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 사회에서 카멜레온처럼 살기 -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

글 입력 2024.03.11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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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떠올린 것은 카멜레온이다.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생물이 있다면, 주변의 색에 맞춰 자기 피부색을 바꾼다는 파충류, 카멜레온이지 않을까. 비슷하게, 동물들의 위장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서 다룬다. 눈처럼 새하얀 털로 덮이는 북극여우, 산호초처럼 화려한 무늬를 가지는 게 등이 그 예시다. 주변 환경에 스며들게 하는 이 은폐 능력이 자연계에서는 아주 유익한 능력이다.



보이지 않게 되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창조적인 개인주의를 부정하는 일도, 우리를 독특하고 독창적이고 유일무이하게 만드는 특징을 포기하는 일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상태는 짝을 유혹하고, 집과 서식지를 보호하고, 사냥하고,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다. 자연계에서 위장은 미묘하고, 창의적이고, 세심하고, 영리한 특성이다. 무엇보다 강력한 특성이다.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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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카멜레온은 이런 동물의 예시로는 등장하지 않았다가, 조금 뒤에 은유를 위한 수단으로 언급된다.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는 시인이 마치 카멜레온 같다는 생각을 남겼다.



시인은 자신만의 특징을 내세우지 않는 존재로, 그 대신 “그게 반칙이든 공정하든, 높든 낮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보잘것없든 고상하든 열정 속에서 살면서 빛과 그림자를 모두 즐긴다. 정숙한 이머젠만큼 음험한 이아고를 상상하면서도 즐겁다. 도덕적인 철학자는 충격을 받는 일에 카멜레온 시인은 즐거워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아서 시인은 “해, 달, 바다, 남자와 여자”의 가면을 쓸 수 있다.

 

 

(p.138)

 


심지어 뚜렷한 자아가 없는 시인은 실재에 더 잘 적응하고 경험에 더 민감하다고까지 말한다. 창의적인 상상력으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하는 것이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굳이 시인이나 창작자가 아니어도, 우리도 그러한 경험을 하곤 한다. 주로 창작자의 창작물을 통해서이지만, 다들 창작물에 흠뻑 빠져있는 동안에는 한 번쯤 카멜레온이 되어서, 내가 아닌 다른 색을 가져본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가 사회적으로 추구하는 삶은 카멜레온과는 동떨어진 삶이다. 연예인이 아니어도 SNS에는 개개인이 각자의 공간에, 또는 모두의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언제부터 불특정다수에게 개인의 사진이 공개되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유명한-또는 악명 높은-제트세대임에도 불구하고 SNS를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어느새 SNS가 나를 증명하는 포트폴리오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지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가 더 이상 소셜(social, 사회적인)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SNS를 하는 것은 소통이라기보다도 사라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적어도, 나에게 SNS가 갖는 의미는 그렇다.


넷플릭스의 옴니버스 형식 드라마 <블랙 미러>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시즌3의 <추락>이라는 에피소드에서는 모두가 모두에게 별점을 준다. 지금 우리가 음식점이나 카페에 별점을 주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카페에서 만난 직원에게, 동료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그 별점에 따라 평판이 뒤바뀌는 것은 당연하고 사회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도 천차만별이다. 평점을 유지하기 위해 인물들은 과도한 친절을 베풀고 입꼬리에 경련이 일도록 억지웃음을 짓고 산다. 너무하다고, 기괴하다고 느껴지지만, 동시에 그리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보인다는 것은 이제 수동적이라기보다는 능동적인 개념이 되었다. (…) 제니퍼 이건의 2001년 소설 <나를 봐>에서 자동차 사고로 얼굴이 심하게 망가진 후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샬럿은 모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일만이 가장 중요한 일로 느껴졌다. 내가 시도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일들은 그에 비해 수동적이고 헛되어 보였다.”

 

(p.22)

 


우리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능력보다 보이는, 돋보이는 능력이 더 높이 평가 받는다. 다른 누구와도 헷갈리지 않고 모두가 날 돌아보며 기억하게 만드는 능력이 이상적이다. 자연계에서는 그 반대라는데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연의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무언가 놓치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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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자마자 카멜레온을 떠올린 이유 중에는 표지의 영향도 있을 수 있겠다. 연한 초록색에 분홍색이 조금 섞인 표지 때문에 더욱 연상이 잘 된 걸지도. 녹지에 살며 붉은빛 피부를 지워내는 카멜레온이 상상된다. 기존에 알려져 있던 사실과는 달리, 카멜레온이 단순히 보호색을 위해서만 피부색을 바꾸는 건 아니라고 한다. 기온이나 기분에 따라 변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일 때도 많다고. 어쩌면 저자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카멜레온을 위장 동물의 예시로 바로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카멜레온의 피부색 변화 원인이 다양한 것처럼, 우리에게 보이지 않음도 다양하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노력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되지만 금방 홀로서기로 확장되고,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변화무쌍한 개념이다.

 

(p.42)

 


물질적일 수도, 영적일 수도, 선택일 수도, 주어질 수도, 힘일 수도, 무력함일 수도 있는 것이 보이지 않음이다. 그 원인과 형태와 결과는 다양하다. 책의 제목에서는 ‘사라지는 법’이라고 말하지만, 더 정확히는 보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 그리고 때로는 보이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책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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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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