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편한 고상함 [사람]

고상함에 대한 나만의 기록
글 입력 2024.01.0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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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 씨는 고상한 분이에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말 그대로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고상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함'을 뜻한다. 지극히 긍정적인 의미의 표현인데, 어딘가 찜찜했다.


'고상함'은 상대적이다. '고상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기에 '고상한' 것에 가치가 생긴다. 사전적 의미에도 수준이 '높음'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반대로 수준이 '낮은' 것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찜찜함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당연하게도 많은 단어는 상대적이다. 크고 작음도, 깊고 얕음도, 넓고 좁음도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높고 낮음'만큼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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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살아가는 세상에서 '높음'은 '더 나은 것'을 담보한다. 높은 지위, 높은 가격은 물론이고, 아파트도 그 높이가 높을수록 세속적 가치가 높아진다. 그리고 '낮음'은, '높음'에 가치가 더해지는 것과 동일한 수순으로 그 가치가 감소한다.


상대적이라 함은 중립적이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는데, 높고 낮음에 와서는 그 중립성은 희미해지고 보이지 않는 절대적 긍·부정의 기준이 만들어진다. 단순한 비교에서 끝나지 않고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고급스럽다'는 표현에는 '저급한' 무언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고차원적'이라는 표현에는 '저차원적'인 무언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담겨 있다. 높은 것이 긍정적으로 표현되는 만큼 낮은 것은 부정적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상대적인 의미가 담긴 단어는 아예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인지, 의미를 지나치게 곡해하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충분히 동의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쪽이 편치 않았다.


이유를 짐작건대, 비교를 빙자한 비난이 만연한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깎아내리기 위한 수단으로 누군가를 칭찬하는 상황에서, 단순한 단어가 미처 상상치도 못한 비난의 의미를 담게 될 수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A가 저급하다고 말하기 위해 B는 '그보다' 고급스럽다고 에둘러 A를 욕하는 사람들에게, '고급스러움'은 상대적 언어라기보다는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다. 그런 상황에서 B에게도 '고급스럽다'는 표현이 반가울 리 없다.


'고상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비교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이 비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높음'의 의미가 담겨 있는 단어 자체가 어딘가 거북스러웠다.


단어가 그 단어 자체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였다면 달랐을까. 단어 안에 사회적 맥락이 존재하는 한 불가피한 일일까.


그럼에도 '고상하고' 싶은 내가 모순적이라 다시금 말을 조심하게 된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내 말이 해석될 수 있는 한, 말을 아끼는 편이 가장 '고상하게' 보일지도 모르니까.

 

 

[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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