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친근하고 생생한 북극 - 북극을 꿈꾸다

북극의 고유하고 사적인 이야기
글 입력 2024.03.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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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배리 로페즈는 땅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정체성 등의 문제를 담은 픽션, 논픽션 작품을 여럿 발표해 왔다. 그중 특히나 1978년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한 <늑대와 인간에 관하여>는 미국도서상 후보에 올랐고 역시 오랜 현장 조사를 거쳐서 쓴 <북극을 꿈꾸다>를 통해 결국 미국도서상을 수상한다.


특히나 이 책에서 돋보이는 건, 북극에 대한 구체적인 일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상상력이다. 생각하기에 북극이라 하면, 녹아내리는 빙하, 떠내려가는 빙하 조각 위의 앉은 북극곰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기후 위기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이전에는 삭막하고 척박한 땅으로 여겨졌던 것을 보면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북극은 거리감 있고 낯선 지역이었다. 북극에 대한 선입견을 벗고 이해하려면 북극의 생물학적 특성, 낮과 밤, 동식물, 사람들을 살펴야 한다. 북극에 대해 알아가면서 우리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책은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큰 곰의 땅 아르크티코스: 우아하고 세련된 이상한 움직임들

2. 사향소: 평온하게 강인하게

3. 북극곰: 통찰하는 방랑자

4. 일각고래: 해석 불가능한 코드

5. 대이동: 숨결이 길이 될 때

6. 얼음의 빛: 공포의 미

7. 땅: 마음을 감싸는 땅, 땅을 감싸는 마음

8. 항로: 열정과 탐욕이 얽힌 순수한 욕망

9. 역사: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


각 챕터에서는 사향소, 북극곰, 일각고래 등의 동물과 땅, 항로 등 북극의 문화적인 코드를 이야기에 담아 유연하게 풀어낸다. 그중 가장 와닿았던 파트는 사향소에 관한 2장이다. 사향소의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시기가 19세기에 두 번 있다. 북미 고래잡이 선원들을 먹이고 허드슨베이사에 교역하기 위해 인디언들과 에스키모들이 동쪽 아북극에 있던 사향소들을 몰살시킨 일이 첫 번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20세기 초 그린란드에서 동물원에 보낼 사향소 새끼 한두 마리를 잡거나 모피 사냥꾼들과 개들의 식량으로 쓰기 위해 사향소무리들을 깡그리 살육한 일이다. 동물원에 보낼 사향소 새끼를 확보할 유일한 방법은 방어 대형을 형성한 성체들을 모조리 죽이는 일이었다.역사학자 에이나르 미켈센은  1932년에 포획된 새끼 한 마리당 다섯 마리의 어른 사향소가 살해됐다고 추정한다. 미국인 엘리자베스 혼은 1899년과 1926년 사이에 이런 방식으로 사향소 약 2,000마리가 살해됐다고 이야기한다.


부를 축적하려는 욕심으로 인해, 그리고 야생 동물을 보호하겠다는 이유로 만든 동물원을 채우려고 오히려 더 많은 사향소를 희생시킨 것이다. 동물 보호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오늘날에는 1900년대에 비해서 무분별한 남획이 잘 일어나지 않겠지만, 다른 영역에서라도 얼마든지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의 인식 밖의 대상을 고유하게 바라보지 않고 그저 물적 존재로만 여기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향소에 대해 잘 알게 된다면 이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우리는 특정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간 관계를 먹이사슬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툰드라를 걸어서 사향소들을 쫓아가 본 적이 있는 연구원들이나, 늘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겠지만, 불쑥 사향소들과 마주친 적이 있는 관찰자들은 가끔 사향소와 새들의 친밀한 관계를 언급하곤 한다. 흰멧새와 라플란드긴발톱멧새는 툰드라에 튼 둥지 속을 사향소 털로 채운다. (…) 겨울에 사향소들은 눈을 긁어내서 북극토끼의 먹이와 뇌조를 위한 버드나무 순을 드러낸다. 북극여우는 사향소들과 어울리며 뭔가 알 수 없는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사향소들은 돌아다니면서 새들의 먹이가 되는 곤충을 자극한다.

 


책을 통해 본 사향소와 새들 사이의 공생 관계는 정말 귀엽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이외에도 새끼를 지키기 위해 사향소들이 대형을 만드는 일이나 영하 32도의 강풍 속에서 바람을 등진 채 평소와 다름없이 먹이를 먹거나 누워 있는 사향소 무리를 발견한 일화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저 멀리 북극에 사는 냄새 나고 털이 긴 소로 사향소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친근하고 생생한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결국은 관심인 것 같다. 어떤 대상의 고유함을 발견하고 사적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 대상을 마냥 무시할 순 없게 된다. 더 많은 외부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발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사향소와 마찬가지로 북극 또한 그렇다. 납작하게 보지 말고 북극의 숨은 생생한 일화를 듣다 보면 우리 또한 북극을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북극 속의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보면 좋겠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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