 나는 나의 삶으로부터 적당함을 체득하지 못했다. 지독함과 집요함에 말미암아 쉬이 공감 사지 못할 사상을 말하는 미운 입이요, 애초 그 누구도 밝혀낼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이로되 굽히지 않는 외곬이라, 시건방진지고 내 길은 애초에 외통이다. 비록 그 끝을 다 모를지언정, 나는 내가 겪어야만 할 어떤 운명을 알아, 경멸, 받아온 것보다 더욱 크게 받을 경멸을. 찾은들 결코 찾아낼 수 없는 것들을 찾고 말하지 않는 편이 더욱 안전한 것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내 실패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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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에도 쉽사리 사랑스럽지 않고 완전히 사랑스럽지 못한 것들, 어느 한 구석쯤 반드시 비루한 존재인 추하고도 사랑스러운 나와 나의 인간들아. 두려움에도 불구 세상엔 사랑스럽지 않은 것들이 또한 잔뜩 있다, 이름 한 자 모름에도 지닌바 불길함과 비루함, 심지어 그 안에 깃들인 추악함마저 곧잘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이가. 오오, 아니란 말은 말아, 나는 그대 순간의 마음을 이해할 뿐 그 말을 믿지 않아. 도처에 넘쳐 흐르지 않는가, 경멸스러운 것들이, 세상은 비루한 인간들의 전당이다! 그대도 늘상 말해오지 않았더냐, '놀라워라, 어찌 저리 무도한 이들이 즐비하다는 말이냐!' 라고. 하나 차마 속으로 품어 삭이실, 으으, 이 경멸스러운 것들에 대한 우리 뜨거운 가슴, 거부와 저항의 부조리. 말하지 않는 편만이 옳으며, 실은 안전하며, 비밀을 나눈 자들끼리 은밀히 말하여질 수 있는 위험한 사상, 경멸에 대하여 나는 공공연히 논하려 한다. 그리고 경멸하는 자는, 가장 먼저 그 경멸을 되돌려받아야만 한다. 경멸하는 자는 경멸로 되갚게끔 되어 있다. 그런 건 세계의 거대한 규칙과도 같아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 나는 두렵다. 


그럼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 인간의 비루함과 그로부터 태어나는 경멸스러움. 나태와 무력감, 염세와 허무, 열패감, 질투와 이기심, 분노와 적의, 수치와 복수심, 비열함과 잔학함, 오만과 허영, 탐욕과 집착, 모든 종류 욕망과 감정의 범람으로부터 태어나는 것. 그리고 욕망에 으뜸인 것은 사랑이니, 아아 사랑!!! 너무 사랑해서 경멸스러워지는 것들을 그대는 이해하는가. 사랑은 대상을 채색하여 오점을, 정확히는 그를 알아볼 두 눈을 가린다.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엄정했으며, 심지어는 더욱 가열했던 그 눈을 멀게 함이요 그저 원하고 갈망케 하는 부조리한 힘. 

 

사랑은 그 자체로 이유이자 까닭이 되어 대상을 자격 조건에 무관히 그저 받아들이게 한다.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엄격했으며, 심지어는 끌래야 끌 수 없었던 저항의 불꽃을 불식하는 부조리한 힘. 우리를 이중적으로 행하게 하고, 모순적이면서도 제멋대로로 만들게 하는 높은 힘. 이타를 가장하는 맹렬한 열망, 이지와 감각의 거대한 저항과 배타성을 넘나드는 자유롭고도 혼란한 이 힘, 사랑. 하여 그대는 이해하는가, 너무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서 우리는 그 막대함에 말미암아 한없이 무력하고, 너무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서 우리는 침묵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지나친 사랑은 그 대상을 사랑스럽게 만들어줄 수 없음이요, 오히려 날개를 뜯어 땅에 가두려 한다. 그때 사랑은 다만 매료된 자의 집착이자 오독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다는 아주 뜨겁고 무거운, 이 가슴 안에 도사린 역설의 존재를 이해하는가? 나아가 타인에 대해서라면 선별적으로 그러하나, 자신에 대해서 전적으로 그러한 것인바, 자기 자신에 있어 이 끝없는 사랑의 한계를 이해하고 있는가. 인간에 누구나 지니고 있을 경멸스러운 오욕과 그럼에도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 우리의 모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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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우리는 누구나 사랑스러웠더라면. 장차 피곤하게 따져들 필요도 없이, 누구나 자신에게 정해진 단 한 명의 사랑스러운 사람을 가질 수 있고 그로부터 인간의 최소한을 충족할 수 있더라면, 각자 어떻게 살든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마음에 크나큰 비밀을 안고 그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신들, 마음에 샘솟는 경멸을 안고 그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신들, 마음에 이뤄질 수 없는 욕망을 품고 그를 가리운 채 살아가신들, 마음에 아집을 품고 그를 가리운 채 살아가신들, 마음에 가득 찬 심연을 안고 그를 미소 뒤에 감추인 채 살아가신들, 어떤 위태로움인들 단 한 명만이라도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을 가슴의 침묵 속에 가둔 채로 살아가시더라면, 줄 타는 듯 위태로우신들 무엇이 그 사람의 명백한 오점일 수 있으랴. 죄악을 범하지 않은 상태의 모든 개인은 단 하나의 인간에게서만이라도 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 외 다른 것들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였으려니. 하여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인간을 우리가 필연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면, 하늘로부터 두 사람이 점지된 채로 태어나 반드시 만날 수 있게 되어있더라면, 무엇이 그 개인의 운명에 있어 필사적인 것이어야 하며 반드시 행해져야만 하는 바 의무가 될 텐가. 


인간에 누구나 다른 인간을 필요로 하니, 인간의 최소한, 단 한 명의 타인으로부터 정히 사랑받는 자에게는 무엇을 오롯이 강요할 수 있겠으랴. 각자 정답이라 믿는 바 신념이란 오직 그 자신 안에서만 참되고, 그것은 선택과 책임을 수반하는 전적인 행위로서만이 참이다. 결국 어떠한 올바름의 믿음도 자기 바깥에서 대행할 수 없는 한 참이 아니라 의견일 뿐이며, 그러므로 제아무리 선의의 사랑이신들 한 개인을 겨누어 행하는 잠언이란, 그 사람의 현재를 부정하고 제 신념을 종용하는바 오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결단코 잠언하는 사람은 이 애석한 모순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으리니. 결국에 타인을 착취하는 바 존재에 대한 극단적 기만을 제외하고서, 인간 존재에 있어 통용될 정답이란 없는 것이렷다. 일상적 영역에서 단 한 명의 인간도 빠트림 없이 알아야 하며, 또 행해야 하는 바는 없는 것이렷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들어온 오래된 잠언이란 어느 한 명의 개인을 가리키려 들지 않고 파헤치려 들지 않은 채 공허히 울려 퍼지곤 한다, 스스로 구하는 자 저 알아서 택하도록, 영리하기도 하지. 그러므로 나는 어리석게 그대들에게 말하되 이 모든 것을 알고서 말한다. 나는 아주 명백한 오만을 행하고 있으며,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말을 해야만 한다고 느낀다, 아니 내가 그것을 원한다. 그러므로 받게 될 경멸로 갚으리라. 나는 사람에 누구나 단 한 명의 사랑을 가져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말한다. 마치 정답인 것처럼 말하며, 한갓 말로써 그대의 정신을 침해할 것이다. 


그 성정이 혼란하신들 어쨌든 사랑받고 있더라면, 그 사람은 살아온 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 욕망이 저열하신들 어쨌든 사랑받고 있더라면, 그 사람은 살아온 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 말과 행동이 모순되어 우스꽝스럽도되 자기 자신이 눈곱 만큼도 모르고 계신들 어쨌든 사랑받고 있더라면, 그 사람은 살아온 대로 살아갈 것이다. 장차 일어날지도 모를 슬픔은 오직 그 사람의 귀속이라 내가 옳그름을 논할 것이 못 되며, 내게 청하지 않는 한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이다. 어떻든 사랑받아 왔더라면 그 사람은 살아온 대로 살아갈 것이며, 나와는 무관해야만 하는 이야기. 단 한 명의 인간으로부터 사랑받는 것, 그 밖에 필수적인 것은 따로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의 말은 단 한 명의 사랑도 갖지 못한 자,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겨눈다. 우리가 행할 고됨이란 모두 사랑스러움을 위함, 자신을 사랑할 단 한 명의 인간을 만나기 위해 행해야만 하는 이따위 뜨거움에 불과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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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럽지 않은 사람들아, 가슴에 사랑 넘치나 사랑스럽지 않은, 인간을 너무도 원하였으나 조금도 되받지 못한 하필 그대들이 사랑스러웠더라면 좋았으련마는. 하여 끊임없고 막대히 샘솟아 부패하는 사랑의 부산, 눅진한 경멸을 흩뿌리고 또 되받는 나의 사람아, 그대가 하필 사랑스러웠으면 좋겠건마는. 세계의 법칙 따위와 무관하게, 나의 경멸 따위와 무관하게 세계로부터 사랑이 몰아치고 있더라면! 자신을 오로지 사랑하여도 좋고, 실지 그리 행해온 사람들처럼. 자신을 오직 크게 사랑하여도 위험이 없고 눈앞의 고통이 없어, 실지 그리 행해온 저 사람들처럼. 그랬더라면 그대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한 맹신에 가까운 사랑을 덜어내고, 그를 위하여 자신을 지독하게 경멸하게 만들 방법 따위는 세상 천지에 없었을 텐데. 이미 그리 적당함에 살아가고 있는, 저기 바깥의 사람들처럼. 


누구나 단 한 명쯤은 자신에 걸맞은 사랑 속에 쉬고, 또 그대의 커다란 사랑, 인간을 향해 쏘아나가려는 근질거리는 욕망이 아무 두려움과 거침이 없는 것으로서 그대로부터 뿜어져 세계를 향해 퍼져 나가 올곧이 되돌아올 수 있었더라면, 사랑의 그림자 따위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채 비밀과 순리 속에 스러져 갔을 텐데. 어떠한 형태로든 그대 사랑받았다면, 비록 그대 온갖 인간적이고도 경멸스러운 비밀을 가슴 안에 품고 있다 하더라도 어떻든 간 사랑받았더라면! 그러면 내 장차 하려는 고통의 말이 그대를 빗겨날 텐데. 인간은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여, 그 너머로 가닿게 만들어 줄 수 없었다는 나의 말과 우리 자신의 현재를 뛰어넘기 위해, 자신이 쥐고 태어난 것을 뛰어넘어 마침내 누구나 사랑스러워지기 위해, 그대가 그대 이상으로 사랑스러워지기 위해 어찌할 수 없이 지금을 경멸해야 한다는 나의 말이, 그대와 아무 상관 없는 것으로서 몹시 경멸받곤 폐기처분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대가 사랑스러운 사람으로서 인간의 가운데로 가, 서, 그저 바람이 부닥치는 듯이 사랑받았더라면 이 글은 그대에게 닿지 않았으련만, 닿은들 눈동자를 흐르듯 지나쳐 버렸으려니.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저 사람들에 그러하듯이. 아 그랬으면 참 좋겠구나, 누구나 사람은 자신이 결정한 만큼만 사랑하거나, 그렇지 못할 값이라면 사랑하여 되받길 원하는 그 사람으로부터 공평한 사랑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면! 사랑, 그 외 욕망 무엇에 있어건 정해둔 만큼 원하고 딱 그만큼 되받아 충족될 수 있다면, 얻을 수 있는 만큼만을 진실히 원할 수 있더라면. 그러면 우리가 쉬이 추악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적당한 좌절만으로도 익히고 배워 낮추어낸 욕망을 통하여, 겸허한 체념과 만족을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테니. 


또는 무엇을 얼마나 원하건 그 반만큼이라도 되받을 수 있다면, 자기 자신과 타협할 수 있을 만큼은 세계로부터 얻어낼 수 있다면. 그에게 있을 번뇌가 얼만 하겠으며, 고통이 무엇이겠느냐. 허나 실지 그러한 사람이 있을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욱 많음이다. 원하는 것, 그 반만큼이라도 세계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자, 복된 사람. 허나 그 복을 오로지 자신이 결정할 수 있었겠느냐, 복된 사람 스스로는 그리 여길지도 모르지, 익히 보고 들어왔지 않더냐, 허나 참으로 그러했더라면 세상에 자신의 복을 결정하지 않을 자가 누구이냐. 원하는 것도 구하는 것도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우리 인간들아, 욕망에 있어 원하는 바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거나 되받을 결과를 얼마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더라면. 하여 누구나 본디 안고 태어난바, 점지된 욕망의 민낯을 부둥켜안은 채로도 쉬이 안식에 이를 수 있더라면 이 뜨거운 고해와 경멸의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이야기가 된 채, 무관심과 무의미의 공허 속으로 빠져 기쁘게 익사할 수 있었을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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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름다운 세계로 나는 가고 싶었다. 허나 나는 그런 세계를 믿지 않는다. 환상향에 대한 갈망은 끊임없이 그 아름다운 세계의 상상을 심상 속에 그려내고, 나는 거듭 환영을 찢어 왔다. 나는 그런 세계를 믿지 않는다, 내 말이 단 한 명의 인간도 가리키지 못하는 이상 세계, 이 말이 불필요하고도 억지된 고통으로서 철저한 오독이자 오판이라 반드시 죽어 없어져야만 할, 무균실이자 올바름의 세계를. 나는 믿지 아니한다, 그저 태어난 것만으로 모조리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오직의 다정함과 믿음과 소망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그것은 의지이지 사실이 아니이라. 나는 짓궂지만 간단하게 그 믿음을 비틀어 버리리. 모종의 힘으로 한 곳에 고정해둔 마음의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세계에 즐비한 경멸스러운 것들과 차마 사랑으로 갈 수 없는 것들이 그대 안으로 왈칵 밀어 차리니, 그대가 쉬이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의 세계, 그대도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을 나는 말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우리가 듣고 보고, 경험하였으며, 마침내 받아들인 세계. 그 자신이 받아들인 세계이다, 사람아. 그러니 우리 중 누구나 오직 자신의 몸으로 말할지라. 사랑스러워 이미 가득한 사랑 속에 사는 어느 사람, 나는 몇 명의 그대를 보았다. 아주 드물고 귀한 그대, 그대는 그대의 몸으로 말할지어다. '그럼에도 여기, 내 사랑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필요치 않노라. 내 사랑은 그 자체의 것이자 자체로 충만함이다. 나를 채워 넘친 것들이 세계로 흘러, 흘러가리라. 그대는 이런 나를 틀렸다 하실런가!' 아니, 우리는 오직 우리의 몸과 기억으로 말할지니, 귀하신 그대에게 좋고 좋던 것이, 내게는 쓸쓸한 것인 뿐이어라. 고로 가슴 벅차는 이 사랑의 경멸을 세상 위로 흩뿌리고자 하는, 나의 세계는 그대와 이별해야만 한다.  


내 몸은 믿지 아니한다, 모든 종류의 경멸이 폐기되어 없어져야만 하는, 빛만이 가득한 눈부신 세계를. 내가 믿는 것은 빛과 어둠의 양면, 빛으로부터 태어나는 필연적이고도 연역적인 것, 인간의 어둠, 경멸. 극복하거나 하다못해 침묵되어야만 하는 아 경멸, 나는 그것을 원한다. 나는 그것을 눈물을 뻘뻘 흘리면서도 차마 필요로 한다. 가슴이 한사코 밀어내나, 이성이 강제로 그것을 나 자신에게 주입한다. 심장이 뱉어내고 토해내기를 원하나, 머리가 그것을 다시 떠먹이고자 한다.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하다, 다듬어지지 않고서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 것은 많지 않음이니, 본디 난 그대로 사랑스러운 것은 드묾이니. 심지어 어느 그대도 아직 화내지 마셔라, 우리는 반드시 얼마간 다듬어지고 길든 바 가축화된 존재이니, 비루한 사람으로부터 눈부신 사람에 이르기까지 공평히 그러하니다. 


나는 내 몸과 말이 집채 같은 경멸의 파도 아래에 쓸려나가리라는 것을 예견하나, 아직은 아님이라, 다만 그대 당장의 반감은 그대가 기억하지 못하심에 불과함이니. 누구나 사랑을 위해, 사랑스러움을 위해 길들고 다듬어진 존재라는 것에 나는 이견도 억하도 없어라. 설마하니 그대 얼마나 사랑스러운 지금이신들 아무런 교정 없이 그토록 눈부실까. 우리 중 누구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던가. 시선 속에 얼마나 고된 시간들이었으매, 그럼에도 자유할 수 없는 시간이었더냐. 또 그 두려운 경멸에 대한 억하와 반감에도 불구, 우리 중 누구나 다른 이의 경멸스러운 행위를 또다시 경멸하게 되지 않던가. 자신을 우쭐댐에 자각이 없어 망설임이 없고, 망설임이 없어 스스럼없이 타인을 폄하하는 사람에 대해 그러하였고, 타인을 기만하고 조소하는 무도한 사람에 대해 자연히 그러하듯이, 마치 그대 지금 내게 자연히 느끼심처럼. 그대의 경멸로 그 비루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았던가, 두려워 떠매 길들고 사랑스러워지려 애쓰지 않는가. 마땅치는 않으나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경멸스러운 것에 대한 사람의 자연한 경멸이다. 그리고 인간을 경멸스러운 것으로부터 사랑스러운 것으로 바꿔내던 것 중의 하나는 그 필요악, 사람의 경멸이다. 우리 중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것, 선량한 자와 악독한 자 모두에 기대할 수 있는 보편적인 마땅함이자 최소한의 올바름은, 경멸을 통한 사랑스러움. 양들의 무리에 섞인 경멸스런 늑대에까지 가리켜 일컫는다. 사람은 돌아질 경멸에 두려워 떨며 유순하고 겸손하여라. 나는 그 경멸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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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언제나 놀라워하고 부조리하게 여기는 것, 도처에 만연한 사람의 경멸스러움은 그대의 세계 속에서 사랑스러움과 엄연히 구별되고 분리되어 있을지 모를 테나, 나의 세계에서 그 둘은 한 몸의 것, 아브락사스이다. 사랑스러운 것이 한순간에 파멸함으로써 경멸스러워지거나 혹은 외면 속 비밀리에 쌓여버린 경멸이 일순 터져버림으로써 경멸스러워질 수 있으며, 그 반대로 경멸스러운 것으로부터 어렵사리 세상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 태어날 수도 있는, 순환하는 사랑과 경멸의 세계. 내 가슴엔 사랑과 경멸이 넘치다. 어느 하나 버림 없이 공평하게. 경멸 없는 사랑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엔가 있을 테나 오직 그만이 세계의 떳떳한 주민이 아니고, 가슴이 경멸로 가득 찬 경멸스러운 사람 그대와 내가 또 세상 한편에 있었으니, 삶은 아직 뒷 편을 향해 열려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쏟아질 경멸과, 그를 따라 재생산되어 이 안을 넘치어 되돌아 나가려 하는 경멸을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돌려댈 수만 있다면… 나는 우리가 경멸을 오직 넘고 넘어 사랑스러워져야만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여 도저히 참아내질 못해 질질 흘러버리는 모든 욕망, 비루함의 있을 곳, 경멸을 잉태하는 인간의 애절한 욕망과 그로부터 태어나는 추한 몸짓들, 나는 그것을 곧잘 그릇되다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의 중심, 몸으로서 맨 처음 나의 것이요, 이윽고 모든 그대의 것. 누구의 가슴 속에서도 그 원석이 있으리니, 다름은 오직 많고 적음 뿐이리라. 인간은 막대하고 무궁한 욕망에 비하여 한없이 가녀린 정신의 소유자로서 맨 처음 이 땅 위로 내던져진 존재이니, 태어남과 동시에 마땅히 사랑받을 만큼 훌륭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있어 전능하지 못한,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시험이라, 인간 존재의 사랑스러움은 오직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뛰어넘는 데 있음을 나는 믿는다. 인간의 참 사랑스러움은 갖고 태어난 바이자 결정된 것인 순혈과 순결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선택 속에 있노라심을 믿는다. 자그맣게, 아 무력하고도 길이 거기에 있더이라. 나는 누구나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것을 사랑하되, 동시에 경멸한다. 누군가에게 주어진 사랑스러움을 사랑할 수는 있으되, 스스로 열락과 도취에 빠진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 조금도 경멸하지 않는 사람을 경멸한다. 그런 나의 세계는 그대와 이별해야만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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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멸한다, 매우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자기 자신을 뛰어넘으려 애쓰지 않는 자, 자신을 외면하거나 두둔하는 자를. 그 사람은 모든 문제를 자신의 바깥에서 찾으려고 한다. 나는 경멸한다,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하여 스스로 경멸하지 않는, 경멸을 잊어버린 사람을. 그 사람은 자신의 영혼이 이미 느끼고 있는 자신의 경멸스러움 그 원인을 바깥으로부터만 찾으려 하며, 여전히 자신에게선 조금도 찾아내지 못하는 인간의 경멸스러움을 타인에게서 수월히 찾아낸다. 나는 경멸한다, 자신이라는 허들을 뛰어넘으려 하지 않고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을. 그 자는 자신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믿기에 한계를 과장된 것, 바라보기에 고통스러운 것, 수치와 분노를 일으키는 부조리함 혹은 귀치 않은 것으로 여기어 그 의미를 퇴색시키고자 하는 어리석음이요, 그 어리석음에 멋대로 의미와 해석을 달려 애쓰는 더욱 어리석음이다. 나는 경멸한다, 자신을 사랑하려 들되 오직 사랑만 하려 애쓰는 사람을. 그 자는 자신의 경멸스러움에서도 의미와 사랑스러움을 발견하려 하며, 자신의 경멸스러움에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이어 붙이곤 동화하거나 상계하려 한다. 하여 경멸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사람에 누구나 그것을 원하고 구함이니, 그것을 위하여 너무 손쉬운 방법을 택하려는 사람과 너무 쉬이 자신을 선언해버리는 성급한 사람을. 또는 경멸한다, 자신은 그럭저럭 보통의 인간이라는 믿음을 부여잡은 애틋한 하나의 사람 자체보다는, 그 믿음에 필연한 위기가 찾을 때 제 두 눈을 가려 버리곤 다른 이들을 가리키는 사람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비밀리에 요구해온 나 자신을 경멸하고, 집요하게 자기 민낯의 진실을 요구해온 나의 편집증을 사랑한다. 


또한 경멸한다, 의식 안에서 자신과 타인이 완전히 떨어진 채 구분되어버린 사람을. 그 사람은 행하는 경멸과 받는 경멸을 동일시하지 못함이라. 그에게 있어 자신이 느끼어 행한 경멸이란 자기 몸이 느낀 당연함이자 타당함이고, 타인의 경멸이란 자기 몸이 느끼지 못한 부조리의 고통이다. 하여 경멸한다, 타인에의 엄격함에 지나침이 있고 자신에의 관대함에 지나침이 있어, 그 두 가지 경멸의 객체 사이에 아득한 단절이 자라나게 되어버린 때, 의식이 지니게 될 구조적인 부조리를. 그에게 있어 자신의 경멸스러움은 인간적인 것이자 참작 가능한 것이며, 타인의 경멸스러움은 그저 재고를 필요치 않는 부조리한 것이다. 그 자에게 있어 자신의 몸이 조금도 느끼지 못한 타자적 부조리를 의심해야 할 까닭과 요구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 모순과 부조리를 내 몸으로 이해하고 내 몸을 경멸하듯이 경멸한다. 도처에서 목격되는, 이 만연한 인간 한계! 이 모든 것을 일찍이 행해버렸으며, 행하게끔 태어난 나의 나신을 경멸한다. 


나아가 나는 제일로 경멸한다, 아픔을 말하되 그 아픔을 되받을 한 톨의 각오도 미리 해두지 않은 사람의 방만함을. 그 각오는 그대가 진정 경멸스러워지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었음이다. 극도로 경멸한다, 한 되의 경멸을 행하였으되 한 줌의 경멸도 되받지 못하는 나약함을. 경멸을 뱉는 자는 반드시 그 자신도 경멸로서 되갚아야만 함이니, 그건 세계의 법칙과도 같아 우리 의향과는 상관없는 것. 거기 그대의 취향과 선택 같은 말랑하고 제멋대로인 것이 낄 자리 따위는 없어라. 허나 그대의 나약함이 되갚을 경멸을 받아들이지 못할 제, 표독 혹은 위선으로 더욱 경멸스러워지는 그대를 보았다. 그러니 경멸한다, 부지불식 간의 경멸을 토하되 세계의 규칙에 따라 그대에게로 반드시 되돌아올 경멸에 있어서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 결코 생각해보지도 못하였으며 세상에 어떻게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믿을 수 없다는 순진무구한 눈물을 떨어뜨리는 사람의 무지를. 그 눈물이 얼마나 참되고 순수한 감정의 결정일 수 있는지를 가슴 벅차도록 이해하기에 경멸한다. 세계의 규칙이란 모든 개별적인 사람들로부터 통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심지어 그대 안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타당한 부조리와 복수심이다. 그대가 또한 지금 나에게 느끼실 이것, 그러므로 반드시 되받아들여야만 하는 이것이나, 벅차고 감당하기 어려운. 이 모든 것들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누구나 겪고 지나가야만 했던 것임을 이해하기에 나는 인간을 염려로서 경멸한다. 그리고 나의 주인이자 경멸하는 자로서, 그런 인간의 하나이자 제일인 나 자신을 최고로 경멸한다. 


언제나 돌려받기를 원하는 바 그 반만큼도 옳게 주지 못하고, 돌려받기를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을 주면서도 정당한 것을 돌려받기 바라는 우스꽝스러움을 행하기도 하였으며, 이미 준 대로 올곧이 되받아 들이지도 못하는, 아 인간의 나약함과 그로 말미암은 수많았던 추악함들. 나아가 이 모든 명백한 인간 한계에도 불구, 언제나 도망치려만 드는 인간 정신의 비루함과 도주하는 그 정신의 뒤로 꼬리 길게 이어지는 꼴사나움. 이 모든 것을 내가 어떻게 향기처럼 사랑하고 음악처럼 사랑하리이까. 그대는 고개를 들어 나를 가리키리다. '너는 네가 말한 모든 것을 어김없이 행할 테냐! 너도 결코 그럴 수 없으리라. 우리 중 누구도!' 다른 이들을 가리키는 사람의 말랑함, 그대를 헤아리니이다. 하여 지금 말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던가, 경멸하여야 한다고. 다른 누구도 아니라 그대 자신이 경멸해야 한다고. 

 

*

 

허나 누가 있어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걸음을 떼듯이 비틀대며 익힐 것이요, 노래 부르는 듯이 기쁨으로 행할 수 있을 텐가.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경멸, 그에 뒤따르게 되는 수치와 열패감과 그에 대한 대결의지가 아니고서는! 누가 있어 자신을 온통 사랑하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에 대한 경멸을 찾을 것이고, 당장 자신에게 가려 있어 느끼지도 보이지도 않는 미지의 경멸스러움을 조심할 텐가. 자신을 의심하고, 자신의 경멸스러움을 마땅히 경멸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누가 있어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 자신의 부조리를 열렬히 모색할 텐가. 경멸한다, 일찍이 이 모든 기막힌 것들을 저절로 알아보지 못하게 태어난, 심안에 장막과 두건을 두른 나와 나의 인간들을. 그러나 나는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누구이냐, 그대 중 적당한 선량함을 자처하는 사람 가운데, 그대가 사랑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 긍휼하고 초라한 자에 대해서도 동등한 기준과 잣대를 스스로 들이밀 자가. 자신의 모순과 부조리를 경멸하는 자가 아니고 누가 그리할 수 있었겠느냐. 누구이냐, 그대 중 적당한 선량함을 자처하는 사람 가운데, 자신의 느낌이 아니라 사실로, 긍정이 아니라 부정으로 자신을 변호할 사람이. 누구이냐, 적당한 사람 가운데 자신의 훌륭함을 칭송하고 드높이려는 딱 그만큼만 자신이 저지른 패악을 죽이고 경멸하려 드는 신실한 자가. 오직 스스로 경멸하는 사람만이 그러하고, 그런 이를 나는 사랑한다. 

 

누구이냐, 자신의 옳고 그름이라는 모호함의 문제에 있어, 다른 사람이라는 배심원의 승인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의 변호만으로 그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애쓰는 이가. 누군가 그대를 사랑한다 하여 그대가 옳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닐지나, 사람은 약하여 타자에 너무 의존하더이다. 다른 이의 사랑이란 그대의 사랑스러움 중 일부만을 가리킬 수 있었을 뿐이나, 그대는 그만으로 자신을 긍정하려 들더이다. '자신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여,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내 마땅한 경멸을 받을 저기 바깥의 사람처럼 비루하지 않았다. 보라, 여기 이토록 많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긍정하고 존중하여 있노라.' 떨면서 말하되, 떠는 만큼 당차게 말하더이다. 그저 그대 자신의 경멸스러움과 버려짐을 지극히 두려워하는 것에 불과함이건마는… 나는 스스로 경멸하지 않는, 도망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보라, 말에 명쾌함과 지나침이 있어 심히 유감스러울지언정, 몹시 그대 언짢으실지언정 진실하게 말한다. 나약한 우리에게 경멸이, 우리가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할 경멸이 되돌아오리요, 세계의 법칙을 따라 경멸하는 그 사람에게 경멸이 되돌아지리라. 마음에 티끌만 한 경멸이 없는 자만이 순결한 돌을 던지리라만, 그에게 참으로 경멸이 없는 한 그대가 돌을 던지지 않으시리야. 이 낱말 앞에 있으실 나에 대한 그대의 경멸이 타당하며 인간적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경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되 종용함이 아니라, 진실로 그것을 모두 태워버리기를, 전부 다 태워버릴 수 있기를 바라왔다. 이런 나의 경멸은 그대에 대한 나의 사랑이 아니인가. 그대가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직관적이지 않은, 아주 먼 곳으로부터 불어 드는 사랑이 아닌가.  


오직 이 모든 자연한 것들을 가슴의 침묵 안에 감추고 신중함 속에 벼려온, 지혜로운 사람만이 나와 세계의 경멸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계시리나, 내게 찔리어 아프실 여느 그대는 차라리 내 말이 아닌 몸을, 사상이 아닌 자격을 무너뜨리시리니. 타당하고 지당하신 복수심과 불같은 적의, 경멸,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 나와 같은 인간에게 경멸이 자연하다. 허나 나에 대한 그대의 경멸이란 나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태어나는 것, 그대는 무엇으로 고통하는가. 그대 왜 나의 한갓 말을 고통하는가, 나는 인간의 영혼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아되 보지 못하는 것, 너무도 허약함을 생각한다. 


그대의 가슴과 영혼으로부터 나에 대한 미약한 반감이 차오르리니 그것이 바로 우리 가슴 안에 도사리고 감추어진 바 깊은 곳의 경멸이 아니인가. 심지어 나에 대한 역겨움, 혐오감, 구토감, 혹은 적의를 느끼실 이 있으리니 그건 곧 대로 경멸이 아니인가. 그런 그대 여전한 어느 대낮에, 사랑하는 이를 향하여 한없는 미소를 주시리요 사랑하는 이로 하여금 미소케 하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그대 어지신 가슴에 허나, 이렇듯 사랑과 경멸이 동시에 존재치 아니 한가. 자신의 안에 소름 끼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직 아지 못하는 사람과 곁눈으로 보아 어렴풋이는 아되 대면하지 않은 어느 사람은 말씀하실지니, 자신은 오직 경멸할 만한 것을 경멸한다 하실 테다. 아, 그대는 자신의 경멸을 두둔하시리다, 아직 그대 자신의 경멸을 긍정하실 테다. 그러나 그대의 영혼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을지니… 

 

*


어떤 그대는 내게 말하였으니, 자신의 경멸스러움과 비루한 민낯을 받아들이고 뛰어넘음으로써 독렬히 사랑스러워지리라는, 어렵고도 무모한 각오를 할 바에 자신의 세계에서 경멸을 구축하려 들 테다. 경멸이란 지독한 심연과도 같아, 아니 그 심연에서 태어난 것의 하나이라 들여다보는 만큼 가까이 물들어버리기도 하는 것. 전염 강한 경멸을 기억하시어 그대의 실존은 두려움으로 벌어지려 할 테나, 그대가 자신의 세계 안에서 구축한 것이 또한 세계로 되돌아 나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대는 경멸을 밀치는 만큼 나를 밀치리라. 그대 말하심이 이 같았으니, '가슴 안에 차오르는 경멸을 뿌리뽑고 오직 사랑만을 위하리라, 하여 무분별한 경멸의 토사 吐瀉를 흩뿌리는 사람에게 옳게 된 경멸을 주리요, 사랑하는 자, 사랑을 애쓰는 자를 오직 위할지다. 비록 내 선언이 나를 위태롭게 할 것이며, 뱉어진 말을 지켜나가야만 하는 사람의 고난함이 벌써 있을지라도 나는 포기치 아니하리다.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오직 중한 것이 아니었던가?' 


믿음이라, 나는 믿음을 믿지 않아. 정확히는 시험되지 않은 믿음을 믿지 않아. 그때, 사랑스러운 것들은 정해져 있으며, 마찬가지로 경멸스러운 것들도 정해져 있노라 그대 말 속에 말하시더이다. 그 둘은 서로 완전히 별개의 것이며, 그러므로 경멸을 파괴하는 행위는 사랑과 무관하고, 심지어 그 사랑의 위격을 더욱 옳게 하심이라 말 속에 말하시더이다. 자신은 경멸을 경멸하고 오직 사랑하겠다 하시었으되, 그 앞에 선 나를 경멸하심에 한 치 의심치 않으시더이다. 그대는 1년도 가지 못할 말을 하시되, 이미 실패할 것으로 정해진 말에 있어 뒤따르는 패배의 굴욕감을 아파하시고, 어렵사리 그를 받아들이실 바에는 그를 찌름으로써 일깨운 나를 더욱 경멸하시더이다. 이런 내가 그대의 옳게 된 경멸인가. 


경멸할 만한 것들에 대한 경멸, 대저 옳게 된 경멸이란 무엇 우스운 낱말이란 말이냐. 또한 무엇으로 그대가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다는 말이냐. 자기 자신에게 온통 휩쓸리는 우리, 모든 인간들아. 나는 느낌과 기분, 감정을 이해할 뿐 곧바로 믿지 않아. 그대의 의지가 그대 안의 나태와 실패마저 끌어안고, 그대의 사랑이 경멸과 대등해지며, 그대의 믿음이 그대의 의심과 동등해지는 때까지, 어떻게 우리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겠음이야. 나는 대안 혹은 정답이 아니라, 그저 집요한 질문이다. 많은 그대들은 경멸을 구축하시는 사랑의 수호자를 자처하시고 나는 언제나 그대의 질문, 수치와 반감과 오기, 그러므로 손쉬운 대적자였다. 

 

보라, 지금도 나는 누구나 경멸할 만한 사람, 경멸하여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움받지 않을 만한 우스운 인간, 경멸의 화신이다. 그대 못내 두려움으로, 허나 실은 그 앞의 나를 대함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자아로부터 생겨나는 두려움으로 망설이시더라. 그대 경멸하시되, 못내 하시더라. 그대는 경멸하시면서도 자신의 경멸을 다 아지 못 하시더라. 그런 그대, 모든 인간들아, 도대체 무엇으로 그 왕관을 지어 스스로 쓰일 것이야. 자신에 대한 경멸이라는 시험을 거치지 않고서, 마치 단 한 줄의 시를 지어 놓곤 시인이라는 수식언, 그 동경하던 것을 자신에게 주려 하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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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지를 이해하고 의지에 대한 자기 믿음을 존중하려 애쓰나, 그대로 믿지 아니한다. 의지란 그 자체로 너무도 연약한 것이라 부지불식 간에 자신으로부터 왜곡되는 것, 자신의 감각에 의해 쉬이 침식되는 것, 또한 몰래 포기되고 유기되어 버리는 것이기도 하였지. 나는 두려움에서 피어난 감정과 그에 뿌리 댄 사상을 곧바로 믿지 아니한다. 하여 경멸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태어난 사랑을 곧바로 믿지 아니한다. 허나 의심이란, 패배와 굴종을 종용함이 아니라 진실한 것을 피워내기 위한 질문이어야 하는 것. 그렇지 않은 것은 의심이 아니라 나약한 불신이자 적의이다. 그 앞에 비뚤어진 승리감을 원하는 자의 의심이 있다면 스스로에게나 열심으로 행하라 하라. 의심을 기만하는 적의, 그러나 그것을 부지불식 간 행하며 멈추지 못하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쉽사리 행하지 못하시리라. 모순 속에 말라갈, 그런 자에게 또 경멸을. 

 

*

 

진실로 믿는 것, 시험을 넘어선 믿음에는 어떤 질문과 의심도 부차적인 것이라. 그대의 믿음에 대한 나의 의심과 질문이 그러하리고, 나의 것으로도 마찬가지 그러하다. 퍽 오래도록은 내 안에 차오르는 믿음과 그 파괴를 거듭하며, 스스로 물어 왔다. 내가 말한 것과 그 전에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자기 자신을 뛰어넘은 것들이냐, 의심과 경멸을 거치고서도 끝내 살아남은 것이냐. 그리고 그에 화답해 가슴 속에 차오르는 믿음을 영영 의심하고, 그런 내가 그대를 믿지 아니한다. 자신의 말을 쉬이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을 곧바로 믿을 수 없음이니, 그럼에도 믿으려 애쓰는 사람은 실은 두려워함이다.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음이고,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조금도 경멸치 아니할 수 없음이다. 나는 나를 대함으로써 그대들을 대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집요함에 말미암을 참 경멸스러움이요, 내가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오독이자 집착이 아니었던가. 그런 나에게 역설적으로 더욱 경멸이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그대야. 그대가 내 이 말에 바투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시겠는가. 허나 내게 그러한 것이 그대에게도 그러하리라. 


나는 그저, 사랑이실 그대에 대한 의심, 실은 질문이자 반 反, 변증의 한 축일 뿐. 그대의 의지와 믿음이 그대 안에 올곧이 서게 될 때, 말은 그대의 세계 바깥에 있을 어느 누구로부터 자유하리다. 나의 질문, 의심, 모서리를 깎은 경멸은 그대의 믿음을 굳지우고 더욱 피어날 그 믿음 끝에 그대 자신을 더욱 의지하게 하는 바, 그대를 더욱 사랑스럽게 하려 함이 아니인가. 그런즉 나의 의심과 모서리를 깎은 경멸이 그대에 대한 내 사랑이 아니인가. 그대는 의심 앞에 불안할 제, 동시에 의심 없이 세워진 신념 그 강렬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헤아리시는가. 타자로부터 단순히 독립해버린 믿음, 자기라는 세계 속에 홀로 믿어지는 충만한 믿음이 인간 가운데에 많더마는, 그 충만함이 의심으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시금 경멸스러운 것이다. 


익히 아시리, 그에게도 경멸이, 나의 것일 필요조차 없어라, 세계의 경멸이 되돌아가리라. 허나 그 강렬함이야말로 두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 스스로 조금도 느끼지 못하여 두려운 것이요, 그 스스로 조금도 느끼지 못함에도 불구 그 운명이 대신하여 두려워 떨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 홀로 충만하여 신실한 자에게 다다른 경멸이란, 자신의 올바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깥의 것이요, 올바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바깥의 것이요, 정히 귀기울여 들어야 할 필요가 없는, 어리석은 세계의 것이다. 고독 속에 죽어갈, 그런 자에게 또 경멸을. 허나 그대라면 어딘가 기시감을 느끼지 않으시겠는가. 그건 바로 나의 것이었다. 나에게 경멸이 필요했다. 나의 경멸은 내게 행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사랑. 


내 말이 보이시는가. 명쾌하고 거침없으며 자유하게 가리키되, 크나큰 두려움에 떠는 나의 말이. 강렬한 믿음이 감도되, 동시에 강렬한 의심과 불안으로 옥죄인 나의 말이. 거듭 때리며 나아가는, 쟁기를 인 소와 같은 나의 말이. 질문과 의심에 쉬이 흔들리실 그대야, 우리는 아직 자기자신을 세우지 못하였으나 그것은 어쩜 당연함이요, 의심을 거치지 않았기에 아파할지라. 나는 그대가 아파할 제 오히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대 아픔을 보지 않으려 두건 두르지 않았음이요,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끔 가리는 철벽 鐵壁을 세우지 않았음이며, 그대와 닮은 타인에게로, 안락한 가시검불로 도피하지 않았음이다. 나는 우리에게 아프고도 진실한 말을 하였으되 아파함에 아무렇지 않은 것 아니이나, 오히려 아파하는 것을 기뻐함이요 아파하지 않을 제 심히 우려한다. 그건 나와 그대를 믿기 때문, 나는 우리가 이런 한갓 말 앞에 무너져 일어나지 못하리라 생각지 아니한다. 그대 지금의 믿으심은 오히려 의심을 넘어서만이 더욱 오래지리라. 그대의 믿으심은 겨우 이 따위 사람 하나를 넘어 더욱 장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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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여 나는 인간을 사랑하기에 경멸한다. 다른 인간을 원하고 사랑하였으나 어느 하나 빠짐없이 옳게만, 누구 하나 빠짐없이 널리 사랑할 수는 없도록 태어난 인간의, 짤막한 존재를 경멸하고 무엇보다도, 그런 자신을 사랑하게끔 만들어진 인간 본성을 경멸한다. 그러나 이것이 은연중 자타를 구분 지은 채로 행해진바 더욱 경멸스러운 오독이자 위악이 아니며, 오직 누구나 공평히 사랑스러워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아픔이자 질문이라는 사실을 그대에게 알릴 수 있겠는가. 내게 먼저 행한 이 모든 것이 적의가 아닌 마침내 사랑이라는 것을 그대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조심스러운 언어로 빚어 에둘러 가는 것 말고는 그대에게 닿을 방법이나 있었겠는가. 나는 몰락해야 한다. 내가 뱉은 말들을 모조리 쥐고서, 되돌아 감당할 수 없이 몰아치는 경멸의 해일 속으로 익사해야만 한다, 뱉어진 말 앞에서,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리다. 


보라, 내 그대에게 일컬은 바로 그 경멸스러운 사람이 아니인가. 이것이 오랜 자기경멸과 침묵 속에서 빚어낸 그나마의 것들이라면, 경멸 없이 태어난 내가 그 어떠했을지를 짐작하시겠는가. 그대에게 비밀이길 원하는 것들을 나는 말한다, 나는 명백히 경멸스러운 인간이었으며, 하여 세계로부터 경멸이 쏟아졌다. 경멸의 세례를 온몸으로 입었고 내 영혼에 아주 길이 남았다. 그대는 내가 받고 또 받게 될 모든 경멸이 당연하고 마땅한 것이라고 말하시었으며, 나 또한 그리 생각해왔다. 너무도 많은 경멸이 내 영혼을 관통하여 지나갔고, 어느 하나 버리고 오지 않았다. 그 안에서, 오직 그 뜨거움 안에서만 느끼온 것들을 나는 말하는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만 존재한 채 아직 태어나지 못한, 이 글의 마지막 편에 이르러 경멸이 주는 시험을 모두 풀었고, 더는 경멸을 행하는 자신으로부터 아무런 시험도 질문도 떠오지 않는다. 허나 그것은 내가 몹시 사랑스러워진 까닭이 아니라, 그저 경멸을 이해하였음만을 가리키고 메마르게 드러낸다. '아 경멸, 지독했던, 그러나 얼마나 나를 사랑스럽게 하려고.' 내 경멸이 가리키는 것은 곧잘 그대가 아니라 가장 먼저 나였음이고, 이제야 나는 기쁨으로 그대에게 알리리. 


참으로 길었던 의심이 끝났다. 여전히 나는 그대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되, 더는 그 사랑만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에 이르러 만약 그대가 나를 그저 위안하고 사랑하려 한다면, 그건 내게 이르러 바라던 그 사랑이 아니리다. 그대가 나를 경멸하되, 오직 나만을 경멸한다면 그건 내게 이르러 기쁨이 아니리다. 그대 나의 경멸할 만한 것들에 마땅히 경멸하시되 그 경멸의 잣대를 자기 자신에게도 공평히 행할 수 있다면, 하여 말끝에 신중한 침묵이 놓일 때 그 비어버린 언어의 행간이 바로 내가 찾던 사랑의 실마리이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시되 옳게 경멸할 수 있어, 내 그대를 전신으로 믿고 위할 수 있게 되는 것, 의탁하고 드디어 허물어 쉴 수 있게 하심이 내가 바라던 사랑이요 기쁨이다. 

 

내가 더는 의심치 않도록, 말해지지 않고 삼키어진 것들과 은연중 가려지는 인간의 비밀들에 골몰하지 않도록, 오직 옳게 경멸하심이 나를 처음으로 쉬게 하리다. 퍼지르고 멈추어 다시금 경멸스러운 자신에게로 되돌아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더 오래질 사랑을 위해 경멸하실 그대를 사랑한다. 오직 기나길 사랑을 위하여 옳게 경멸하시고,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필요한 경멸을 행하시는 그대. 그리고 이 모든 사랑의 모순을 거꾸로 그대에게 행함에 있어 이해하시매 간신히, 그리고 온유히 미소하실 그대를 사랑한다. 내게 크나큰 사랑과 두려움일, 내 스스로 경멸에는 불이요 바람이실 그대를 사랑한다. 


보라, 나의 경멸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니인가. 이 구절에서 오직 두려워함직하며 의심할 만한 것은, 이 문장과 사상이 오독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 놓여있다. 이 사람의 오만이 얼만 한 의심과 경멸 속에 두드려졌는가, 하여 믿음직하지는 못할지언정 들어봄직한가 아니면 그저 충천하는 자기애에 취하여 자신을 두둔하는, 참으로 경멸스러운 것인가 하는 단순 가부의 문제이다. 나는 그것을 곧바로 드러내 보일 수가 없으니, 차라리 내가 살아온 경멸의 세계를 그대에게 펼치리. 경멸스럽던 나와 그런 나를 경멸하시던 그대들과 도처에 경멸스러운 인간들의 세계를. 아, 내 가슴에 사랑과 경멸이 넘친다.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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