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카메라로 세상 담기 [문화 전반]

사진 저장소를 통해 시간여행을 하다
글 입력 2023.12.1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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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필름 카메라나 디지털카메라를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사진이라는 프레임으로 추억을 남기기 어려웠다. 휴대전화가 발전하면서 카메라의 기능이 향상되었고, 우리는 몇 번의 클릭으로 추억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 렌즈를 끼울 필요 없이, 한쪽 어깨가 무겁게 눌리는 카메라 무게를 견딜 필요 없이, 렌즈 뚜껑을 벗겼다 끼우기를 반복할 필요 없이.

 

물론 조작 방법이 간편해진 미러리스 카메라는 '자동'모드에 맞춰놓을 시, 위에 나열한 수고로움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일반 휴대전화의 카메라처럼 몇 번의 터치, 조작만으로도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미러리스 카메라도 편리성 측면에서 휴대전화를 따라갈 수는 없다. 챙겨서 나가야 할 짐이 늘어나는 것은, 간편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는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왜 여전히 필름 카메라나 디지털카메라를 활용하여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는 단순히 레트로 열풍으로 인해서 필름 카메라 특유의 색감, 사용 방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일까, 더 전문적인 사진 퀄리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DSLR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일까.

 

나는 그저 사람들이 세상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느냐는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 색감, 사용 방식, 본인이 담고 싶은 대상, 풍경, 인물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그 모든 것은 주관적이다. 도구를 선택하는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 이럴 땐 이걸 사용해야 하고, 이럴 땐 이것만 사용해야 한다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본인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최고의 사진이 나오는 지름길이다.

 

*

 

'사진을 왜 이렇게 많이 찍어?', '찍어서 뭐 하려고.', '사진 찍으면 보기나 해?'

 

휴대전화와 카메라, 어떤 도구든 상관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고, 찍고 있는 내가 종종 듣는 말이다. 음식을 담은 사진이든, 풍경을 담은 사진이든, 인물이 존재하는 사진이든 최상의 컷이 나오게 하려면, 한 번 셔터 누르는 행위로는 만족되지 않는다. 최상의 컷은 최고의 인내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 인내를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인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최선의 타협으로 휴대전화를 이용해 빠르게 음식과 풍경의 자태를 찍어내거나 오늘은 사진을 찍고 싶지 않은 척을 하며 사진찍기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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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내를 함께 감내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조심스레 카메라를 집어든다. 물론 그 사람의 마음이 인내의 한계가 없는 무한한 바다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인내의 모래시계가 있기 마련인데, 그 사람은 그 모래시계에 채워진 모래가 남들보다 많을 뿐이다. 모래가 더 천천히 떨어지기를 기도하며, 내가 담아내고 싶은 방향대로 렌즈의 시선을 채워나간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계절이나 순간이 도래하면, 인내를 감내해주는 사람조차 찾지 않고, 홀로 세상을 담으려 떠난다. 홀로 사진을 담아낸다는 것이 외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그런 결정을 내리기 쉬워진다.

 

인내해주는 사람이든, 인내해주지 않는 사람이든 렌즈에 추억을 담아내는 순간에 함께해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나를 잇는 공유된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홀로 세상을 담게 되면, 공유된 기억이 존재하지는 않을지언정, 내면의 생각들을 잇는 연결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찍는 대상을 바라보는 순간, 많은 감정과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오고, 그 순간에 찍힌 사진은 파도가 남기고 간 해초, 조개껍데기처럼 모래에 박힌다. 그렇게 모래에 박힌 해초와 조개껍데기들은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바다를 바라볼 때 드는 감정이 종종 사진저장소를 들어가 사진을 바라볼 때 드는 감정과 비슷하다.

 

 

 

#사진저장소 1 : 갤러리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진저장소는 갤러리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휴대전화를 제1의 사진기로 사용하기 때문인데, 언제, 어디서 사진이 찍고 싶은 순간이 도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휴대전화는 적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홈 화면으로 갈 필요도 없이, 잠금 화면에서 왼쪽으로 넘기는 행위 혹은 왼쪽 상단을 향해 드래그하는 행위를 하기만 하면, 사진 찍을 준비가 완료된다. 휴대전화에 내장되어 있는 여러 카메라 모드를 활용해서 찍으면 더 높은 퀄리티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기본 카메라의 기본 모드도 성장한 카메라 기술 덕분에 잘 찍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갤럭시는 [프로 모드], 아이폰은 [인물 모드]를 활용하여 촬영을 진행하면, 조리개, 노출값, 조명 효과 등을 조절할 수 있어서 마치 DSLR의 기능을 이용해서 찍은 것과 같이 아웃포커싱이 효과적으로 드러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일상에서 사진을 찍고 싶을 때면, 언제나 그 순간을 담아 저장해 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갤러리이다. 그 순간을 빨리 꺼낼 수 있는 곳도 또한 갤러리이다.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싶을 때, 아니면 그저 과거의 내가 어떻게 살았었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장소에 갔었는지 기억하고 싶을 때 '갤러리'라는 기억의 상자를 연다.

 

그 기억의 상자 속 들어있는 기억 캡슐들은 제각각의 색깔과 내용을 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캡슐들은 그 상자가 더 다채롭게 빛나게 해준다. 상자를 연 주체들은 '어떤 캡슐을 열어볼까?'하는 설렘을 가진 채, 캡슐 하나하나를 만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정말 열고 싶은 캡슐이 나타나면, 조심스레 집어 들고는 캡슐을 분리한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그때의 감정, 대화, 온도, 날씨, 향기, 옷차림 등 순간의 모든 것이 녹아져 있다. 그것들은 우리를 반긴다.


상자의 뚜껑을 열면, 캡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 사람은 또 언제든 상자의 뚜껑을 두들길 준비를 한다. 상자는 뚜껑이 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 여러 번 뚜껑이 열리고 닫히며, 더 많은 캡슐이 쌓이길 바랄 뿐이다. 늘어나는 횟수만큼 상자의 경첩이 약해지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더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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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자 속 가장 많은 사진은 어떤 사진인가. 나의 상자는 '하늘' 사진이 없는 캡슐이 없을 정도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하늘을 보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날도 있지만,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곤 한다. 그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날이어도 마음에만 담을 때가 있고, 그 하늘이 회색빛을 잔뜩 머금은 채 구름 사이로 약간의 빛을 내뿜는 날이어도 상자에 담을 때가 있다.

 

상자에 담을지 말지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다. 그 규칙이 모든 때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본인의 상자는 본인이 만든 캡슐이 쌓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뿐, 미래의 내가 그 캡슐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든, 타인이 내 상자를 보고 어떤 비판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담는 것은 지극히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한 일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의식하거나 눈치를 볼 필요는 전혀 없다. 생각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니.

 

푸른 하늘, 회색빛 하늘, 구름 가득한 하얀 하늘. 여러 빛깔의 하늘이 점철되어 있는 상자를 볼 때면, 다양한 하늘과 함께할 빛나는 날들을 기대하게 된다. 상자에 부는 산들바람은 미래의 내가 지니고 있을 불안과 걱정을 잠재워준다.

 

 

 

#사진저장소 2 : 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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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저장소 역할을 하는 것은 갤러리뿐만 아니라 클라우드도 있다. 갤러리 속에 있기에 너무 오래된 사진이나 너무 소중한 사진 등은 클라우드에 저장된다. 더불어 DSLR과 같은 카메라로 촬영한, 용량이 큰 사진들도 대부분 클라우드에 저장된다.

 

그렇다 보니 클라우드에 있는 사진들은 날것의 사진보다는 찍는 사람의 시선이 묻어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날 표현하고 싶은 색감에 따라 조리개를 조절하고, 셔터 속도를 조절하며, 감도도 또한 조절한다. 그 분위기를 미래에 보더라도 느낄 수 있도록, 신중하게 조절 버튼을 누른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들은 서로 유기성이 존재한다. 아무래도 카메라를 들고 나간 날은 그 장소, 그 계절을 담기 위한 목적에서 수고로움을 감수하기 때문인 것 같다. 최소 50장에서 많게는 2~300장의 사진이 한날 저장된 사진이면, 그 흐름성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중간중간 존재하는 흔들린 사진 또한 하나의 미학처럼 보일 뿐이다.

 

한 계절, 한 장소의 순간이 다른 계절, 한 장소 또는 한 계절, 다른 장소로 보일 때마다 그저 사진의 유기성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가 그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시간여행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사회가 도래했다지만, 아직 '타임머신'을 발명하지는 못한 게 인류의 현실이다. 우리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직접적인 방법으로 시간여행을 하지는 못하지만, 매개체를 통해 간접적인 방법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는 있다.

 

시간여행은 인간이 현재를 더 잘 살 수 있도록 용기와 위로를 해줄 때도 있고, 더 큰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구름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행복하지 않았던 때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이 행복했던 때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과거 행복의 시간은 현재와 미래에 행복을 쌓을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되어주며, 그 행복들은 내면적 성장을 이뤄낼 수 있게 해준다.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다는 것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다는 것.

 

사진을 찍는 행위에 쓰인 도구가 어느 것이 됐든, 한 장 한 장 모인 시간은 과거의 나를 채운다. 미래의 내가 찾아올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과거의 행복을 찾아온 그때의 내가 어떤 모습을 기대하고 오든 너의 순간은 이랬었다며 잔잔하게 말해줄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를 많이 심어 '나'라는 숲을 가꿔나가는 과정인가보다.

 

오늘도 시간여행을 떠나며 세상의 이치를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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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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