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응하는 눈 - 빅토르 바자렐리

글 입력 2024.01.08 04:3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IMG_6514.jpg

 

 

미술은 작품 그 자체로 모든 걸 말해야 한다.

 

작품이 9할을 가져가고 서사, 설명은 1할 정도면 충분하다. 짜장면 먹을 때 따라오는 단무지 같은 관계가 좋다.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더할 바 없이 좋지만, 너무 많으면 부담스러운 그런 관계. 장황한 설명을 들어야 그 의미가 조금 와 닿는 건 미술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럴 바에 나는 소설을 읽겠다.

 

옵티컬아트 창시자로 불리는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1906-1997)는 헝가리 태생의 프랑스 화가이다.

 

원래 그의 전공은 의학이었으나 데생과 드로잉을 배우고 헝가리의 바우하우스로 불리는 '뮤힐리 아카데미'(Budapesti Műhely)에 입학하면서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말레비치, 몬드리안, 칸딘스키, 그로피우스 등 당대 가장 신선하고 파격적인 추상 예술가의 작품을 접한다.


모든 예술은 추상에서 출발해, 구체적인 것으로 끝난다. 글을 쓰는 과정과 비슷하다. 브레인스토밍으로 생각나는 모든 단어를 쏟아낸다. 비슷한 것끼리 묶고 필요 없는 건 쳐낸다. 걸러낸 것들을 주장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일목요연한 문장으로 바꾼다.

 

미술 작품도 비슷하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나온 것들을 죄다 쏟아낸다. 그것들을 이리저리 짜맞추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를 결정한다.

 

마침내 이를 하나의 그림, 조각, 조형 등 구체적 형태를 띤 것으로 표현한다.

 

 

Victor Vasarely, 1939, Zebras, Gouache, pencil, colour and white chalk on paper, Vasarely Museum, Budapest.jpg
Victor Vasarely, 1939, Zebras, Gouache, pencil, colour and white chalk on paper, Vasarely Museum, Budapest

 

 

미술부 시절에 옵티컬 아트를 한 번 해봤다. 덕분에 이성의 극을 달리는 분야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착시라는 현상을 위해 치밀한 계산을 더한다. 그 모든 칸 하나하나의 크기와 비율은 물론, 도형을 배치하는 위치와 각도까지 숫자로 계산한 끝에 결정된 것들이다. 결코, 어림짐작으로 이쯤 하면 되겠지 라는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수학으로 시각을 지배하는 미술이 옵티컬아트다. 바자렐리와 그의 작품은 추상과 계산이 마주치는 교차로다. 추상적인 형태의 틀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치밀한 계산이 가득 들어있다.

 

1930년 파리로 이주한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상업 광고 디자이너로 성공한다. 그러나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성 미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에 나선다. 추상미술의 시대를 거쳐 마침내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옵아트의 대표적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된 작가는 엄격한 구성에 의한 기하학적인 추상을 추구해 간다. 그의 작품은 단조로운 도형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부분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변화와 착란을 통해 화면에 생생한 움직임을 주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 모호성과 분산을 느끼도록 만든다.

 

 

Victor Vasarely, 1979, Stri-oet, Vasarely Museum, Budapest.jpg
Victor Vasarely, 1979, Stri-oet, Vasarely Museum, Budapest

 

 

바자렐리는 서양 사상의 근본을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서양 철학이 추구하던 것은 절대적 진리를 찾는 것이었고, 그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철학이 태어났다.

 

철학은 해답을 찾아내기 위한 수학을 만들었고, 수학은 자연을 계산하며 기하학은 만들었다. 거대한 성당, 하늘을 뚫을 듯이 높게 솟은 첨탑, 관중과 검투사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콜로세움. 그 위대한 문화유산을 만들어 낸 것은 수학으로 빚은 기하학이라는 거대한 망치를 쥔 사람들이었다.

 

바자렐리는 작품에 큰 의미를 담지 않는다. 시각적 착란. 오직 그 하나의 목표를 추구한다. 그의 선조가 땅이라는 도화지에 건축물을 세웠다면, 바자렐리는 우리의 눈 위에 착시라는 그림을 그린다.

 

‘반응하는 눈’이라는 제목처럼, 바자렐리의 세상에 우리의 눈은 어떤 반응을 일으킬 것인가를 한 번 생각하고 들어간다면, 그 어지러운 파도 속에서도 정갈한 질서를 찾을 수 있다.

 

 

포스터.jpg

 

 

 

컬쳐리스트 네임 태그.jpg

 

 

[김상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