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단 다섯 장의 공허 - 숄

신시아 오직의 <숄>
글 입력 2024.01.0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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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로 자신의 가게를 부순 미친 여자가 있다. 브루클린의 유티카 애비뉴에서 중고 가게를 하는 59세의 로사 루블린은 고의로 가게를 파괴했다. 신문에는 그렇게 실렸다.

 

하지만 그 한 줄로는 로사의 인생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그녀는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다. 살아남아 플로리다에 정착했지만 그녀의 정신은 폴란드에 고여있고, 그녀의 몸은 수용소에 묶여 있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온전할 수 없는 그녀에게 조카의 편지가 도착한다. 마그다의 몸을 감쌌던 숄도 함께였다. 그건 수의였다.

 

 

로사 고모에게 [스텔라 씀]

 

고모의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구두 밑창에는 지금도 유리가 박혀요. 내가 훈수 둘 입장은 아니지만, 어쩌라고요! 이제 30년, 40년, 누가 알겠어요. 이제 그만하세요. 고모는 상자를 열어 그것을 꺼내고 울겠지요. 그래서 뭐가 달라지나요? 로사 고모, 이제 때가 됐어요. 고모한테도 삶이 있어야죠.

 

 

편지를 든 로사는 큰 소리로 말한다.

 

"도둑들이 그걸 빼앗아갔어."

 

*

 

위는 「로사」의 내용으로, 단편 「숄」의 이후를 다루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오헨리 상을 수상했다. 이 두 작품은 한 권으로 묶여 소설집으로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숄」은 7년 동안이나 서랍에 보관되어 있던 작품이다. 신시아 오직이 자신의 작품이 정당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안네 프랑크와 비슷한 또래로, 유대인 말살의 광기가 유럽을 휘몰아치던 시절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났다. 그 덕에 홀로코스트를 피하게 되었는데 그 사실은 그녀에게 부채 의식을 가져다 주었다.

 

그만큼 진정성이 담긴 작품이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는 「숄」의 내용이 매우 강렬했다. 유려한 표현들에서는 고통을 넘어선 공허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앙상했다. '무릎은 막대기에 달린 혹이었고 팔꿈치는 닭 뼈'였다. 아기는 울음 한번 없이 조용했다. 배가 고파도 숄의 끄트머리를 빨아대기만 했다.

 

그리고 아기가 처음으로 엄마를 부르면서 운 순간, 죽음이 찾아왔다.

 

마그다를 태운 어깨는 점점 멀어져 갔다. 검은 군화는 전기 울타리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아기는 허공에서 헤엄치다가 울타리에 부딪혀 떨어진다. 아기가 빨아대던 숄은 젊은 엄마의 비명을 막는 용도로 쓰인다.

 

슬픔을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표현하는 소설이 아니었다. 그녀의 감정은 오직 행동으로 표현된다. 자신의 아기가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입 속에 숄을 쑤셔 넣을 뿐이다. 감정의 공백을 채우는 건 글을 읽는 이들의 몫이 된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후의 공허함에 공감하고 나면, 그 여운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공포로 이어진다. 이스라엘-하마스의 전쟁이 일어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전쟁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미래에 성큼 다가와 있다. 그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로사는 마그다를 잃었지만,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지 모른다.

 

 

[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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