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상해서 아름다운 시간들 – 이상한 나라의 아빠 [공연]

글 입력 2024.02.1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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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문으로 선정되고, 관객들의 호평 속에서 막을 내린 창작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가 재개막했다.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2024년 1월 28일부터 2024년 3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뮤지컬은 동화작가를 꿈꾸는 주영이 아빠 병삼의 암 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향하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그 도중 주영이 쓰는 동화 속 캐릭터 체셔 고양이와 시계 토끼, 도도새는 동화에서 탈출해 현실에서 자꾸만 주영을 혼란스럽게 한다.


아빠 병삼 역은 성기윤 배우와 정의욱 배우가, 딸 주영 역은 김가은 배우, 이휴 배우, 박슬기 배우가 맡아 섬세한 감정선을 노래하고 연기하여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동화 캐릭터는 체셔 고양이 역에 정현우 배우, 시계 토끼 역에 홍준기 배우, 도도새 역에 박혜원 배우가 2024년 다시 함께 매력적이고 디테일한 연기를 뽐내어 공연에 활기를 더한다.

 

 

 

동화 같은 현실



클리셰. 뻔할 뻔 자는 울 뻔의 뻔이던가.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살아가며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세대 상관없이 공감할 뮤지컬이다.

 

주인공 주영은 어린 시절 아빠가 읽어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특별하고 아름다운 동화를 쓰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렇게 커서 문예창작과를 전공하며 동화작가 지망생으로 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무산되지, 대학 시절 학과 생활에 불성실했던 동기는 어느새 등단해 이름을 알리고 있지. 그런데 설상가상 몇 년을 떨어져 지내던 아빠 병삼의 암 소식으로 부산에 내려가게 된다.


어색함을 타파하기 위해 주영은 병삼에게 질문하지만,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지 않고 시종일관 무시하는 아빠에 주영은 "진짜 안 맞아."라며 한숨을 쉰다. 과묵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겪으며 자라온 세대는 많다. 특히 나의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러한 아버지는 무언가 전형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없다. 우리가 날 때부터 현재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게 아니듯, 지금 가진 직업이 어릴 적 꾸던 꿈이 아니듯 말이다. 술을 진탕 마신 아버지와의 대담에서 우연히 듣게 된 과거나 반짝이는 꿈같은 것들, 가부장적일 수밖에 없었던 환경들을 듣고 겪는 날이 올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아릿함이 밀려오는 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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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삼에게도 이 같은 과거가 있었다. 병삼은 현실로 인해 시인이란 꿈을 접고 공장을 다녀야 했다. 그렇기에 빚으로 딸의 꿈을 가로막는 현실이 되고 싶지 않았던 병삼은 가족을 매몰차게 대하고 버렸다. 아빠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는 주영에게 있어 아빠는 가족을 버린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그런 주영에게 어느 날 암이 뇌로 전이되어 스스로를 열아홉 살로 착각하는 아빠와의 동화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

 

“흰머리 난 아비는 아이가 되고

그 아이는 거꾸로 아비가 되는

원래 이상한 건지 나만 이상한지 모르지만, 아주 특별한 시간

웃기에는 좀 아프고 울기에는 너무 아까워

이해하긴 어렵지만, 이상하고 아름다운 시간”

 

과묵하고 고집스러우며 가부장적이던 아빠 병삼의 열아홉은 천진난만하고 희망적이며 부끄러움도 많던 하나의 청춘이었다. 감성적인 시를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워 머리를 긁적이다가 칭찬받으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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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워터멜론> 밴드 포스터 - tvN

 

 

뮤지컬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드라마 하나가 있었다. 2023년 11월에 종영한 <반짝이는 워터멜론>이다. 음악에 재능이 있던 코다 소년 은결은 가족을 위해 의대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아빠에 의해 밴드가 하고 싶다는 진심조차 도외시된다. 그러다 음악을 포기하려던 은결이 1995년으로 타임슬립해 자신과 동갑인 열여덟의 아빠 이찬을 만나 함께 밴드를 하는 내용의 드라마이다.


1995년의 아빠 이찬은 철없고 해맑고 자신감 넘치는 소년이었다. 그런 이찬은 현실과 타협해 돈을 벌고자 꿈조차 만들지 않았지만, 아들 은결과 함께 밴드를 하며 꿈의 폭을 넓혀간다. 그렇게 반짝인다. 열아홉의 병삼 또한 반짝였다. 시 같은 건 도움도 안 된다며 화만 내는 아버지 몰래 밤마다 라디오 방송으로 흘러나오는 자신의 시를 들으며 설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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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아야겠어요. 그래서 저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

- 주영 -


“시간이 널 기다려줄까?”

“시간이 없어. 서둘려야 해!”

- 시계 토끼 -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빠 병삼에게 남은 시간은 없었다. 시계 토끼가 말하는 시간은 변덕쟁이에 새침해서 주영과 병삼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째서 우리는 함께 할 시간이 정해져야 그 시간이 소중해지는 걸까.


병삼이 세상을 떠나고 주영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 순간 주영의 마음속 문을 열고 호탕하게 웃는 병삼이 들어온다. 주영의 마음속에서 병삼은 동화 속 캐릭터들과 함께 일생 하고 싶었던 여행을 떠난다. 무한한 시간 여행을.


어릴 적 꿈꾸던 자신만의 이야기의 길을 잃어버렸던 주영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문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자신만의 특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하며 공연은 끝이 난다.

 

*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강보영 작가와 이주희 작곡가의 실제 이야기를 녹여낸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현실감이 넘친다. 장기간 병원 생활의 반복되는 하루와 대형병원의 복잡하고 미로 같은 절차, 반짝이던 꿈이 어느새 현실의 칙칙함을 묻혀가며 좌절하는 순간들까지. 자칫하면 무거울 수 있는 부분들을 재치 있게 풀어가는데, 이에는 이상하리만치 의뭉스럽고 모든 걸 가볍게 여기는 동화 캐릭터 체셔 고양이와 시계 토끼, 도도새가 큰 역할을 한다.


참으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한 공연장에 노년과 중년과 청년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보고 눈물을 훔친다. 어떤 이는 주영이 되어 꿈을 잃고 살아야 했던 부모를 떠올리며 울고, 어떤 이는 자식에게 잘해주지 못한 병삼이 되어 운다. 또 어떤 이는 병삼의 부모가 되어 무거운 현실에 원하는 대로 살라고 말해주지 못했던 과거에 운다.


매정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식이 만나는 단 하나의 여행. 이번 주 가족과 함께 이상하지만 아름다운 나라로 여행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휴지는 필수겠다. 이상해서 아름다운 시간들이 아릴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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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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