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학하는 브랜드, 앞서 들어오는 나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3.0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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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브랜딩을 하려고 하는가

 

내가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2016년 겨울, 독일 BMW 박물관에서였다. 자동차에 문외한임에도 공간이 주는 아름다운 위압감에 금방 매료되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붙어있는 BMW 사의 장구한 역사, 바닥부터 천장까지 트레일러에 매달린 자동차들, 중력을 거슬러 로고를 그려내는 쇠구슬…엑셀과 브레이크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세계 최고의 차는 BMW다!’라는 확신에 차서 박물관을 나왔더랬다. 8년간 덧칠된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은 실상의 BMW 박물관보다 훨씬 채도가 높을 테지만, 분명한 건 그때 문화예술의 힘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나도 저런 일을 하고 싶다, 고 생각 했고 일반적인 박물관 미술관과는 결이 다른 것 같지만 아무튼 큐레이터가 되고자 마음먹었다. 국내의 평면적인 공간 활용과 파편화된 작품들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예술과 사회를 탐구하며 시간을 밟아왔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조금은 현학적으로 예술을 대했던 것 같다. 인간은 사유의 동물이지만 현대인들에게 사유는 사치로 느껴진다는 것이 거대한 문제의식이었고 담론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상과 비일상의 틈에서 사유를 선물하는 큐레이터가 되겠다는 것이 나의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리고 작년에는 문화예술나눔 단체 기획진으로서 연합 전시도 올렸다.

 

활자가 경험으로 현현되는 순간 꿈도 현실이 되어버린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돈을 위해 일하고 싶지는 않다는 옹졸한 바람은 각설하고 (우리나라에서 예술로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예술이 다양한 문제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내가 세운 논리에 스스로 설득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여전히 예술의 쓸모와 쓸모를 잃어버린 예술의 가치마저 신봉하지만 내가 순수예술의 저변을 이용해 세상을 바꿀 자신이 없었다.

 

나는 다시 BMW 박물관으로 돌아왔고, 큐레이팅이 아닌 브랜딩을 꺼내왔다. 미술관의 경계를 허물고 빈부와 지역, 성별에 관계없이 경험할 수 있는것으로서, 단기간의 성과에 흐린 눈이 가능한 것이었다.

 

앞으로 브랜딩을 공부하면서 미학과 예술적 심상을 결합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처럼 자전적인 이야기는 지양할테지만 몹시 주관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첫 이야기에 '앞서들어오는 나'라는 부제를 붙인 것은 '앞서 나가다' 라는 흔한 표현을 한번 비틀어, 마치 브랜딩이라는 개념과 여기에 녹아든 예술을 최초로 포착했다는 착각을 뒤로하고 앞서 존재해왔던 수많은 우수 사례들의 발자취를 되돌아 걷기 위함이다.


 

 

2. 브랜딩의 역사


 

브랜드의 개념 자체는 고대 이집트부터 있었다고는 하나 2024년의 완숙한 자본주의에서는 크게 유의미하지 않아 보인다. ‘브랜드’라는 단어는 1990년, 인터브랜드 창립자 John Murphy에 의해 “이름(name)이나 표시 (presentation)에 의해 구별되는 특정 공급자의 제품이나 서비스”라는 정의가 내려졌다. 이때 브랜드는 물리적, 미학적, 합리적, 그리고 정서적 요소의 총합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보증의 역할을 한다. (Murphy, 1992)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미국의 사회학자 Asker는 브랜드를 판매자나 그들의 상품, 서비스를 식별시키고 경쟁자들의 것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언어, 이미지, 아이디어 등으로 보았다. 여기에 Jean-Noel Kapferer 가 “공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제품을 차별화 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략의 한 부분”이라고 첨언하며 브랜드에 전략적 측면이 가미되었다.

 

분명 오래된 개념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경영에 빠르게 포섭되며 날것 그 자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개념이 대두된 것은 결국 남들과 나를 구별하고 우월성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일 쇼크와 세계 경제의 침체 이후로 찍어내는 대로 다 팔렸던 황금시대는 막을 내렸다. 공급 과잉의 상황에서 기업은 소비자의 심리를 움직여 우리 상품을 좋아하는 팬을 만들어야 했고, 그게 20세기, 21세기의 브랜딩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브랜딩과 마케팅의 차이

 

무거운 책을 여러 권 노끈으로 묶어가는데 책들을 연결하는 끈은 브랜딩, 남은 끈으로 묶은 리본은 마케팅 같다.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필두로 상품이라는 책, 유통이라는 책, 고객이라는 책을 결합하는 원대하고 중요한 것이 브랜딩이고 그 위에 반짝 빛나는 리본 장식이 마케팅이라고나 할까. 편협한 나의 사견으로는 마케팅은 상대를 현혹시켜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처럼 여겨진다.

 

국내 브랜딩의 선두주자 현대카드에서 매년 개최하는 다빈치 모텔에서 배달의민족 김봉진 대표는 “브랜딩은 철학을, 마케팅은 전략을 붙인다는 점이 다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서 “철학은 내가 누구며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바라보는 것으로, 브랜딩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전략은 상대방을 속이는 기술로, 마케팅은 상대방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대카드 다이브에 게시된 이 문답을 접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오피니언 기획의 힌트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브랜드의 철학과 실현을 미학사조와 연결지어 보기로.


 


4. 앞으로의 글

 

아직은 쌀쌀한 3월부터 여름의 문턱을 넘어설 6월까지 기고할 오피니언은 브랜딩과 미학의 극히 작위적인 만남에 관한 것이다. 과연 가능한가, 가 태초의 의문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과 영리기업의 브랜딩. 특히 학문과 비즈니스, 몇백 년의 간극을 내 사견으로 채운다는 게 굉장히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미학 이론을 들고 와야겠다고 생각한 건 누군가의 말을 옮겨 적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브랜딩은 아이디어와 언어와 디자인의 삼위일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학이나 예술에서 크게 첨언할 것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미 참신한 브랜딩 사례들과 제언들이 도처에 있기에, 그것을 답습하는 것은 사색을 나누는 아트인사이트의 성격에도 맞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국내, 해외 브랜드 및 스타트업, 브랜드 컨설팅 회사의 브랜딩 등을 아울러 되는데까지 그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선대의 어떤 생각과 닮아있는지 좇아보고자 한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에서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구현되는 경험의 중요성도 함께 고민해 볼 것이다.

 

 

[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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