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다큐멘터리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리뷰글
글 입력 2024.02.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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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 영상 플랫폼에 들어갔다. 사실 많은 다큐멘터리들을 찜해놨는데 그중에서 이 다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내언니전지현과 나>이다. 이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는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상태였다. ‘일랜시아’라는 망해가던 넥슨 게임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감독의 이야기. 사실 이 다큐를 통해서 일랜시아라는 게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평소에 게임에는 관심이 아예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다큐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바로 ‘작은 궁금증’ 때문이었다.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오래된 게임을 아직 하는 걸까?’ 최근 오래된 것에 대한 가치를 깨달은 주인공의 이야기로 단편 소설을 쓴 적이 있었기에 더욱 궁금해졌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 작품은 빠른 템포로 나를 게임 세계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내언니전지현과나>는 1997년대, 한국 IMF 사태에 대한 뉴스로 시작한다. 언제 자신의 자리가 무너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굉장히 두렵다 못해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IMF 사태가 일어나고 그러부터 2년 뒤, 게임 ‘일랜시아’가 탄생한다. 내가 이 다큐를 보며 주목한 부분은 바로 ‘동시대성’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동시대성이란 주로 예술 작품을 평가할 때 현재의 사회가 나타내는 특유한 성격이나 성질을 반영하는 특성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이러한 동시대성이 게임에서도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예술의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게임은 분명히 동시대성을 확보하고 있다. 게임 세계 안에서 활동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게임 세계 속에서 나무를 캐고, 아이를 낳고, 다른 캐릭터들과 싸우기도 한다. 넓은 자율성이 확보되고 현실세계를 구축하려 노력한 게임이라면 그만큼 리얼리티는 올라가게 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게임을 즐긴다면, 그 새계는 인물들과 공간만 가상일 뿐 모두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일랜시아에서는 그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부주’란 다른 이의 캐릭터를 대신 키워주는 사람을 말한다. 부주는 다른 사람의 캐릭터의 경험치나 레벨을 대신 올려준다. 이러한 문화는 일랜시아 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나타난다. 시간이 흘러 일랜시아 내에 불법 매크로가 성행하던 시절에는 성공 루트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 성공 루트만 잘 따라가면 캐릭터의 능력치를 최대로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성공 루트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유저들은 일랜시아 유저 카페에서 본인이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기도 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게임 활동이 옳은 방향인지 판단을 받는 것이다. 게임은 본인이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가? 왜 남들에게 이게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판단까지 받아가며 게임을 하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게임 문화가 우리 현대 사회와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가 나의 캐릭터를 대신 키워주고, 능력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성공 루트를 밟는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다른 이에게 나의 할 일을 맡기는 것 그러면서도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 자신이 좋아서 하고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남한테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 받으려는 심리. 나는 이것들이 현대인의 불안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현실 세계를 벗어나 마음 편히 즐기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인데, 왜 게임에서도 강박을 가져야 하는가? 

좀 즐기면 어떤가, 어차피 게임인데.


우리 사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빠르고 편리한 것만 선호하게 되었다. 캐릭터 레벨이 표시되지 않고 자율성이 높으며 진행이 느린 일랜시아, 반면에 레벨 강화에만 치중되어 있으며 진행이 빠른 요즘 게임들. 이 다큐에 출연한 일랜시아 유저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단순히 게임이 재밌어서 하는 경우는 없다. 게임 세계에서 만난 사람(인연)들이 좋아서, 맘 놓고 게임을 하던 시기가 그리워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에게 위로받고 싶어서 등등 이런 이유들로 오래된 게임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바쁜 현대 사회에서 지친 마음을 풀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 다큐멘터리는 그저 추억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열한 작품이 아니다. 왜 그들이 이 오래된 세계 속에서 아직도 살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 시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는 이렇게 십 년이 넘는 시간동안 무언가를 진득하게 사랑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다큐를 보며 강한 여운을 느꼈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눈은 항상 빛난다. 이 다큐의 결말에서 결국 십 년만에 일랜시아의 대규모 업데이트를 이끌어 내고, 유저 간담회까지 열어버린 감독의 추진력은 가리 칭찬받을 만하다. 나도 무언가를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사랑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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