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집사람이 결혼했다

인생 2부를 먼저 시작한 내 소중한 친구에게
글 입력 2024.03.0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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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결혼했다.


집사람, 와이프, 동거녀. 선영을 수식하던 모든 단어의 1부가 종결됐다.


20대에서 이 친구를 빼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대학부터 교환학생, 취업준비, 첫 직장, 이직, 이사 그리고 내 삶의 모든 굴곡과 기쁨을 함께 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동거인이며, 언니 같으면서 동생 같은 내 첫 집사람.


결혼한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듣고 선영이는 축사를 부탁했다. 나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별 고민 없이 그러마, 했다. 축하해 주는 일이 뭐 어려운 일이라고.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한 번뿐인 선영이의 결혼식에 내 진심을 담은 축하를 전할 수 있을까. 몇 달을 꼬박 고민해서 썼다. 지우고 다시 쓰고, 다시 쓰고 또다시 쓰고. 쓰는 내내 많이 울었다. 10년을 같이 살았는데 어떻게 보내주지? 혈육과 황소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힘들었겠지...축사를 쓰는 동안 한없이 뭔가가 막막해졌다. 뭐가 막막하지.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선영이의 짐이 야금야금 빠졌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건 자질구레한 짐 몇 개와 선영이가 쓰던 매트리스. 갑자기 새벽에 덜컥 겁이 날 때면 몸을 조금 일으켜 반대편에서 자고 있는 선영이를 보면 안심이 됐다. 그래서 그런지 매트리스만 봐도 안심이 되곤 했는데 이제 그거까지 빠진다고 생각하니까 막막해지는 거였다.


10년을 같이 살았는데 내가 너 없는 이 큰 방에서 잘 잘 수 있을까? 이제 뿌링클은 누가 같이 먹어주지? 밤산책 나가서 시시한 이야기를 하면서 데굴데굴 구르는 건? 각자 거실과 방에서 카톡으로 이야기하는 건?


결혼식을 앞두고 출장이 잡히면서 잡생각이 조금 덜어졌다. 선영의 결혼식날 새벽에 한국에 도착하는 미친 일정. 선영의 결혼식엔 비가 왔다. 시차적응을 못한 뇌 때문인지 너무 많은 시뮬레이션을 해본 덕분인지 한층 담담해진 얼굴로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결혼식 덕분에 보기 힘든 친구들과 동기들이 한 곳에 모이고 어른스러워진 얼굴과 여전한 유치함으로 티격태격하면서 아무도 안 울면 어떡하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신부대기실에서부터 눈물이 터졌다. 인사하러 들어가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얼굴로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선영은 울음을 참느라고 제 뺨을 스스로 치다가 "신부님 안 돼요!!!"라는 불호령을 들었다. 덕분에 눈물이 조금 들어갔다. 내가 신부도 아닌데 뭐 그렇게 정신이 없었는지, 나는 어느 순간 덜컥 무대 위에 서 있었다.


하나하나 천천히 잘 말해줘야지. 진짜 열심히 축하해줘야지. 어른스럽게 잘 말해줘야지. 결혼 축하한다고, 오늘 진짜 예쁘다고.


가능할 리가...무대에 올라가서 선영아, 한 마디 하자마자 눈물이 쏟아졌고 둘은 마주 보고 거의 통곡을 하고 말았다. 선영이는 잘 안 운다. 그나마 우는 걸 본 건 내가 어떤 일로 힘들어할 때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울 때, 샐러드가 나왔는데 빼달라고 한 양파가 들어 있었을 때...그런 선영이의 눈물을 보니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결혼 준비 전에는 바빠서 거의 집에 들어오지도 못했고 평소에도 그렇게 엉덩이 붙이고 살 정도로 매번 함께인 사이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렇게 서글프던지. 축하하는 자린데 뭐가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고 형부와 나란히 서서 나를 보고 있는 선영이가 어찌나 어른 같았는지.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는데 목이 콱 막혀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너네 둘이 헤어지냐고...전여친 축사하는 거냐고...킁영이는 누구냐며...ㅋㅋㅋㅋㅋㅋ

내려온 다음 동기들의 놀림을 잔뜩 샀다. (나는 아직까지 축사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한다)


그리고 얼마 전 연말정산을 한다고 등본을 뗐는데 동거인 신분으로 내 이름 바로 밑에 있던 그녀의 이름이 빠지고 없는 걸 확인했다. 또 조금 서글퍼졌다. 가족이 아니어도 동거인이라는 이름으로 한 지붕 아래 살던 정이 있는데 이렇게 기록 상에서 냉정하게 빠져버리다니. 섭섭하고 섭섭했다.


이젠 집에 와도 없으니까 데이트를 자주 신청할 생각이다. 얼마 전에는 코로나 시기에 졸업하는 바람에 둘 다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생각나서 선영이와 새로 바뀐 학위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러 갔다. 사진을 한 장씩 나눠 갖고 헤어지면서 이젠 같이 집에 들어가지 않지만, 각자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도 익숙해질 수 있겠지 생각했다.


아래는 선영이에게 보낸 편지이자, 너의 결혼을 축하하는 나의 진심 전문.


안녕하세요. 오늘 신부가 되는 선영이의 대학동기이자 반올림으로 10년째 동거인인 조수빈이라고 합니다.


선영이와 형부의 경사날에 친구들을 대표해 축하의 말을 전하게 되어 몹시 떨리고 긴장되는데요. 아직 미혼인데다가 축사라는 중대한 임무는 처음이라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고 고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을 축하하는 마음이 먼저일 것 같아 이 자리를 빌려 제 진심어린 축하를 전하고자 합니다.


선영아 처음에 서로를 보고 '절대 친해질 수 없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던 우리가 함께 살림을 꾸린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늘 유치한 장난과 농담으로 낄낄거리던 우리인데 결혼이라는 큰 한 걸음을 먼저 내딛는구나.


신입생부터 미국 교환학생, 취업 준비, 그리고 각자의 업계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서로 의지하고 웃었던 세월이 1부는 이렇게 마무리되는구나. 2부는 형부 옆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겠지 어딜 가든 적응력 하나는 끝내주던 너라 별로 걱정이 되진 않는다. 걱정이 되는 건 나야...내가 너무 걱정스러워...농담이고.


선영이랑 같이 사는 중에 하나씩 짐이 빠지는 걸 보니까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 한구석이 섭섭하더라고요. 든 사람 자린 몰라도 난 사람 자린 안다고 하잖아요. 선영아 너랑 20대를 보내서 너무 행복했다. 다행인지 20대는 꽉 채워서 같이 보내고 나서 네 짐을 정리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제 서로의 비상연락망에는 서로가 없겠지만 그래도 아무런 걱정 없이 웃고 싶거나 산책하고 싶을 때, 또는 김포 가는 길에 있는 자그마한 우리 집에 들러주면 좋겠다!


분위기를 좀 바꿔서..형부..라는 말을 저는...오늘 처음 써봤습니다.. 형부 제가 선영이랑 거의 10년보다 오래 살았죠. 형부와 산 것보다 더 오래 살았습니다...이제 형부 손에 우리 선영이를 안겨드릴게요. 이제 살만큼 살은 것 같아요..데려가세요...인생 2회 차 아니냐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모든 일에 무덤덤하던 선영이가 결혼 준비에 설레하는 모습을 보면서 형부가 참 좋은 사람이겠거니 하는 기대도 커졌어요. 이사를 도와줄 때 냉장고를 번쩍 들던 모습에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 선영이 잘 부탁드려요.


오늘 제 첫 축사를 받아간 예쁜 커플이 부부가 됐습니다. 결혼을 너무 축하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한 길을 걷는 동안 여러 일이 많겠지만 서로 현명하게 의지하며 잘 해결할 거라고 믿습니다. 저한텐 전화 오는 일 없게 해 주세요...농담이고 나는 언제나 네 제일 친한 친구로 남아 있을 테니 가끔 쉬었다가도 괜찮아.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 잘 가라 김선영!!

 

 

[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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