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더 이상 프로그램북을 사지 않습니다 [공연]

글 입력 2024.03.0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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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공연을 보러 가면 프로그램북을 사는가? 프로그램북은 장르를 불문하고 거의 대부분의 모든 공연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로그램북(programbook)은 말 그대로 공연(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책자를 말한다. 이에 공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길 원하거나 낯선 공연 장르의 경우의 경우 이해를 돕기 위하여 관객은 프로그램북을 구매한다. 그런데 유독 뮤지컬 공연에서 프로그램북은 이러한 기능을 하는 것보다 주연 배우들의 사진을 싣는, 포토북에 가까운 형태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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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소장한 프로그램북 중 극히 일부


 

클래식 공연의 경우 프로그램북을 5천 원에서 1만 원이라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며 ─ 무료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 그 안에는 당일 연주될 프로그램과 인터미션 구간, 그리고 작품에 관한 전문 평론가의 해설(또는 평론)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클래식 공연의 경우 대부분 프로그램북을 구매하고, 공연 시작 전이나 후에 공연 평을 읽어보며 이 공연을 어떻게 봐야 할지 힌트를 얻거나 내 분석을 전문가의 평론과 비교해 보면 그날의 공연을 곱씹는다. 그렇다면 뮤지컬과 같은 음악극 장르인 창극이나 오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창극의 경우 ─ 국립창극단에 국한하여 ─ 1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풍성한 내용으로 채워진 프로그램북을 구매할 수 있다. 프로그램북 안에는 본 공연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에 관한 창작진의 고뇌를 담은 인터뷰, 그리고 전문평론가의 평론, 무대 및 의상 등 무대를 이루는 요소에 대한 설명 및 이미지 등 다양한 내용이 다채롭게 들어가 있다. 심지어 대부분의 창극 프로그램북에는 공연 전체 대본이 수록되어 있어 공연을 복기하거나 놓친 부분 또는 인상깊었던 부분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뮤지컬의 경우 프로그램북은 타 장르와 비교해 봤을 때 상당히 비싸면서 그 내용은 부실하다. 1만 2천 원 정도였던 프로그램북은 이제는 1만 5천 원이 되었고, 그 이상인 경우도 있다. 보이는 두께만 보면 타 장르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두껍기 때문에 돈값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안을 살펴보면 창작진 인터뷰, 창작 과정, 가사 또는 대사, 전문 평론이 실려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특히, 뮤지컬의 경우 대극장은 모든 공연이 프로그램북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반면, 중소극장 뮤지컬에서는 프로그래북을 판매하는 공연을 찾아보기 다소 힘들다. 그렇기에 필자 또한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북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라이선스 대극장 공연인데, 이 공연의 프로그램북을 살펴보면 앞에 오리지널 창작진의 감사 인사말이 짧게 수록되어 있고, 한국에서 본 공연을 올리기 위해 참여한 연출, 음악감독 등 다양한 창작진은 거의 맨 뒷부분에 등장한다. 그것도 사진과 설명은 없고, 직책과 이름뿐이다. 이는 창작 대극장 뮤지컬에서도 거의 비슷하다. 그렇기에 뮤지컬 프로그램북은 공연의 이해를 돕지 않는다. 배우 사진첩에 가까운 프로그램북에는 수많은 사진만이 실려 있을 뿐이다.


뮤지컬 공연을 보고 나면 정말 많은 것들이 궁금해진다. 가장 먼저 왜 이 소재를 선택하여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본 공연이 완성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고민이 있었는지가 궁금하고 이것들을 만든 창작진이 궁금하다. 그런데 프로그램북에 이러한 내용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에 관해 알기 위해서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에 들어가서 본 공연의 제목을 검색창에 쳐서 일일이 검색하여 창작진 인터뷰가 나온 뉴스나 영상을 찾아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또한, 뮤지컬은 대사와 노래가 함께 진행되고 오페라와 달리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 점에서 대사나 가사 전달이 원활하지 않기도 하고,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행동이 진행되면서 장면들이 만들어지며 공연이 전개되어 가기 때문에 공연을 천천히 이해하고 곱씹을 시간이 관객에게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공연을 보고 난 후 프로그램북을 통해 넘버 가사나 일부 대사에 관해 복기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지만, 프로그램북에서 이와 관련된 글자를 찾아보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이다. 심지어 첫 공연 당일 프로그램북이 판매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관객이 프로그램북 구매를 원할 경우, 시간을 또다시 내어 공연장을 찾아 프로그램북을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이렇게 프로그램북이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만큼, 뮤지컬을 ‘제대로’ 즐기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뮤지컬은 공연예술 장르 중 상당히 높은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는 장르이다. 2023년 뮤지컬 <물랑루즈!>를 기점으로 뮤지컬 VIP석 가격은 18만 원이 되었고, 최근 상연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VIP석 가격은 이보다 높은 19만 원에 책정되었다. 이와 더불어 다른 공연들 또한 VIP석을 17만 원에서 18만 원으로 올랐고, 이에 대극장의 경우 3층 객석의 가격이 무려 8~9만 원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뮤지컬 제작사는 이전에 있었던 조기예매 할인이나 재관람 할인을 거의 진행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 명의 관객이 뮤지컬을 VIP석에서 보려면 상당한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함에도 뮤지컬에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유튜브, 포털 사이트 등 여러 곳을 전전하며 넘버 스타일이 나에게 맞는지, 어떤 내용인지, 평은 어떠한지 등 일일이 검색해야 하며 심지어 초연인 공연은 공개된 넘버 자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뮤지컬을 보는 일은 다소 피곤하고 품이 든다. 그래서 2만 원에 육박하는 값을 지불하고 프로그램북을 구매해서 정보를 얻으려고 했던 것과 달리 그 안은 공허하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점점 프로그램북을 구매하지 않게 되었다. 차라리 공연 사진첩과 프로그램북을 분리하여 판매하고, 프로그램북은 공연에 대한 온전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자로 1만 원 이하의 가격에 판매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프로그램북은 관객은 공연에 관한 정보를 얻고, 제작사는 공연 티켓값 이외 부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과 제작사 모두에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상품이다. 그런데 뮤지컬계에서 프로그램북은 관객에게 정보가 아닌, 사진을 제공한다. 물론 무대 사진 또한 무대를 떠올릴 수 있는 강력한 매체 중 하나지만, 사실상 이는 뮤지컬 시장이 강력한 배우 중심의 시장이라는 점에 기인한 현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뮤지컬 제작사는 1차, 2차, 3차 등 여러 버전을 내세운 프로그램북을 비싼 가격에 판매한다. 각 버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수록된 사진의 차이가 가장 크나, 가장 아쉬운 것은 버전마다 앞 내용은 완전 다르게 하고, 뒤에 사진은 거의 비슷하게 해 놓는 경우이다. 이처럼 프로그램북은 제작사의 배만 불리고, 관객은 ─ 정보와 가격 면 모두에서 ─ 굶주리게 되는 기이한 현상 속에 놓인 상품이 되었다.


프로그램북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뮤지컬의 예술성보다는 오락성이 강조되는 현 상황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공연을 보기 전 로비에서 구매한 프로그램북만 보면 공연을 누가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전문 평론가는 이 공연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배우들은 어떻게 캐릭터를 완성했는지 등에 관해 알고 공연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로그램북에서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을 보고 싶다. 뮤지컬이 단지 객석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까지만 즐기는 예술이 아니라, 객석에 들어가기 전부터 객석에 나와서까지 곱씹고 생각하며 오랜 시간 천천히 되새기며 즐길 수 있는 예술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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