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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사랑스럽지 않은 나의 사람들아, 우리, 겪었던 각자만의 우울을 펼치어 만찬 하자. 슬픔만을 노래하자, 그러나 그 끝은 반드시 찬란하게 끝맺어야 해. 모든 음악들이 그러했듯이. 그대들, 깊은 곳에 자리한 비애를 꺼내어 포틀럭을 준비하라, 그러나 각자의 서사는 끝에 이르러 반드시 찬란하게 맺어야 해. 슬픔이 슬픔으로만, 우울이 우울로만 끝맺어서야 우리들의 만찬은 고대할 만한 것이 될 수 없기에. 끝내 자랑스러운 것이 될 수 없기에. 그러니 우리는 슬픔을 토하고 또 토하며, 마침내 그것을 향기로운 비애로 성숙하는 지혜와 한가지 사실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뒤바꾸어 버릴 줄 아는 역설을 준비해나갈 것이다. 자, 이제 사랑스럽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결과와 현재가 어땠든, 그대, 우리는 사랑스러우라. 과격한 사상을 시작한다.


 - 무애 無碍 14

 

 

밑바닥을 구르는 자와 방구석에 웅크린 자, 은둔자들. 요즘 그대들을 연구해. 그대들은 기억으로서 언제나 내 안에 있었지만, 바람을 몸으로 느끼는 것과 글로 표현해내는 것 사이에는 또다시 아득한 간격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대들을 연구한다. 그건 나의 과거를 보는 것과 같아서, 한없이 애틋한 눈빛을 자아낸다. 아 한없이 초라하고 비참하며 비루하고 딱한 나의, 나만의 사랑스러운 것들. 그대들은 내 과거이고 나 자신이다. 허나 내가 어떻게 그대들을 바깥의 것으로서 사랑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사상적 운용 없이 그저 느낌으로써 곧잘 사랑하게 되는, 감각과 체험으로서의 사랑, 바깥으로부터 날아와 그대의 영혼에 떨어지는 그것으로? 그건 아름답고 상냥하며 빼어난 다정함을 훈련해낸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어떻게 그대들을 즉물적인 것으로서 사랑할 수 있겠는가. 감각적으로 사랑스럽지 않고 경험적으로는 불쾌함에 가까울 어느 그대들을? 나는 그런 식으로 나를 사랑한 적이 없어, 그대에게 돌려줄 수도 없다. 아무리 그대에게 필요한 것인들, 나는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을 줄 수 없으며 우리는 자기자신을 대하는 방식으로부터 타인을 대하는 방식을 해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그대를 사랑하겠는가, 그대가 나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우리가 마음껏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며, 그렇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백백히 사랑스럽지 않은 것들아. 자기자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주 높고 뜨겁고 끝없이 정열적인 우리의 자아로부터 스스로 승인받고 사랑받으며, 그렇게 차차 사랑스러워지기 전까지는.


나는 감미로움으로써 그대를 사랑하지 않아. 나의 그대, 다만 비루한 그대는 나 자신이고 내가 경멸해온 나 자신, 뛰어넘은 과거로서의 나 자신이다. 그리고 뛰어넘은 비로소 인간은 자신이 내내 경멸해온 모든 것들과 진실히 화해한다. '아 경멸, 지독했던, 그러나 실은 이토록 나를 사랑스럽게 해주려고!' 결과를 통해 반전되는 해석으로서의 과정, 삶, 그리고 그에 덮어 쓰이는 의미의 역설. 내가 그대에게 주고 싶은 것은 오직 이뿐이야. 그대의 고단함이 끝에 이르러 정반대의 것이 되고, 고독이 그러하고, 경멸이 그러하고, 공황과 불안이 그러하고, 눈물과 고통이 그러한 것, 역설이 되는 일. 그러한 체험과 의미를 소유하는 것, 하여 없애려면 그 기억을 모조리 드러내야 하고, 앎을 모조리 부정해야 하고, 그대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불가한 것, 그만큼 단단한 것이 되는 일. 그 모든 것이 없고서야 결코 가져볼 수 없을, 소박하고 무궁한 행복. 그 끝에 닿기 전까지 조금도 경험하지도 고로 생각해볼 수조차 없던 것이, 다다라 한꺼번에 거꾸로 쏟아지는 때의 것, 햇살같이 끈질긴 것, 태양을 가릴 수 없고 바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제멋대로 가슴을 넘나드는 자유한 사람의 행복, 무애. 얼마나 어렵고도 별것 아닌 것이겠어.


하여 나는 당장의 그대에게 경멸스러운 모습과 경멸의 감정이 끓어 넘치는 것을 그대보다 빨리 안도한다, 내가 나의 경멸을 지금 안도하듯이. 하여 그대가 진실히 그로 인한 고통 속에 있을 때 그대보다 먼저 안도한다, 내가 나의 경멸로부터, 오직 그 안으로부터 걸어나와 지금 길이 자유하듯이. 그대는 반드시 사랑스러워지겠구나, 그래야만 하겠다. 경멸스러운 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 오직 이뿐이라. 답은 정해져 있고 중요한 것은 오직 방법뿐. 나는 개개인에게 걸맞을 각자만의 방법마저 한 실에 꿰어 논할 수 없겠으나, 그러므로 이미 우리에게 정해진 답만을 오직 말한다. 방법, 자신을 뛰어넘는 각자의 방법 그것은 오직 고유함이어야 하며, 누구도 그것을 빼앗아선 안 되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그대만의 위대함의 여로에 참견할 것이며, 후에 그 몫을 주장할 것인가. 그건 오직 그대가 손수 만든 것이어야 하고, 그러므로 그대의 자아가 온전히 독차지할, 자신만의 것이어야 한다. 훗날, 어렵사리 피어난 그것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받을 믿음과 사랑의 증표가 되어줄 것이고, 어렵게 트고 흔들린 그만큼만 굳건할 뿌리 되어줄 것이다. 참 머나먼 이야기가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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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으로 그대를 생각하지 않고 그를 느낌으로써 그대를 사랑이라 여기지 않는다. 오직 그것만이 사랑은 아니이라 내 친구여. 그것이야말로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것, 느낌의 사랑이나 그것을 사랑의 전부라 여기기엔 세계가 너무 서글프다. 의지와 선택 없이, 본질로서 인간은 비루함에 한없이 가까이 태어났나니 도처에 경멸할 만한 것들이 넘쳐나고 있다. 적고 많은 것으로서, 제각의 크기로 흐르는 물방울처럼 아우성대고 있다. 허나 나는 그대들을 소리 지르지 않고 소름끼치다는 듯이 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연히 바라보지 않고, 차라리 진실한 마음으로 경멸할지언정 조금도 혐오하지 않니다. 혐오는 사실 닮음을 조금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거나 조금도 느껴보지 못한 것에 대함, 완벽한 타자에 대함. 그대와 내가 밀접한 이상 공평하고 투명하게, 또는 차라리 약간의 인내와 반가움으로 미소 지으리라. 허나 어디까지나, 그대의 운명에서 내 가늠해볼 조금의 실마리라도 있다면 말이지.


너무도 사랑스러운 사람을 바라보는 듯이, 한없이 열린 눈동자와 갈구하는 손길로 나와 그대를 바랄 수가 없다. 저절로 느껴지지 않는 것을 애쓸 수는 없다.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누구나 사랑 속에 피어날 꽃이나, 그것은 바다가 구름이 되어 먼 비로 떨어지는 것처럼, 그대와 상관없이 멀리서도 끊임없는 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대를 위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이 그러하듯이 그대와 무관히 그리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시궁에 고여있던 만큼 씻기일 물이 많고, 경멸과 혐오의 경계 심연 속에서 혼돈했던 만큼 씻기일 독이 많다. 고독만큼의 바람과 공황만큼의 구름, 불안만큼의 햇볕과 두려움만큼의 빗물이, 우리가 처한 지하로부터 피어나는 데 필요한 것이 더욱 아득하여 많다. 누구나 사랑 속에 피어날 꽃이나 그대에게 더 많이 필요하기에, 더욱 우직하고 단단한 것을 주어야만 해. 피어날 만큼 꾸준할 사랑은 몇 가지 장면의 이야기만으로는, 몇 명의 인간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니이라.


그러니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한 줌의 사랑이나 용기와 위안이 아니라, 사랑의 기아들, 오늘 먹일 동정과 구휼의 빵이 아니라 경작할 대지이며 그를 위해 미리 마음에 밭을 갈아주는 것이다. 더는 나도, 그대가 한때 열렬히 사랑하였으나 결코 닿지 못한 사람도, 그대의 영혼이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았으나 외로움이 그대 곁에 묶어둔 서로 고독한 그 사람도, 그대를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으나 차마 멀어지지도 않은 채 가까이서 아득히 있던 그 사람도, 그대에게 가끔씩 연민을 감춘 속 깊은 다정함을 건네는 그 사랑스러운 사람도, 너무나 동경할 만하여 숭배감을 사다간 어떤 지독한 밤에 느닷 질투와 비탄이 되던 그 사랑스러운 사람도, 그대가 조금도 느끼어 공감할 수 없는 긍정을 예찬하며 그대를 무력히 북돋아 주던 그 사랑스러운 사람도, 시궁에 닿을라 고고히 있어 자연스레 밑에 있는 그대를 내려다보게 되어 있던 그 사랑스러운 사람도 아니요, 더욱이 그대에게 아무런 조심도 없이 경멸을 흘리며 심장에 치덕이던 그 사람도, 더 낮게 내리깔리거라 그대를 뭉개 대는 비정하던 그 사람, 그 외 각종 인간의 비루함을 실험하던 경멸스러운 인간 그 누구도 아니라, 오직 그대가 사랑을 수확해 스스로 먹이라.

 

그들 중 누군가 한때의 사랑을 줄 수 있겠으나 누구도 그대에게 사랑을 알려줄 수 없고, 우연히 사랑할 수 있으나 꾸준히 할 수 없으며, 그대에게 자신의 사랑을 알려줄 수 있으나, 그대의 사랑을 대신하여 말해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그대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인, 막대한 양분의 사랑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하고, 그 사람이 그대에게 꾸준히 줄 수 있겠어. 자기 혼자 묵묵히 씨 뿌리고 홀로 수확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대를 영영 사랑할 수 있는 이, 그대의 사랑스러움과 무관하게 지지하고 응원하는 그대 자신뿐이니. 한 아름 뽑아든 수박을 짜개어 마침내 빨간 속을 파먹자. 혹서의 한가운데, 여름 아지랑이 홀로 오두막에서 수확한 네 사랑을 네 홀로 먹자. 그러곤 빨개진 입으로 싱거이 웃어야지, 그때 바람이 불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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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그대 가슴에 밭고랑을 갈 것이라. 대지에 쇠스랑의 흔적과 상처를 내는 것은, 결국 씨앗을 심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농부는 그 고된 일을 행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땀 흘리지 않을 것이라. 나는 경멸과 고통을 알려줄 것이다. 쉽게 흔들어 무너질 것이어서도 아니, 누군가 쉽게 뺏들어가갈 만큼 연약한 것이어서도 아니, 도로 가져갈 수 있는 남의 것도 아니, 그대만의 사랑. 우리는 더 뒤에서 가는 만큼 멀리, 더 밑에서 오르는 만큼 높이, 하여 오직 끝없을 듯이 꾸준히 가야만 한다. 그대에게 그런 사랑을 알려주기 위해 경멸을 알려주리라. 경멸할 만한 것들에게, 모서리를 깎은 애틋하고도 절절한 경멸을 주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이다. 스스로 경멸할 만하나 그를 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의 눈을 열어 경멸을 보이는 것과 경멸할 만하나 그를 직면하기 어려워 언제나 도망쳐온 사람의 발을 묶어 경멸을 마주하게 하는 것, 아픔으로만 갈 수 있고 그처럼 뜨거운 것으로만 갈 수 있는 사랑이 그대와 나의 사랑이다. 생명이 세계를 터득하여 스스로 알아볼 수 있던 것과 달리, 우리는 자신을, 더 정확하게는 자신의 경멸을 알아볼 줄 모르기에 쉬이 사랑스러워질 수 없었다. 우리가 안고 태어난 장막을 두 눈에서 거두어, 고통 속에 뜨겁게 소리치며 태워버릴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가 참되게 사랑스러워 나갈 수 있도록은 그보다 먼저 서글픈 고통을 주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사랑이다.


경멸스러운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경멸을, 사랑스럽지 않은 자에게 주어져야 할 발칙한 사실들을 전부 빼앗아버려선 안 돼. 그 사람이 진실로 사랑스러워지는 데 필요한 모든 아픔들을 빼앗아버려선 안 돼. 다정함으로 그것을 대신하여 제거해버려서 안 되고, 먼저 아는 사람의 망설임으로 그것을 모조리 숨기려 들어선 안 돼. 준비되지 않은 사람, 다정한 경멸을 아직에 줄 수 없어 가슴으로 아파하는 사람 그대의 상냥함은, 오직 그대만의 것이어야 한다. 그대가 그대 자신을 넘어 다른 이의 경멸과 무관심마저 이겨내고 죽여 내려 하는 것을 나는 거부하니이다. 그건 정말로 경멸스러운 인간의 시대 앞에 부는 전조이다. 나는 이 위험한 사상을 대하여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으나, 내 몸을 대가로 말한다. 내게 경멸이 없었더라면 나는 가장 위험한 동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차차 이야기해보자고, 불쾌할 정도로 나는 솔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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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통과 연민으로 그대를 생각하고, 그대보다 그대를 옳게 경멸하되, 미리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그대보다 먼저, 그대보다 담대히 우리의 운명을 믿는다. 그것은 내가 나의 과거를 대하는 방식. 그대는 나이고, 나의 과거이다. 그대 나보다 아실 것이 많겠으나, 나는 그대보다 경멸을 안다. 아직 우리의 운명에 위대함은 없을 것이나, 그것을 위한 모든 재료가 그 안에 넘쳐나고 있다, 경멸.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바깥을 향해 쏘아나가려는 유약한 경멸을 자신에게로 돌려대는 것뿐.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지금이 아니라 그대의 미래이고, 영영 오지 않을 미래이고, 그대의 사실이 아니라 그대의 운명이다. 선택하는 자기자신, 키와 방향, 풍랑 위에 펼쳐놓은 그대의 몸을 사랑한다. 경멸의 항로에 있어서는 일등 항해사이고, 경멸의 사막 가운데에서는 오래된 낙타일 나는, 그대의 신실한 자기경멸이 인도해줄 운명을 가늠하리다.


자기경멸, 그건 우리의 것이라,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아, 소스라쳐 아파하지 말지라. 내 말 함이 그대를 가리키지 않고, 내 말 함이 그대가 대속하는 사람에게 이르러 아픔이 아니이다. 경멸스럽고 경멸 행하는 자에게 그 경멸을 거꾸로 대라는 말이 어렵고 무모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경멸 없는 깨끗한 사람 그대의 마음속으로 경멸을 주입해, 장차 무한히 태어나고 솟고 피어날 자기경멸의 불꽃을 잉태시키는 것.


한 인간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세계는, 자신이 몸소 경험하여 받아들인 세계. 경험한 것 가운데에서도 선택하여 받아들였거나 자연히 스며들어버린 것들로 이루어지는 자기만의 세계이다. 한 인간이 바라보고 있노라 여기는 실재의 세계란 사실 그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와 재구축된 것인 심상으로서의 세계이다. 하니 경멸을 모르고 또 행하지도 않는 자에게 경멸을 알려줄 수는 없어라. 마찬가지 그대가 살아온 상냥함의 세계를 내가 대신하여 말할 수도 없어라. 나는 내 심상 속에 자라난 것, 지독한 경멸의 세계를 그대들에게도 옳게 알리었으면. 하여 경멸을 속들이 이해하는 자에게 평안이요, 경멸을 복되이도 아지 못하는 자에게 지혜였으면. 이것이 나의 가장 뜨거운 사랑이다. 하나 내 사랑이 그대에 곧바로 이르러 사랑되지는 않을 것이야. 지금 내 안에서 느껴지는, 완결된 것으로서의 주관적인 느낌이 그대에게는 아직 미지요 먼 바깥의 것일 터이니.

 

그래 경멸을 통한 사랑스러움이란, 여전히 어려움이고 무모함이다. 그것은 어려운 만큼 그에 상응하는 불가피함과 절실함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고, 유지되지 않아 깨지고 멈춰버릴 제 더욱 아파지는 신념. 그러므로 가슴 안에 경멸 없는 사람에게 경멸을 밀어 넣고 알려주려는 것은 불가하며 불필요하다. 사랑스러운 사람, 이미 사랑받고 있는 그대들은 이 글 밖으로 밀어둔 까닭.


나의 과격한 사상, 파격적인 사랑의 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경멸, 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아주 기나긴 침묵 속에 있어야만 했다. 경멸이 내포하는 파괴력과 발산하는 힘을 더욱 커다란 경멸로 다스리고 그가 숨기고 있는 발톱을 모조리 드러내 뽑아내 버리기 위해, 무해한 경멸을 위해서 나는 고독하였고, 경멸을 거세하지 않은 채로 옳게 된 것으로 바꾸기 위해 나는 경멸의 한 가운데를 뚫고 나아왔다. 보기에 어떠신가. 여전히 불길해 보일런지 어떨는지 모르겠으나, 내겐 퍽 좋이 보인다오. 터져 나올 용암처럼 부글거리나 끝내 넘치지 않고, 웅크린 짐승처럼 위험한 힘이 서려 있으나 끝내 뛰쳐 오르지 않는, 나의 길들여진 힘. 개처럼 목놓아 우지르려나, 새처럼 빗장에 머리를 부닥뜨리려나, 나는 스스로 길들여지고 구속된 짐승이고 울타리 밖을 그리워 우지 않는 가축화된 짐승이라오. 그대가 이를 옳게 알아보아 내심 불안해하고 내가 자랑스레 여기는 이 힘, 나는 그것을 혼돈이라 부른다. 광기와 냉정 사이에서, 경멸과 고통 너머로, 멀고 먼 사랑으로 가자. 광기에 품긴 정열과 냉정이 주는 지혜를 모두 잡고, 혼돈처럼 가자. 내 비록 너무 커다란 것을 바라 필연히 실패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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