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교와 단순의 만남 - 빅토르 바자렐리: 반응하는 눈 [전시]

정교함과 단순함이 만나는 순간, 무한한 세계가 펼쳐진다.
글 입력 2024.01.1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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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79, Stri-oet, Vasarely Museum, Budapest.jpg

Victor Vasarely, 1979, Stri-oet, Vasarely Museum, Budapest

 

 

누구의 작품인지, 작품명은 무엇인지 잘은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 이 그림을 봤을 것이다. 희미한 기억이긴 하지만, 등교 첫날 나눠준 여러 권의 교과서를 구경하다가 미술책에서 특히 이 부분을 집중해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옵아트’의 개념을 미술 시간에 처음 배웠을 때, 직접 그려보는 활동도 있었다. 본인의 손을 스케치북에 올려 그대로 따라서 그린 뒤 그림 밖의 부분은 직선으로. 그림 안의 부분은 곡선으로 채우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입체가 될지 상상이 안됐는데, 촘촘한 선들이 그려질수록 나의 손이 복제된 것만 같은 묘한 기분도 들었다. (방금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포털 사이트에 “입체손그리기”를 검색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직접 옵아트를 그려보고, 두 눈으로 가만히 있는 그림을 째려보면서 옵아트의 세계에 스며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반복된 패턴이 있거나 어지러운 느낌이 들면, 옵아트라는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옵아트의 특징과 몇 가지 주요 작품만 가볍게 알고 있는 상태였는데, 얼마 전 옵아트를 대표하는 화가 ‘빅토르 바자렐리’의 대형 회고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이 화가의 이름만 들었을 때에는 옵아트 작가인 줄도 몰랐는데, 전시 정보를 보는 순간 반가움과 호기심이 가득 떠올라 바로 전시 관람 일정을 잡았다.


4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빅토르 바자렐리 : 반응하는 눈] 전시는,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이래 33년 만에 다시 열린 전시라고 한다. 빅토르 바자렐리의 모국인 헝가리에서 140여 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가져와 국내 최초로 선보여 더 의미가 깊은 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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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채로운 작품들로 가득 찼는데, 하나의 예시로 [명멸]이라는 작품을 들어보겠다. 이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무엇이든 구기고 찌그러트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 속에서 와플 팬을 주먹으로 쾅 친 것만 같다. 혹은 공간을 반짝반짝 비추며 돌아가는 미러볼 같기도 하다.


아니, 일단 어떤 모양인지 유추하기 전에 이 작품이 ‘그림’이라는 사실에 놀랍다. 이 그림을 기준으로 왼쪽이나 오른쪽에 서서 쳐다보면 뭔가 툭 튀어나와 있을 것만 같은데, 아무리 봐도 내 눈만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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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 동안 말도 안 되는 신비로운 옵아트의 세상을 다녀온 뒤, 전시장 끝에 다다랐을 때 또 하나의 재미가 숨어있었다. 눈으로만 감상하는 전시를 뛰어넘어서, 관람객들이 직접 옵아트를 그려보고 경험할 수 있게끔 체험존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본인의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색연필과 색 테이프, 그리고 여러 가지 형태의 옵아트 밑그림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쉽게 접할 수 있는 최적의 이벤트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수한 형태와 색으로만 세계를 완전히 표현할 수 있다.”]

 

[“미래의 추상미술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우주를 담아내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빅토르 바자렐리가 남긴 이 말처럼 그는 색채의 대비, 빛과 음영과 같은 예술 속 연구를 끊임없이 이루며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작품 속 요소들을 하나하나 뜯어내면, 정말 기본적인 점-선-면-이 보이고, 조화로운 색 조합 같아도 사실은 개성 가득한 뚜렷한 색으로 채워져 있다.


어쩌면 정말 단순한 형태와 색들을 단순하지 않게, 그리고 정교한 패턴으로 사람들 눈을 속이는 트릭 장치까지.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반응하는 눈”처럼 감각과 생생함으로 가득 찬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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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다녀온 뒤, 미술 시간에 그렸던 옵아트를 떠올리며 네잎클로버를 그려보았다. 입체손그리기 방식과 똑같이 네잎클로버 그림을 그린 뒤 밖에는 직선을, 안에는 곡선으로 채운 것이다. 원래는 간단히 그리려고 했는데, 그릴수록 혼자 욕심이 생겨서 나름 음영까지 넣어보았다.


수많은 그림 중에서도 왜 네잎클로버가 먼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빅토르 바자렐리 말을 빌려 생각해보면 내 마음속에 있는 우주에 ‘행운과 행복’이 떠다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이, 옵아트처럼 언제든 튀어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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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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