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유러피언 재즈와의 전위적인 첫 만남 - Time Is A Blind Guide

재즈 초심자의 감상록이자 기초 지식 습득 기록
글 입력 2024.02.14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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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퓨전국악 소품집 공연과 기타 리사이틀, 음악 페스티벌, 현대 클래식 음악 연주회를 감상할 수 있었다. 문화초대라는 기회로 재즈 공연을 관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연, 전시 관람 등의 문화생활을 자주 함께하는 지인이 재즈를 유독 좋아하기 때문에 Time Is A Blind Guide(이하 TIABG)의 공연 소식을 들었을 때 지인 생각이 났다. TIABG 내한 공연은 3회 전부 서울에서 열린 게 아니라 세종, 수원, 서울에서 1회씩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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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공연을 본다고 이름이 ‘jazz club’인 향수를 맞춰서 뿌리고 나온 지인과 공연장 근처에서 식사를 했다. 지인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오늘 만나게 될 재즈 밴드의 이름에 대해 생각했다. 이름이 참 독특하다. 직역하자면 ‘시간은 눈먼 안내자’다. 프론트에서 나눠준 간단한 팜플렛에는 멤버들의 사진과 함께 “노르웨이의 숲을 거닐다마주한 ECM의 정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TIABG는 노르웨이 출신 드러머이자 작곡가인 토마스 스트로넨의 첫 번째 ECM 음반 이름이면서 그가 속한 팀의 이름이기도 하다. 5인조로 편성된 TIABG의 악기 구성은 피아노-바이올린-첼로-베이스-드럼이다.  


이 공연의 캐치프레이즈가 ECM의 정수이고, 문화소식 글에 따르면 TIABG는 유러피언 재즈의 정수를 들려준다고 하니 그 두 가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먼저 독일의 전설적인 독립 음반 레이블이자 컨템포러리 재즈에 수십년간 커다란 영향을 미친 ECM에 대해 알아보자. 


1969년 뮌헨에서 만프레트 아이허가 설립한 ECM(Edition of Contemporary Music)은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모토로 삼아 음반을 제작한다. ECM은 키스 자렛, 칙 코리아, 패트릭 브루스 메스니 같은 음악가의 음반을 제작하게 되면서 주목할만한 음반 레이블이 되었고, 수십년간 컨템포러리 재즈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ECM 음반이라면 믿고 듣는 애호가들이 많다고 한다. 수많은 매니아를 만들어내는데 큰 역할을 한 특성은 ‘ECM 사운드’라 할 수 있다. 



(...) 한 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ECM만의 독보적인 색깔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대표적인 것은 이른바 'ECM 사운드'라고 불리는 음향이다. 연주자들이 목표하는 것은 공간을 소리로 가득 채우는 게 아니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음향이다. 그래서 많은 영역을 여백으로 남겨두기도 한다. 이른바 '공간감' 가득한 소리다.


미국의 재즈 연주자들이 '스윙감'이라 불리는 리듬감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ECM은 연주자와 감상자를 감싸는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는 단순한 소리를 감상하고 즐기는 것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음향적으로 넓은 공간감과 그 사이의 여백에 감상자가 개입할 여지를 제공한다.단순히 곡과 연주의 완성도를 떠나, 그 안에서 자신이 해석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 벅스 뮤직 포스트 <레이블을 알면 음악이 보인다! 해외 편- 14. ECM> 중에서 발췌 및 문단 재구성

  

 

독특한 음색과 분위기는 ECM을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앨범 녹음할 때 뮤지션에게 꼭 맞는 음향과 분위기를 갖춘 장소를 선정하고, 연주자와 가수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맞춰서 리코딩하는 기술로 정평이 나 있다. 실내악 리코딩 기법으로 마이크와 악기 위치의 디테일뿐 아니라, 연주를 진행하고 있는 녹음실의 공기, 악기의 여운이 진동하는 보이지 않는 소리까지 담아낸다.

 

- DIVE, <소리의 잔향을 느끼다 재즈 레이블 ECM 50주년 특별전>

 

 

ECM에 대해 다룬 벅스의 뮤직 포스트에 의하면 ‘ECM 사운드’의 상기 특징은 ‘유러피언 재즈’와도 상통한다. ECM이 월드뮤직에 맞닿을 정도로 다양한 지역, 장르의 사운드를 모으는 것 스윙감을 내세우기 보다 그 다양한 사운드를 한 데 아우르며 특유의 공간감 형성에 더 몰두하는 점 등에서 유러피언 재즈와의 호응 지점을 찾을 수 있다. 한편 미국에서 태어난 재즈가 유럽 연주자들과 만나며 태어난 것이 유러피언 재즈다. 유럽의 클래식 음악, 민속음악이 결합된 유러피언 재즈는 미국의 재즈와 달리 스윙감이 약한 것이 특징이다. 

 

 

유러피언 재즈는 한 가지 스타일로 설명할 수 없는 장르다. 유럽 연주자들이 중심이 돼 본토 미국과는 또 다른 유형의 재즈를 탄생시켰다. ‘스윙’과 ‘즉흥 연주’라는 재즈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스윙의 비중을 적게 두는 대신 유럽에서 발흥한 고전음악이나 각 나라 · 민족의 민속음악을 재즈와 결합시켰다. 그래서 때로는 클래식처럼 들리기도 하고 월드 뮤직의 경계와 맞닿아있기도 하다. 스윙이 거세된 탓에 ‘재즈인가 아닌가’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ECM이나 ACT 같은 유럽 레이블을 중심으로 점차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유러피언 재즈 [European Jazz] (음악장르백과, 김학선, 박정용, 이경준)

 

 

TIABG의 음악을 듣는 동안 클래식 느낌의 선율이 들린 것이 이 때문이었다. 유러피언 재즈의 개념을 잘 몰랐던 나로서는 색소폰이 없는 악기 구성, 중간중간 들려오는 클래식 선율 등의 요소를 그저 이 밴드의 실험적인 성격으로만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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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들의 연주는 실험적이었다, 아니, 전위적이었다. 피아니스트는 타건을 하다가도 자주 일어나 피아노의 현을 뜯었으며, 베이시스트와 첼리스트는 현악기의 바디를 타악기처럼 쓰기도 했다. 드러머가 종을 울리며 곡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바이올리니스트는 바이올린 뿐만 아니라 젬베도 꽤 긴 시간 연주했다. 통상적인 악기 구성에서 받아들여지는 악기 별 존재감이 역전되기도 했다. TIABG 공연에서 나는 베이시스트의 연주에 몇 차례 압도되었다. 소위 연주의 ‘베이스’가 되는 베이스 선율에 귀가 트이기 시작하면 베이스만 들리더라-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즉흥연주에서는 간혹 베이스가 곡의 전면에 격렬하게 나섰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베이시스트는 위플래시에서 카라반을 연주하는 주인공 드러머 같았고, 전력질주하는 러너 같기도 했다.  

 

자유로운 악기 구성과 독특하고 과감한 주법 외에도 곡 자체에서 전위성이 느껴졌다.  재즈 초심자가 듣기에도 재즈에서 잘 나올 것 같지 않은 감정선, 음악적 주제가 나왔다고 생각되었다. 곡 초반을 자주 책임지던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 음울한 감정선은 시간이 어느 만큼 흘렀는지, 곡의 구성 중에서 어느 정도를 왔는지 구분하는 것을 크게 쓸모 없게 만들었다. 안웅철 사진 작가의 추상적인-심지어 사진 안에 구체적인 형상이 있어도!- 분위기의 자연 배경 사진이 커다란 스크린 위로 띄워지는데 사진의 이러한 분위기가 곡의 모호한 감성에 잘 어울렸다. 여기서 모호한 감성이란 이도 저도 아닌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수면 아래 여러 감성이 존재하는데 그것들 사이의 경계를 일부러 모호하게 두었다는 뜻이다. 그로테스크함마저 함유한 멜랑콜리함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기존 음들 사이로 바이올린과 첼로의 클래식 선율이 새의 지저귐처럼 들어왔다. 분위기는 또 바뀌고 독주 같은 합주가 이어지거나 통상적으로 보던 합주가 이어졌다.    

 

TIABG가 연주하는 한 곡 안에서 마치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몇 곡 이어 듣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인상을 받은 이유는 재즈에서 흔히 느낄 수 없던 감정, 분위기, 재즈 외의 음악적 요소가 들어가 있는 것, 그리고 ‘ECM 사운드’ 특유의 공간감 때문이 아닐까. 영화는 그것이 얼마나 환상적이건 현실적이건 간에 하나의 세계가, 그 세계 특유의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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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M과 유러피언 재즈의 특징, 그리고 TIABG 음악의 지향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알고 극장에 들어갔더라면 감상이 훨씬 더 풍부해졌을 테지만 전위적인 음악의 난해함을 곱씹으며 후차적으로 감상의 원인을 규명해 보는 일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 느낌은 이런 특성 때문에 왔구나, 하는 신기함도 은근히 습득의 재미를 일깨운다. 


재즈에서 듣는 귀가 나보다 더 발달해 있을 동행은 공연 감상으로 “행복했어!”라는 말을 남겼다. 공연이 끝나고나서 이 말 한 마디로도 이번 경험은 충분히 기쁘다고 생각했는데, 감상을 정리하며 또 새로운 지식을 쌓아나가니 또 다른 기쁨이 생긴다. 앞으로 재즈를 들을 때면 미국 재즈인지, 유러피언 재즈인지 알아두는 행동양식이 하나 생길 것 같고, 좀 더 실시간으로 음악 특성을 이해하며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덧) 경미하지만 관객으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곡명에 관한 것이다. 리더 스트로넨은 영어로 청중에게 말을 걸고 다음곡에 대한 짧은 설명을 했다. 배부 받은 팜플렛에 연주곡들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스트로넨의 말을 듣다 놓치면 곡에 대한 해석, 감상의 단서를 놓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팜플렛에 곡 정보를 기재하지 않은 것은 의도된 바겠지만 곡 이름과 연주된 순서 정도는 적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음악은 세계 공통의 언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심장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더 크지만, 개인적으로 곡명 만큼은 손에 꼭 쥐고 음악을 듣고 싶었다. 몇 곡의 이름은 잘 들어서 기억나지만 몇 곡은 그렇지 않은 지금, 오래 대화해서 대화 내용과 상대를 기억하고 싶지만 막상 그 상대의 이름은 모르는 것 같은 헛헛한 기분이 든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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