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지와 미지의 공포 -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예측 불가능의 공포
글 입력 2024.03.08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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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브라이언 에븐스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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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문학이나 공포 소설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흔히 괴담으로 분류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일하다가 집중이 흐트러질 때면 괴담을 읽는 게 취미라고 할 수 있다.

 

구전에서 인터넷으로 전해지는 괴담, 레딧에 올라오는 창작 괴담, 최근 유행하는 나폴리탄 괴담 등 다채롭게 읽고 있다. 원념, 무속, 오컬트라는 키워드까지 크게 가리지 않는다. 등장하는 게 귀신이든 인간이든 그외 창작된 존재든 공포를 담고 있는 이야기는 뭐든 흥미롭다.


이 책은 어느 방향이냐고 하면 추측 불가능한 존재, 초자연적인 상황, 미지의 존재, 정보의 불균형에서 오는 불안 등 우리가 아는 공포 이야기의 소재를 대부분 담고 있다. 현실에 없는 것이 등장했다가, 현실에는 없지만 현실과 닿아있는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알 수 없는 상황과 존재가 나오기 시작하고 그다음이 궁금해진다.

 

무서운 것이 인외 존재였다가, 낯익은 침입자였다가, 예측 불가한 존재였다가, 무지와 미지의 혼재가 된다. 그래서 독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지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를 읽게 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재미를 느낀다. 어떤 걸 내놓을지 예상할 수 없는 데서 오는 흥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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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이야기에는 뒷모습이 둘인 여자아이가 등장한다. 뒤만 둘이라서 손등도 둘인 여자아이. 귀신은 사람과 반대로 행동한다는 한국의 괴담이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반대가 아닌 뒷면만 둘인 존재. 얼굴이 없는 뒤통수만 존재하는 양면, 정면을 추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반대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외에도 흔히 괴담에서 접하는 소재가 등장한다. 존재의 내용물이 바꿔치기 된다든가, 사실은 인간이 제일 무섭다든가, 집착이 불러온 광증과 광증이 야기하는 살인 등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소재의 조합에는 차이가 있지만 익숙한 패턴이 보이는 이야기도 있다.

 

이 단편집의 특징은 ‘그것’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다는 부분에 있다. 독자는 가지고 있는 정보로 추측하는데 출구가 정해진 미로가 아니라 가본 적 없는 길과 같은 거라 걷다가 갑자기 출구라고 나를 마지막으로 인도한다.

 

알고 보니 정해진 길을 나오게 된 나는 그 길이 무엇이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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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의 장점은 한 번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분량을 확인하고 가지고 있는 시간적 여유에 맞춰 읽었다가 내려놨다가 시간이 되면 다시 책을 들면 된다. 흐름이 깨질 일 없이 조각 독서가 가능하다. 하물며 호러라는 장르는 단편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짧고 강렬한 무서운 이야기를 접하며 자랐으니까.


작가의 상상력을 생각하면 장편에 어울릴 법한 소재를 짧게 축약해서 아쉽게 느껴지는 이야기도 몇 있다. SF라는 소재를 취하고 우주를 등장시켰으면 앉아서 진득하게 볼만한 커다란 세계가 있을 것 같은데 특정한 장면을 보여주고 문을 닫는다.

 

그럼에도 크게 아쉽지 않았던 건 모든 작품이 일정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어디선가 주기적으로 연재되는 이야기를 모아서 내놓은 느낌이 든다. 다양하지만 다채롭다는 것과는 다르다. 말하자면 빵집에 들어왔다. 어느 건 바삭하고 어느 건 부드럽고 어디는 설탕 코팅이 되어있고 어디서는 버터 향기가 난다. 하지만 모든 곳에 밀가루가 있고 모든 것이 전부 빵이다. 이 단편집은 뷔페가 아니다.


현실을 한 조각 떼어다가 환상에 빠뜨리고 공포에 내던진다. 현실적인 무서움은 없지만 현실과 촘촘하다 맞닿아있다. 눈 감으면 떠오르는 공포나 어둠이 주는 스산함이 아니라 일상이 비틀리면 브라이언 에븐스의 소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리감 있는 공포.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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