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언어와 사고의 관계성 : 사고에서 언어로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3.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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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한 성찰과 사색을 바탕으로 언어를 대상화하고 이를 철학적 연구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일은 20세기 이후 비트겐슈타인 혹은 들뢰즈로 대표된다. 그러나 <달몰이>의 저자인 조에 부스케에 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질 들뢰즈라는 저명한 철학자에 의해 사후 재평가된 작가 정도의 인식이 그의 작품을 뒤따르고 있을 뿐이다.

 

비록 그가 '침묵을 변주한 작가'와 같은 평가를 받아온 만큼 세간의 침묵 속에서 간간이 읽혀오고 조명된 작품이지만, 인간이 지닌 가없는 결핍들 속에 암유된 아름다움과 사랑의 언어를 텍스트로 가시화하여 오늘날까지도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사고를 추동하고 그 방향성을 제시하게끔 유도하는 작품으로서의 <달몰이>는 여전히 시의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함축한다.

 

"인간의 사고는 고유한 형태 없이 남기를 원한다. 인간의 사고는 단어들과 맞바꿔지면서 흔해빠진 초상화가 된다. 단어는 세계의 기호다."

 

언어가 없다면 세상을 무엇으로 정의하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특정 사물의 본질을 정의하는 행위가 사물의 이름을 정하는 일보다 선행되는 것일까? 사물이 언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언어를 버리지 않고서는 영원토록 사물을 참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일까? 조에 부스케는 그의 저서 전반에 걸쳐 한편으로는 사랑을,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을 이야기하며 언어과 사고의 관계성을 암시함으로써 이와 같은 질문들을 독자들에게 쉬지 않고 던진다.

 

"생에 대한 네 지식은 생에 대한 네 사랑의 정도에 달려 있을 뿐."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생을 사랑했다면, 우리는 우선 생의 깊이를 확인했을 것이고 선별된 지식들로 그 깊이를 채워나갔을 것이며 그 모든 과정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며 확인하는 사랑과도 같을 것이다. 매 순간 타인들 혹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재배치되는 인생은 당연하게도 가변적이다. 한순간도 멈추는 법이 없이 변화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고정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곧 언어다. 언어는 세계의 기호이며 사고는 인간의 기호다. 언어는 완전하지만 사고는 불완전하다. 언어가 사고를 짓누른다. 마치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이때 사고는 언어를 밀고 올라가야 한다. 오직 예술로서. 파편화된 사고들이 끊임없이 다른 형상으로 변주되는 인생 속에서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은 신의 형벌처럼 계시된 것만 같다. 그러한 불완전함으로 언어를 밀고 올라간 끝에, 다시금 추락하는 바위를 보며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랑할 수 있을까?

 

조에 부스케는 1918년 1차 세계대전 중 바이이 전투에서 독일군이 발포한 탄환에 척추를 관통당해 하반신 불구가 되었고 여생을 자택 침실에서 보냈다. 그의 신체적 불구는 단순한 결핍의 의미를 초월하여 사고의 불완전함과 맞닿았을 것이다. 신체적 불구가 정신적 불구를 격화시키고 그를 심연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여생의 모든 순간에서 그는 어떤 심정으로 글쓰기를 이어나갔을까? 완전히 무너져 내린 사고가 끝끝내 언어를 밀고 올라갈 수 있었던 연유는 그가 좀처럼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인생에 대한 사랑에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을까?

 

나로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발화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망설여진다. 타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사람들이 저마다의 인생을 그토록 깊이 있게 사랑한다면 사랑을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을 '사랑'이라는 언어로 쉽게 고정시켜 놓지는 못 할 것이다. 언어는 사용할수록 낡기에. 언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로부터 조금씩 멀어진다. 불완전한 사고 속에 언어라는 구실로 결박당한 모든 사랑의 이름 역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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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추락 중인 존재이며 유형(流刑)중인 존재이다. 그렇게 완벽한, 죽음만큼 농축되고 환원 불가능한 텍스트. 우리 시대의 표면에 이 신기한 물체들이 얼마나 남게 될까."

 

조에 부스케는 이제 죽음을 향해 추락하는 언어의 예술을 이야기한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치명적 불구를 인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는 남들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죽음과 가까워졌다. 죽음을 더 많이 상상하고 이따금 필요 이상으로 맛보기도 하며 자신의 손에서 멀어져 추락하는 언어를 관조한다. <달몰이>의 전반부가 신체적 불구로부터 출발하여 사랑으로 상승하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집합이라면, <후반부>는 정신적 불구로부터 출발하여 죽음으로 하강하는 작가의 인생과 그에 대한 사고가 주를 이룬다. 그는 자신과 세계의 그 무엇도 언어로 고정하지 않는다. 고정될 수도 없고 고정할 필요도 없다. 마치 언어가 인간으로부터 멀어지듯이 삶이 그의 사고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침묵 속에서 지켜본다. 실체는 형상을 떠나고, 영혼은 더 이상 육체와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이 조에 부스케의 죽음이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신체적 불구와 결함으로부터 파생된 언어만으로도 망가진 삶을 사랑할 수 있었다고 외치는 그의 텍스트 속에서 나는 지난날 사랑 혹은 죽음을 섣불리 정의하고 언어로 못 박았던 순간들을 반성한다. 불완전한 사람의 사고에 기초한 인생과 사랑이 끝끝내 완전해질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결국 완전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마저 언젠가 추락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예술가는 일생 동안 묵묵히 사고로 언어를 밀고 올라간다. 생각이 생각으로 남도록, 그럼에도 한없이 언어에 다가가도록, 그러나 완전히 언어가 되지는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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